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특수검진’ 이렇게 조작됐다
[심층추적] “의사간 견해차이” 무혐의 처분…산업의학계 반발

조호진 기자 tajin@ohmynews.com

는 금년초 전남 여수산단 내 LG정유측이 노동자들의 특수건강검진 결과를 축소·조작한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 사건은 산업의학 전문의사의 전문영역인 ‘직업병 판정’을 일반의사가 판정대상자 면접이나 재검진도 하지 않은채 최종결과를 ‘정상’ 등으로 조작하여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한 사건으로, 보도 이후 노동계 등에 적잖은 파문을 던졌다.

특히 놀라운 점은 노조가 사측의 특수건강검진 결과 축소·조작혐의를 들어 검찰에 고소했으나 검찰은 “의사간 견해차이”를 이유로 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검찰의 처분에 대해 산업의학계 의사들은 “전문적인 진단을 축소·조작한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며, 산업의학의 전문성을 무시한 결론”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연초 이후 그간 총 4차례에 걸쳐 이 사건을 집중보도해온 는 최근 단독입수한 ‘검진원본’을 정밀분석하여 이 사건의 진실의 끝을 다시 쫓아가 보았다….

LG정유 노동자 특수검진 축소·조작 이렇게 전개됐다

전남 여수산업단지에 있는 ‘LG정유 노동조합(위원장 김정곤)’이 노동자들의 특수검진 결과가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당시 특수검진기관이었던 ‘광주김병원’의 내부고발자의 제보에 의해서였다. 의료계의 속사정을 알 수 없는 현장 노동자들로서는 제보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른 산업의사보다 적극적인 특수검진을 펼쳤다. 혈액이나 X-레이 검사에도 나타나지 않은 자각증세나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노동자를 여러 차례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증상을 확인했다. 이처럼 신중한 절차를 거쳐 추적관찰과 작업전환이 필요한 경우 ‘직업병 요관찰자’로 판정하면서 회사와 병원에 미움을 샀다.

이 같은 판정결과가 작업환경과 병의 연관성을 모르는 선배 의사에 의해 조작됐다. 결국 산업의학에 대한 무지와 사회의 낮은 관심에 의해 산업의학계의 전문성과 존재가 무시된 사건으로 남게 됐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지난해 11월 노조위원장 등이 병원을 방문해 특수검진 원본을 확인한 결과 ‘직업병 요관찰자(C1)’인 일부 조합원의 검진원본을 병원이 ‘정상(A)’으로 둔갑시킨 사실을 확인하면서 축소조작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조합원 서아무개씨 등의 수 십 장의 검진 차트가 분실된 사실도 밝혀지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이 병원 산업보건센터 소장인 김양옥(68·전 조선대 의과대 예방의학교수)씨는 2000년 4월 834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상반기 특수검진을 실시한 결과 ‘소음성 난청 직업병 유소견자(D1)’ 1명을 포함한 100명의 노동자를 ‘직업병 유소견자’로 판정했다.

특히 ‘직업병 유소견자(D1)’ 1명을 포함해 17명의 ‘직업병 요관찰자(C1)’에 대해 ‘별지’까지 붙여가며 정밀검사의 필요성을 요청했지만 회사와 병원은 이를 묵살했다.

이처럼 직업병 유소견자를 다수 판정한 사실이 병원과 회사에 알려지면서 김씨는 유·무형의 압력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압력의 발단은 병원이 최종 판정을 앞두고 검진결과를 LG정유에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LG정유 관계자는 김병원에 전화를 걸어 김씨가 자신의 회사를 흠집내기 위한 의도로 특수검진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고 또 병원장은 검진계약을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다른 검진기관 사례를 참고해 판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회사와 병원의 유무형의 압력에 의해 심적인 부담에 시달린 김씨는 특수검진을 최종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병원을 그만두었다. 이 같은 사실은 김씨의 ‘양심선언’을 통해 밝혀졌다.

김씨는 지난 2월 15일 광주전남민주노총 주관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병원장이 타 검진기관의 사례를 참고하여 판정해달라는 요청을 수 차례 한 것이 압박이 되었다”면서 “사임하기 전날(2000년 6월 28일) 병원 직원회의에서 ‘LG회사에 흠집을 내기 위해 C1(직업병 요관찰자) 판정을 많이 내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회사(LG정유) 담당자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고 말하는 병원장의 말에 불쾌한 압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김씨가 병원을 그만두자 이 병원 보건대행관리 의사인 유모(69·가정전문의)씨는 이미 판정한 100명의 ‘직업병 유소견자’ 검진원본 판정란을 화이트로 지우고 종이를 오려 붙이는 방식으로 17명은 정상(A)으로 고치고, 83명은 하향 판정하는 방식으로 축소·조작했다.

