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내 곁에 산재] 원청은 알고있다, 아파트 공사의 민낯을

30년 이상 타설공으로 일한 복기수씨 인터뷰 / 노동자 목숨 담보로 가격 후려치고 자재 줄이는 건설현장

전수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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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나고 첫 주말인 2022년 2월5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복기수씨를 만나러 가는 길. 경기도 군포시 지하철 4호선 대야미역에 내렸다. 한파특보가 발효된 강추위가 있던 날이었다. 냉동고가 따로 없다. 큰 논이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 ‘대야미’ 역의 입구는 굴다리 아래에 있어 한낮인데도 컴컴했다.

열에 아홉은 타설 직후 임시지지대 해체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됐다. 1월11일 건설 중인 아파트 23층에서 38층 사이가 무너져 노동자 6명이 매몰됐다. 사고 28일 만인 2월8일 저녁 26층에서 마지막 매몰자의 주검을 수습함으로써, 노동자 6명은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만난 복기수씨는 30년 넘게 일한 타설공이다. 타설은 콘크리트(공구리)를 펴주는 작업을 말한다. 복씨를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광주 사고를 보고 놀라셨죠?”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유자차를 시켜놓고 건너편에 앉은 복씨가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무너지는 일은 많아요. 사람이 죽었나, 안 죽었나가 중요한 거죠.” 복씨는 사고가 있던 날 저녁에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서 무너진 아파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 한두 개층이 아니라 건물의 10여 개층이 거의 다 무너졌다는 걸 알았다.

“(콘크리트 타설하는 층 아래에 설치해야 하는 임시지지대인) 동바리들을 놔둬야 하거든요. (타설한 콘크리트가) 하루아침에 굳는 게 아니잖아요. 최소한 2개층에 자재를 놓고 일해야 하는데 열에 아홉은 그렇게 안 해요. 타설하고 바로 (동바리를) 해체해버려요. 자재가 돈이잖아요.” 광주 아파트 붕괴 소식을 들은 복씨는 자신이 일했던 현장을 떠올렸다. 복씨가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타설’ 작업을 설명하는데, 고층 건물이 많아서인지 사진의 배경에 하늘이 많이 보인다. 차곡차곡 위로 올라가는 건물에 서서 기계를 작동시켜 콘크리트로 바닥을 다지며 작업한다.

복기수씨는 198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타설 일을 배웠다. “친구들하고 생활비 벌려고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 인력시장에 나가서 시작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타설 일을 시작했다. “오야지(우두머리)가 법이에요. 새벽 5시에 나가서 일합니다. 일 가르쳐주는 30대, 40대 삼촌들도 (오야지한테) 말 한마디 못하더라고요.” 초과(노동)수당을 달라고, ‘야’라고 부르지 말라고 요구한 삼촌들이 잘리는 모습을 봤다. “오야지가 ‘쟤, 내일 부르지 마’라고 하면 다음날 이 삼촌이 안 보이는 거예요.”

타설 일은 스무 살의 건강한 노동자에게도 너무 힘들었다. “펌프카가 현장에 없을 때예요. 우리 일을 ‘공구리패’라고 했어요. 반죽을 삽으로 섞어서 리어카에 실어 날랐죠. 사람도 20~30명 됐고. 일하고 숟가락을 들면 손이 덜덜 떨렸어요. 공구리 독이 있어요. 지금은 보안경도 쓰지만, (콘크리트 반죽이) 상처에 닿으면 피부가 괴사한다고 했어요. 눈에 튀고 상처에 스치면 고통이 며칠씩 가요.” 복씨는 “다시는 이 일을 안 하겠다고 현장에 옷을 다 벗어놓고 맨발로 집에 간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고 말했다.

강원도, 충청도, 거제도를 떠돌아다녔다. “(작업환경이) 위험하다고 아래에 발판을 깔아달라고 했더니 ‘말이 많다’고 해서 현장에 못 들어간 적도 있어요.”

겨울에는 콘크리트가 언다. 얼면 반죽을 펴는 게 힘들다. 여름에는 그늘로 갈 수가 없다. 타설 작업은 항상 건물의 맨 위에서 하기 때문이다.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중단할 수도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단 일을 시작하면 끝내야 한다. 여름에는 타설을 시작해서 일을 끝낼 때가 되면 콘크리트가 꾸덕꾸덕해진다. “여름에는 바로 굳으니까 처음부터 잘하지 않으면 죽어나죠. 겨울에는 굳지를 않거든요. 눈이 오면, 눈 위에 공구리를 쏘면 눈이 안 녹아요. 부실이 되는 거죠.”

30년 넘게 타설공으로 일한 복기수씨가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 유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술 발달해도 아파트가 무너지는 이유

복씨도 타설하다가 무너져서 아래로 빨려 들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아파트 공사 현장이었다. 지하주차장 경사로 램프를 평평하게 하는데,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무너질 때는 전조 증상이 있다. “동바리를 10개 세워야 하는데 7개밖에 안 세운 거예요. 철근에 걸려서 철근을 잡고 올라왔어요.” 펌프카에 걸려 아래로 떨어졌다가 안전망에 걸려 무사한 날도 있었다. 넘어지는 철근 더미에 깔려 숨진 동료가 있고, 일하다가 잠깐 쉰다고 공사장에 앉아 있다가 숨진 이도 있었다. 사망은 알려지기 마련이지만, 골절되고 절단되는 사고는 치료비만 받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다.

“현장 소장이 타설, 형틀, 철근 입찰을 하면 1만6천원 단가가 1만3천원, 9천원으로 내려가요. 단가 9천원에 신호수 인건비, 하자 보수까지 (입찰한 업체에) 덤터기를 씌우죠. (입찰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동자 7~8명이 필요한 현장에 5~6명이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불법 하도급이에요.”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 한, 건설현장의 인력 구조는 99% 이렇게 돌아간다. 장비도 기술도 발달했는데 아파트가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다. 지어놓으면 그렇게 비싼 아파트를 이렇게 가격을 후려쳐서 짓는다. 자재를 제대로 다 쓰면, 한 개층이 무너져도 노동자가 죽지 않을 수 있다.

저가의 자재에 나쁜 콘크리트를 쓰는 현장, 반대로 좋은 자재를 쓰고 정상적으로 시공하는 현장이 어딘지 노동자는 일하면 안다. “원청에서 이런 현장을 모를 수가 있나요?” 물었다. “하청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동바리) 해체는 언제, 타설은 언제, 원청이 확인해요.” 복씨가 답했다.

공구리패를 ‘타설공’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노동조합이 생겨서 복씨도 가입했다. “힘들게 일해도 대우를 못 받으니까 내가 (노동조합을) 하자, 생각했어요. 타설이 건설현장의 꽃이거든요. 형틀, 철근, 설비 다 해놓으면 우리가 타설을 딱 해서 골조가 끝나는 거예요. 예쁘게 잘 나오면 뿌듯하고, 멋있다 하거든요.”

중대재해법에 전국 건설현장은 ‘일단 멈춤’

복씨는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중서부지부 타설팀장이 됐다. 많은 타설공이 ‘오야지’가 자를까봐 노조 가입을 주저한다. 일을 배울 후배들은 없고 필리핀, 베트남, 몽골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많아졌다. 건설노동자들이 지은 아파트는 몇억, 몇십억의 부동산이 된다. 노동자가 받는 돈은 그대로지만. 그래도 복기수씨는 말한다. “원청, 감리, 타설공 각자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죠.”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의 공사현장이 잠시 멈췄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업장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멈춰서 붕괴도 매몰도 없게 한 그 며칠, 건설기업들의 마음가짐은 어떤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