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내 곁에 산재] 로켓 쏘는 노동자의 금간 뼈, 찢어진 손
날로 높아지는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강도, 야간근무는 어쩔 수 없대도 안전은 보장해야
전수경 활동가
“이동하세요.” “이거 하시면 됩니다.”
2019년 겨울, 전직 어린이집 교사였던 한은혜씨가 인터넷에서 ‘1일 알바(아르바이트)’를 찾아 쿠팡 물류센터에 처음 간 날 제일 많이 들은 말이었다. “선택할 수 없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몰라요.” 영유아를 돌보던 한씨가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우선 ‘딱 하루만’ 일할 수 있는 알바를 찾은 것이 쿠팡 물류센터였다. ‘1일 알바’ 자리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다. 물류센터 일자리를 잡은 건 다행이었다.
물류센터의 공정은 △상자를 뜯어 상품을 선반에 올려놓는 진열 △상품을 골라 카트에 담아 포장으로 보내는 집품 △카트에 실려온 상품을 받아 레일에 올려놓고 포장하기가 기본이다. ‘로켓배송’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손을 타지 않고 로켓처럼 쏘아 올려지는 배송은 없다.
쿠팡에는 꿀보직이 없다
알바 첫날은 ‘집품’ 업무를 맡았다. 휴대단말기(PDA)를 들고 다니면서 물건을 골라 2단짜리 카트에 담은 뒤 포장 공정으로 보내는 일이다. “(집품이) 장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제일 좋은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발등이 갈라지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쇼핑을 줄곧 9시간씩 할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시작한 ‘1일 알바’에 하루가 얹어지고, 또 하루가 얹어졌다. 알바는 1년간 이어졌다 “하루 알바도 근속이 중요해요. 자주 빠지면 업무 배정에서 밀려요. 그날그날 알바를 신청하고 배정받는 거니까요. 근로계약서요? 출근할 때마다 1일 계약서를 써요.” 진열, 집품, 포장, 출고, 입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면 어느 공정에라도 보내졌다.
같은 공정이라도 매번 일이 달라진다. 어느 포장 라인에 줄을 서느냐에 따라 쌀을 포장할 수도 있고, 작은 화장품을 포장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 의료제품 같은 위험성이 큰 고가의 상품은 포장에 손이 더 많이 간다. “장갑을 끼고 포장해도 손의 피부가 갈라지고 손목, 팔꿈치 할 것 없이 욱신거려요.”
‘1일 알바’ 일에 적응한 뒤로 계약직 사원을 채용하는 공고가 떴다. 한씨는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3개월, 9개월, 12개월… 계약직이라도 계약기간은 다양하다. 계약직이 되면 연장근무수당과 특근수당을 더 받을 수 있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 4대 보험도 가입할 수 있다. 한씨는 단기계약을 거쳐 진열 파트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이 됐다.
오후 교대조로 일하는 한씨는 오후 6시까지 출근해서 새벽 4시30분에 퇴근한다. 10시간에는 늘 기본으로 하는 연장근무가 포함됐다. “머리 위부터 바닥까지 4단, 5단으로 된 선반에 물건을 진열하는 거예요.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무거운 건 아래 칸, 가벼운 건 위 칸.” 어떤 상품이 제일 무거운지 물은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이미 상품이 가득한 선반에 새로 공간을 만들면서 어느 위치에든 물건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쌀, 음료수, 세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있다. 음료수도 대용량 팩으로 묶인 상품이 많아지고 있다. “선반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상품이라면 모두 진열해요.”
상품의 입고, 검수, 진열, 출고 등을 하면서 사람이 들 수 없는 무게와 올릴 수 없는 높이에서는 지게차를 사용한다. “레일에 쉼 없이 물건이 쏟아지는 드롭존이라고 있어요. 사람이 레일에 담긴 바구니를 쉬지 않고 레일 아래로 내려야 하는데 노동강도가 날로 높아지고 위험해지고 있어요.”
