[한겨레21][내 곁에 산재] 당신의 사무실도 위험한가요?
김강 갑질부터 마스크 갑질까지, ‘직장 내 괴롭힘’은 사무실의 산업재해
전수경 활동가
겨울이 깊어간다. 김장김치 한 통을 얻어왔는데 김치찌개를 해먹느라 바닥이 보인다. 김장김치를 보면 직장인 수난사에 김장이 더해진 몇 해 전이 떠오른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오픈채팅방으로 상담창구를 연 것은 2017년 11월이다. 회사에서 사회봉사로 김장하라고 시킨다는 하소연이 배추 포기처럼 쌓여갔다. 김장 노동으로 고통받는 직장인이라니.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던 김장이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직장에 침투해 있었다. 직장갑질119가 창립할 때 동참했기에 상담 채팅방에서 김장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이 잊히지 않는다. 생활에서의 고난과 직장에서의 노동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었다. 직장에 시간을 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습과 문화, 감정까지 조직이 하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내달라 하고 있었다. 한도가 없었다. 밥벌이의 어려움이다.
배추 포기처럼 쌓인 하소연
김장으로 시작한 ‘직장 갑질’의 공론화는 폭행·욕설 같은 예측 가능한 물리적 괴롭힘이 더해지고 감정적·심리적 괴롭힘의 사례가 겹겹이 올라가며 사회문제로 인식됐다. 2019년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이 만들어졌다. ‘직장 내 괴롭힘’도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2021년 12월30일, 서울 중구에 있는 직장갑질119 사무실에서 오진호 활동가를 만났다. 오진호 활동가는 비정규노동에 관심이 많아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려 직장갑질119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직장 내 괴롭힘이 중요한 산재 문제라고 생각하는 직장 내 괴롭힘 전문 강사가 됐다.
직장갑질119를 처음 시작할 때는 캐비닛 걷어차기, 폐회로텔레비전(CCTV) 감시, 외모 평가, 욕설 같은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이 물밀듯이 들어왔잖아요. 상담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나고 있는데요, 비상식적인 갑질에 대한 상담은 이제 줄었나요?
“폭언, 폭행 상담은 (처음보다) 좀 줄었다고 느껴져요. 갑질이 많이 알려지면서 말조심, 행동조심을 하는 것 같다고 할까. 물론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요. 그때그때 많이 들어오는 상담 유형이 있긴 해요. 최근에는 ‘부장님이 직원들한테 마스크 쓰라고 강요하면서 본인은 종교의 힘으로 (코로나19 감염을) 이긴다며 (마스크) 안 쓴다’고 호소한 상담이 있었어요.”
코로나19 시대에는 마스크로 괴롭히는 직장 상사들도 나타난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직원휴게실은 폐쇄하고 관리자들이 수시로 모이는 공간은 그대로 두는 회사도 있다.
오진호 활동가는 최근엔 ‘청년내일채움공제’ 제도로 취업한 청년들의 상담이 마음에 밟힌다고 했다. “아침에 청소를 안 해서,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반차를 써서 막말하는 관리자, 10분 하던 잔소리가 20분 되고 2시간이 되는 사장…. 그런데 (청년내일채움공제 제도로 취업한 청년들은) 3년을 버텨야 해요. 청년을 고용해서 목돈을 만들도록 회사와 정부가 지원한다는 좋은 제도인데 3년 동안 괴롭힌다, 이러면 사람이 미치겠죠.”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은 동일한 중소기업 사업장에서 최소 2년 이상 일하면서 청년이 300만원을 적립하면 정부의 취업지원금, 기업 지원금을 공동적립해주는 방식으로 청년들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1년 미만으로 일하면 취업지원금은 0원이다.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청년들이 도움을 청해온다. 2~3년이라는 시간에 매여 있는 청년노동자들, 그 몇 배의 시간에 매여 있는 선배 노동자들. 직장에서의 시간이 괴롭힘을 견디는 시간이라 한다면 고통의 크기는 누가 더 적다 말할 수 없다.
청년노동자의 3년 버티기
“대기업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일어나서 연락이 왔어요. 신입도 아니고 업무 성과도 나쁘지 않았는데 실적 압박이 엄청났대요. 최고경영자(CEO) 한마디에 밤새우고, 팀장이 성과급을 결정하는 회사. 팀원들은 종처럼 일하는 분위기. 자유로운 이미지가 있는 회사인데도요.”
성과를 내라고 몰아붙이는 상사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서서히 몰아갔다. “열악한 직장에서 문제 있는 특정한 사람이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게 아니에요. 남들 보기에 좋은 회사 다닌다고 인정받던 사람에게 그 직장이 위험한 공간이었던 거예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이렇게 위험할 수도 있구나.”
그 사고 뒤 해당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교육에 들어온 관리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비슷했다. “(관리자들을 보면) 의식도 높고 폭언할 것 같지가 않아요. 관리자들의 질문은 이런 거예요. ‘무슨 말은 해도 되고, 무슨 말은 하면 안 되나?’ 쪼면 되는데, 짜면 성과가 나오는데, 일은 그렇게 배우는 건데, 나도 그렇게 배웠는데…. ‘성과가 저조한 직원은 어떻게 하나?’ 법이 정한 선을 알고 싶다는 거죠.”
특히 정보기술(IT) 분야는 속도가 빠르다. 쫓긴다. 후발 주자가 따라온다는 압박에 조직의 위에서 아래로 노동자를 누른다. 공공기관에선 다른 문제가 보인다. 의전이 중요하다. 딱딱한 조직문화가 수십 년 굳은 채로 있는 것 같다. “다 그렇진 않지만, 지방 공공기관일수록 반말하고, 막내가 커피 타야 한다는 인식이 많아요. 지방의 공공기관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이 0건이라고 집계되는 기관들이 있어요. 말을 못하니까 아예 0이 되어버리죠.”
고생해서, 시험 봐서 들어간 공공기관, 거기서 도망 나오는 건 쉽지 않다. “‘때려치운다고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런 걸 중요하게 듣지도 않으니까. ‘월급 받는 값에 욕먹는 값도 포함돼 있다’ ‘자전거와 사람은 밟으면 나간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래요. 욕먹어도 일하는 거지, 이런 거죠.”
추운데 밖에서 일하면 “위험해”라고 말해주지만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 “직장에서 괴롭히는 상사가 있어”라는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는 게 우리 사회다.
“2021년 언론에 나온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사고 18건을 모아 보니, 우리 직장의 조직문화가 노동자에게 매우 위험하구나 알겠더라고요. ‘저 상사의 폭언이 위험해, 저 상사의 태도가 위험해’라고 이야기를 못해요. 직장 내 괴롭힘이 가진 어려움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조직문화의 원인이 크거든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의 것, 내가 이야기 못하는 것이 많으니까 내재한 위험이 더 크고, 실제 위험한 거예요.”
‘월급에 욕값 포함’이라는 사회
직장에서 상사의 폭언, 욕설, 성희롱, 실적 압박이 노동자의 마음에 병을 만들고 몸도 아프게 한다는 목소리가 직장갑질119의 전자우편으로, 카카오톡으로 소리 없는 구조 요청이 되어 밀려든다.
“성과 중심, 가부장문화, 이런 것에 눌린 설움이 폭발하면서 노동자들이 말하기 시작했고 법도 만들어졌어요. 기업이 내 정신건강을 이렇게 망가뜨려도 되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직장 내 괴롭힘이 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더 많이 말해야 해요.”
그러려면 “사무실도 위험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나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같은 것을 질문하고 이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출근길에는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