광주지방노동청은 이 같은 사실이 일부 드러나면서 LG정유노조와 광주전남민주노총의 거센 반발과 항의시위가 잇따르자 지난 2월 이 병원을 영업정지 4개월로 행정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검진원본 조작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와 검찰고발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봐주기 행정이라는 비난을 샀다.

▲ 특수검진 조작에 항의하며 검진기록표를 펴든 LG정유 노동자들.

ⓒ2002 오마이뉴스 조호진

병원장 김모 씨는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판정기준에 충실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다”며 압력사실을 부인했고 또 “검진원본 위에 종이를 붙인 것은 교체된 의사의 요구였다”고 궁색한 해명을 했다. 또 유씨는 한 지방언론에 “자신의 명의로 판정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며 검진원본 조작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LG정유는 사건 초기에 “검진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며 노조의 압력 주장을 부인했다. 사측은 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수사를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의뢰했으나 검찰은 이에 대해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정상’ 판정 받은 노동자 한 명은 폐암사망, 한 명은 백혈병 치료 중

최근 가 입수한 김양옥씨의 ‘검진원본’과 유모씨의 ‘조작된 검진원본’을 분석한 결과 검진에 참여하지 않은 가정의학 전문의 유씨가 산업전문의의 직업병 판정을 무분별하게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 유모(69) 씨가 조작한 검진원본 가운데 한 장. 원본 하단의 ‘판정’란에 화이트와 종이를 오려 붙이는 숫법으로 판정결과를 조작했다.

ⓒ2002 오마이뉴스 조호진
유씨는 김씨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신경감각 질환이나 간기능 이상에 의한 ‘직업병 요관찰자(C1)’로 판정 받은 노동자를 ‘정상(A)’으로 조작하고 또, 간기능 저하 또는 간장질환 의증에 의한 ‘직업병 요관찰자(C1)’인 노동자를 ‘일반질병 유소견자(D2)’로 하향 판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씨는 이런 조작과 하향 판정을 거쳐 ‘직업병 유소견자’ 100명 가운데 17명을 정상으로 둔갑시키고 83명 가운데 상당수를 ‘직업병 요관찰자’에서 ‘일반질병 유소견자’로 하향 판정했으며 또 ‘작업전환’ 소견을 ‘보호구 착용, 추적관리’ 등으로 낮게 고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조작된 검진원본에는 매우 다급하게 조작한 흔적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화이트를 바르고 종이를 오려 붙인 검진원본에는 산업의 김씨의 도장이 반쯤 남거나 지워지는 등 지저분한 상태다.

병원의 주장대로 임상학적인 판단으로 판정을 번복했다면 유씨나 다른 의사의 이름과 도장을 날인해야 하는데 이를 생략한 채 판정결과만 급히 조작해 마치 유령의사가 판정한 것처럼 괴기한 검진원본이 됐다.

유씨는 마구잡이로 판정조작을 하면서 직업병에 노출된 노동자를 정상으로 둔갑시켰다.

유씨는 특히 ‘소음성 난청 직업병 유소견자(D1)’인 서모(당시 40세)씨를 ‘소음성 난청 요관찰자(C1)’로 하향 판정했으며 정밀검사를 요하는 16명 가운데 백혈구 증가에 의해 ‘직업병 요관찰자’ 판정과 추적검사 조치를 받은 고모(당시 37세)씨와 신경증상에 의해 ‘직업병 요관찰자’ 판정과 추적검사 조치를 받은 조모(당시 30세)씨 등 11명은 ‘정상’으로 둔갑시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김양옥 씨가 간기능 저하에 의한 ‘직업병 요관찰자(C1)’으로 판정한 양모(당시 49세)씨를 ‘정상’ 판정한 것은 의학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양씨의 경우 GOT 66(정상 50이하) GPT 120(정상 45이하)의 수치가 나타났음에도 이를 정상 처리한 것은 축소조작에 급급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간기능 저하로 ‘직업병 요관찰자(C1)’로 판정 받은 이모(당시 39세) 씨를 B형 간염에 의한 ‘일반질병 유소견자(D2)’로 하향 판정했다. 이씨는 간기능 검사에서 GOT(475) GPT(558) 감마 GTP(128) 수치가 정상의 10배를 초과한 상태로 건강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 특수검진 조작에 항의하며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는 LG정유 노동자들.

ⓒ2002 엘지정유노조

유씨는 특히, 이씨가 ‘B형 간염 항원검사(HBsAg)’를 하였는데 음성으로 나타나 B형 간염이 없는 것으로 김양옥 씨에 의해 진단되었음에도 조작 과정에서 ‘B형 간염 의증’이라고 소견을 단 것은 의학적인 상식으로 맞지 않는 판정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유씨는 이와 함께 간기능 저하로 ‘직업병 요관찰자’ 판정을 받은 이모(당시 31세)씨를 비롯한 5명도 ‘일반질병 유소견자(D2)’로 하향 판정됐다.