2021년 6월 경기도 이천의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덕평물류센터의 물량이 넘어오면서 경기도 화성의 동탄물류센터는 쿠팡 물류센터 가운데 전국에서 제일 많은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쿠팡에는 꿀이 없다고 해요. ‘꿀보직’이 없다, 모두가 힘들다고.” 대형 화물차에서 물건이 쏟아지는 시점부터 포장된 상품이 지역별로 이송되기까지 물류센터 안에는 온갖 상품이 쏟아지고 쌓이고, 쏟아지고 쌓인다.
잘 굴러가는 카트는 선착순
여성노동자라서 겪는 문제도 많다. “밤 9시에 출근하는 야간조 일을 하는 여성사원들은 무월경, 과월경 등 증상도 다양해요. 수술받은 동료도 있어요.” 물류센터가 철골로 된 건물이라 5월부터 더워서 선풍기를 틀어야 하고 겨울에는 영하의 기온이 그대로 작업환경이 된다. 회사가 냉난방시설을 해주겠다고 한 지 여러 해가 됐는데 이번 겨울도 난방 없이 났다. “병원은 당연히 다니죠. 손목, 무릎, 허리에 주사 맞으면서 약 먹고. 손톱이 들리고 뼈에 금이 가고 깁스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도 재계약이 안 될까봐 산재 신청을 안 하려고 해요. ‘산재 신청하면 재계약 안 된다’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취업 준비를 하던 대학생들이 20대 중반에 ‘취업만 되면 (쿠팡을) 나가겠다’고 하면서 20대 후반이 되도록 물류센터에 계속 출근한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직장인, 방과후교사를 하다 코로나19로 일이 없어진 선생님, 자영업 하던 전직 사장님이 단기 알바로 와서는 고된 시간을 보낸다. 물류센터에서 쓰는 용어가 낯설어 움직임이 조금 늦어지면 관리자들로부터 “못 알아듣냐”는 고성을 시작으로 폭언과 막말이 날아온다.
‘1일 알바’로 시작해 계약직으로 자리잡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한은혜씨는 이렇게 답했다. “쿠팡의 장점은 임금체불이 없다는 거죠. 수당 계산 잘해주고요.”
한씨는 24시간 동안 물류가 도는 시스템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밤에 아기 분유가 떨어졌는데 쿠팡 배송으로 받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24시간, 야간근무가 돌아가므로 “안전은 지켜져야 한다”고 한씨는 말한다. “어떤 안전이 지켜져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물었다. “잘 굴러가는 카트, 잘 찍히는 스캐너가 있어야 해요. 고장 난 게 많아요.” 카트와 스캐너를 받는 건 선착순이라서 출근시간 1시간 전, 오후 5시에 출근해서 줄을 선다. 카트 바퀴 하나가 1천원이라는데 회사는 고장 난 바퀴를 고치지 않고 방치한다. 물류센터 통로에 형광등이 나가 컴컴하고, 화장실에는 차가운 물만 나온다. 문 앞에 매끄럽게 도착하는 쿠팡의 배송시스템과 달리, 물류센터 안에서는 고장 난 카트로 쉬이 물건과 노동이 연결되지 못한다.
2021년 크리스마스 전날 동탄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중 쓰러진 여성노동자가 2022년 2월11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영하 8도의 날씨에 입고 파트에서 새로 들어온 상품을 전산에 등록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는 구토와 두통 등 몸 상태가 이상함을 느끼고 “119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회사 차원에서 결정이 나기 전에는 아무도 119에 신고할 수 없었다. 관리자들은 본사 안전보건팀의 결정을 기다렸다. 여성노동자는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잃은 채 50여 일간 입원해 있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뇌출혈이었다.
구급차보다 중요한 회사 결정
2020년 이후 쿠팡 물류센터에서만 노동자 6명이 심장마비 등으로 숨졌다. “바로 신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사고가 일어나도) 조장들이 119를 떠올리지 않아요. 아무리 상부 보고가 중요해도, 상급자가 중요해도 생명 앞에서 응급전화를 했어야죠.” 이 말을 하는 한씨에게서 지친 기운이 느껴 졌다.
요즘 한씨는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대신 동료들과 함께 쿠팡 동탄물류센터, 자신의 회사 앞에서 ‘하루를 일해도 존중받고 싶다’ ‘로켓배송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노회찬재단×<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