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내 곁에 산재] 프리랜서니까 4대 보험, 수당도 프리?

청년노동자 위한 금융지원, 코로나19 지원금에 설렜다가 실망하길 반복. 손목 아파도 ‘포기’가 익숙해진 영상 편집 비정규직 이현우씨

전수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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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6일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영상편집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현우(가명)씨를 만났다.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고유한 사정을 두드려서 뾰족한 데 없이 평면으로 만들고는 그 틀에 맞추지 못하면 밀어내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그 사정이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사정’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업 세계에서는 그 업계에서 관행적으로 굳어진 것이 많다. 이현우(가명)씨도 영상업계 안에서 만들어진 계약의 특수성 때문에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씨는 ‘청년’이고 ‘노동’을 하는데 ‘청년노동자’를 보호해준다는 정부 정책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2022년 4월6일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이 한창인 야외 카페에서 이현우씨를 만났다.

6년째 같은 회사 근무 중이지만 프리랜서

교육영상을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회사에서 6년째 일하는 이씨는 프리랜서다. 2016년부터 회사를 옮긴 적이 없고 주 5일 근무, 때로는 주말근무도 하지만 회사에 고용되지 않았다. 회사와는 용역으로 계약했다.

“오전 10시30분에 출근해서 저녁 7시30분에 퇴근하죠.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고요. 출근하면 야간 근무팀이 편집한 영상을 추출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일부터 시작해요. 하루 8개 이상의 강좌를 편집하고 퇴근하죠.”

쓸모를 알 수 없는 고문, 사외이사 등으로 일하면서 고액의 보수를 받아간 이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넘쳐난다. 회사가 이씨를 직원으로 직접 고용하지 않으려는 구실은 무엇일까. “처음에 알바(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11개월까지만 계약한 알바. 12개월 하면 퇴직금이 생기기 때문에 한 달 적게 계약한다고 하더라고요. 11개월 알바하고 나니 계약을 더 하자고 해서 그때부터는 2개월에 한 번씩 계약을 연장하고 있어요.” 2개월마다 계약서를 쓰자니 회사도 번거롭겠다. “2개월마다 계약이 자동 연장되도록 돼 있어요. (계약서에) 도장은 1년에 한 번만 찍어요. 용역계약서라고 돼 있죠.”

회사는 불편할 게 없다. “4대보험 없고요, 퇴직금 없어요.” 회사는 비용을 절감한다. 임금은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이 월급이에요.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계산하는데 종합소득세 3.3%를 떼니까 최저임금보다 더 적은 거네요. 몇 해 전에 최저시급 130원이 올랐을 때는 그 인상분을 반영 안 해서 최저임금이 안 될 때도 있었죠.”

출근할 때는 지문을 찍고, 지각은 꼬박꼬박 체크된다. 주말에 일해도 추가 수당이 없다. 새벽 강의부터 오후, 야간 강의까지 과목별로 수업이 진행된다. 수업이 끝난 뒤 12시간 안에 강의 영상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가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는 강의실에 오는 ‘현강생’이 없어지고, 인터넷으로 수강하는 학생이 많아져서 업로드해야 하는 강의가 많아졌다. 강의를 편집해서 올려야 하는 시간도 촘촘해졌다. 종일 앉아서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업한다. 손목이 아파, 몇 개월에 한 번씩 물리치료를 받는다.

이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상일을 좋아했다. 대학에서 영상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방송일을 시작했다. 음악 방송사, 교육 방송사에서 차례로 일했지만 늘 비정규직이었다. 피디가 요구하는 그래픽을 편집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방송 프로그램들은 최저임금에 맞춰 인건비가 계산됐거나 시급이 최저임금보다 낮기도 했다. 같이 일한 피디들은 다 계약직이었다.

영상업계는 늘 ‘비정규직’만

“촬영, 편집, 음향, 조명… 영상일은 늘 비정규직이에요. 피디도 계약직이 대부분이고 외주 제작사가 필요할 때만 사람을 불러서 쓰는 식이니까요. 방송, 영화는 일일계약직도 많죠. 영상일은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방송사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에 관심이 많아지지 않았냐고, 방송업계 안에서 변화가 있지 않냐고 물었다. “외주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방송사가 고용하면 더 문제가 되니까.”

지금 일하는 회사는 영상업계 관행을 따라 프리랜서로 영상편집 인력을 채웠다. 국민연금은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내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가입되지 않았다. 영상일을 좋아하고 업무에도 능숙해졌지만, 이씨는 정기적인 수입이 있기를 바란다.

간혹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여 있는 친구들이 ‘청년’이라고 이름 붙은 경제지원, 금융지원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소식을 나른다. 잠시나마 기대감으로 웅성웅성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친구들은 이씨가 “나는 해당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을 되풀이해 듣는다. 프리랜서로 불리는 많은 사람이 겪는 기대와 실망의 곡선이 비슷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지원은 사회보험료가 높으면 탈락하는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는 보험료가 높다.

“4대보험이 있어야 지원해볼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사는 지자체에서는 4대보험이 필수인 경우가 많아서 아예 신청을 못해요.”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이 있다기에 낮은 소득을 보충할 수 있을까 잠시 설레기도 했다. 지원금을 지급하는 기준으로 제시된 수입을 보니, 이씨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 소득증빙 서류를 떼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안 된대요. 이유요? 말을 안 해줘요. 저도 더 묻기 어려웠어요. 계속 일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다시 말해도 서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회사와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실속 없이 갑질만 당할 수도 있다. 지금도 회사는 업무 속도가 빨라서 편집이 일찍 끝나면 그 시간에 한눈팔지 말라고 지적한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어떤가요? 이런 지원금을 신청하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요.” 이씨가 답했다. “모르겠어요. 서로 대화가 없어서요.” 같은 팀에서 일하는 프리랜서가 8명 있지만 교류가 없다.

‘때려치우고 노동청에 신고할까?’ 생각도 해본다. 프리랜서가 아닌데, 노동자인데, 회사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불안한 시간이 흘러간다.

4대보험의 추억이 아련한 봄날

이씨는 인터뷰가 있기 전에 코로나19에 확진돼 회사에 못 나갔다. 일하지 못한 시간만큼 임금이 깎인다. 계약의 자유는 시장경제를 따르지만 보상은 시장경제가 아닌 예외적 룰을 적용한다. 기업은 최저임금을 사랑한다. 기업 천국에서의 프리랜서 노동이다.

“아, 4대보험 가입한 적 있어요!”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이씨의 목소리가 유쾌해졌다. “대학생 때 식당에서 야간 알바를 했거든요.” 이씨가 웃는다. “두부요리 하는 집인데 낮에는 식사, 밤에는 주류를 팔았어요. 학교에 다니니까 밤에만 알바를 했는데 사장님이 4대보험을 들어줬어요. 착한 사장님이었죠.” 두부요릿집에서는 6개월 일했다. 4대보험의 추억이 아련한 봄날이다.

글·사진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 노회찬 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