김병원은 이처럼 유씨로 하여금 판정결과를 마구잡이로 축소·조작한 뒤 전산작업을 마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유씨의 경우 검진 무자격 의사여서 자신의 도장을 찍을 수 없었다. 결국 같은 병원 검진 의사로, 광주지방노동청에 검진 자격의사로 등록된 장모 씨의 도장을 찍어 회사와 노동청 등에 검진결과를 최종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모 씨는 이 병원을 퇴사해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이처럼 비윤리적인 의사가 노동자의 생명을 볼펜으로 긋는 가운데 ‘LG정유 PP복합수지공장(폴리프로필렌을 변형시키는 제조공정)’에서 8년간 근무했던 하청업체 직원 김인강(45·N기업)씨가 지난 4월 폐암3기로 사망했다. 물론 김씨는 특수검진에서 정상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역시 정상판정을 받았던 LG정유의 지모(당시, 방향족 생산2팀)씨는 지난해 LG정유 부속병원에서 백혈구 수치가 낮은 게 발견되면서 검진한 결과 백혈병(재생불량성빈혈)으로 밝혀져 뒤늦게 병원 치료 중이다. 결국 허술한 특수검진과 부도덕한 의료계에 의해 한 명의 노동자는 눈을 감았으며 또 한 명의 노동자는 치료 시기를 놓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LG정유 이영원 홍보팀장은 2일 “특수검진 판정은 검진기관의 고유권한으로 회사가 압력행사나 축소·은폐한 적이 전혀 없다”면서 “폐암으로 사망한 김모 씨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우리 회사와 무관한 사람이며, 또 백혈병(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지모 씨는 부서를 옮겨 근무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LG정유는 올해 검진기관을 서울대로 바꿔 7억 원을 들여 작업환경 측정과 특수검진을 실시한 가운데 곧 결과가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방노동청은 김병원에서 특수검진을 실시한 5개 회사에 대한 검진결과를 조사한 가운데 곧 보고서가 작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사팀에 참여한 한 산업의는 “엉터리 같은 검진과 판정이 이루어졌으며 이 사실이 그대로 드러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검찰 무혐의 처분에 “산업의학 전문성 부인하는 것” 반발

LG정유노동조합은 이 병원 원장인 김모 씨를 ‘사문서 변조 혐의’로, 판정결과를 조작한 유모씨를 ‘변조사문서 행사’ 혐의로, 이와 함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혐의’로 지난 6월 20일 광주지검에 고소했으나 검찰은 지난달 1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 유모 씨가 조작한 특수검진 원본들.

ⓒ 오마이뉴스 조호진
광주지검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직업병 유소견자가 정상으로 판정된 사례는 없었으며 다만 예방의학(산업의 김양욱) 의사와 일반의사(가정의학 전문의 유모씨)의 판정에 대한 견해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 입수한 검진원본 분석결과, 직업병 유소견자가 정상으로 둔갑된 경우가 적지 않아 검찰의 수사결과를 둘러싼 산업의학계의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LG정유노조는 지난달 28일 노조소식 50호를 통해 “볼펜으로 찍찍 긋고 종이를 오려붙여 ‘작업’한 증거물, 자격도 없는 무자격 의사의 판정참여, 유소견자를 축소해달라는 정신적인 압력을 느꼈다고 말한 김양옥 교수의 기자회견 진술 등 명백한 증거와 정황이 있는데도 검찰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고 검찰의 수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김병원 검진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전문의 임상혁(녹색병원)씨는 1일 “작업환경과 병의 연관성을 잘 알 수 없는 일반의사가 산업의학 전문의의 진단을 화이트와 종이를 오려 붙여 번복한 것은 어이없이 조작행위를 한 것이다”면서 “검찰이 이번 사건을 단순히 예방의학과 일반의학의 견해차이에 의한 판정이라고 본다면 이는 산업의학의 전문성을 부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항의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산업의학계와 노동계는 특수검진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형식적인 건강검진은 결국 기업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경우로 대다수 검진기관이 회사와의 계약유지를 위해 형식적인 검진과 판정조작이 관행적으로 지속돼 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특수검진 판정조작 등의 검진비리가 드러나도 사업주는 거의 처벌되지 않고 과태료나 행정처분에 그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형식적인 검진과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집단검진보다 노동자 개인에게 검진기관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개별검진이 이뤄질 경우 검진기관과 회사와의 유착에 의한 검진조작과 비리가 근절될 수 있다는 것.

부도덕한 검진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사업주 처벌강화 등의 제도보완 ▲노동부의 철저한 근로감독과 판정결과에 따른 사후관리 감독 ▲검찰의 적극적인 사법처리 의지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노동계와 산업의학계는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