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내 곁에 산재] 형틀 목수, 이런 재미난 일을 남자만 해오다니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 신옥자씨, 여성 위한 휴게실·화장실 없는 노동환경에 건설업 고유의 야외 노동까지

전수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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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 신옥자씨가 2022년 6월13일 경기도 오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는 못을 담은 주머니를 차고 망치를 들고 다닌다. 콘크리트를 부으려면 건물 뼈대에 폼을 이어붙여 거푸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폼을 이어가며 붙이는 게 형틀 목수의 일이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유로폼(합판에 철제 틀이 붙음), 알폼(알루미늄이 붙음), 갱폼(철로 만들어짐)의 순서로 무겁다. 타워크레인이 이런 폼을 현장에 옮겨놓으면 목수들이 폼을 들고 이어붙인다. 목수 대부분은 중장년 남성이다.

“힘들고 무겁고 지저분하고 위험하죠”

보기 드문 여성 형틀 목수인 신옥자(50)씨는 40살이 넘어 형틀 목수가 됐다. 형틀 목수는 건설 현장 초보자가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면을 보고 건축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건설일 가운데도 힘든 축에 든다. 숙련도가 올라가면 기능공이 되고 급여도 올라간다. 신씨는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에서 운영하는 건설기능학교에서 형틀 목공 훈련을 받았다. 현재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 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작업을 한다. 이 현장에 온 지 1년이 돼간다.

“힘들고 무겁고 지저분하고 위험하죠.” 형틀 목수의 일을 물으니 거침없는 답이 돌아온다. “폼이 기본적으로 무겁고 파이프가 4m나 돼요. 오비끼(나무 자재) 자체가 무겁죠. 폼에 기름이 많고 폼 자체가 지저분해요.”

콘크리트가 묻어나지 말라고 기름칠한 폼은 19.5㎏짜리가 많다. 신씨는 직접 이 폼을 들고 나른다. 폼과 폼을 연결할 때는 핀으로 조립하거나 망치질한다. 폼이 무거워서 힘들고, 내가 한 실수가 아니어도 내가 다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족장(아시바)을 오르내려야 할 때도 있고, 자재를 위로 전달하고 전달받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자칫 자재를 놓쳐 자재가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위치를 잘못 잡아도 내가 다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슬래브 위에서 떨어진 적도 있어요. 발판이 받쳐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망치로 엄지손가락을 치기도 하고, 위에서 물건이 떨어져 어깨에 맞기도 하고.” 규격화돼 나온 폼으로 이어지지 않는 공간이 생기면 목재를 잘라 망치질, 못질을 하면서 그 공간을 채운다. “나무 자를 때도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어요.” 신씨가 족장을 딛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폼을 이어붙일 때는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다른 눈들이 아슬아슬하다. 마땅치 않아하는 눈빛도 많다.

신씨는 이 현장에서 일하는 팀원 27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여성 형틀 목수는 적다. 적지만 있다. 형틀 목공만이 아니라 철근 미장, 설비, 전기, 신호수, 타일 등 건설 현장의 모든 공정에 여성이 있다.

층 높아지면 화장실 다녀오는 데 30분

“여성들은 휴식 시간에 쉴 데가 없어요. 저는 우리 팀에서 컨테이너에 칸막이를 해줘서 잠깐이라도 혼자 누울 수 있어요.”

수십 개 하청업체와 그 아래 수백 개 팀이 들어오고 나가는 건설 현장에서 여성 팀원이 쉴 곳을 마련하는 팀이나 업체가 아직은 거의 없다. “여성 노동자들은 구석에 쉴 곳을 찾거나 남성들 휴게실을 같이 써야 해요.” 드물지만 여성휴게실이 있는 곳도 점차 생기고 있다.

“화장실 가는 건 정말 힘들어요. 층이 높아지면 다녀오는 시간이 30분은 걸리니까 눈치가 보여요. 점심시간이나 참 먹는 시간에 가려 해도 멀죠.” 넓은 공사 현장에서 물이 내려가고 손을 씻을 수 있는 화장실까지 가려면 왕복 30분. 작업 속도가 있는데 혼자 자리를 뜨는 일은 어렵다. 팀원들이 이해해주는 편인데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남자들은 대충 뒤돌아서 용변을 처리한다. “여름에는 땀으로 나가서 그나마 (화장실을) 적게 가요.” 다른 여름 노동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소금 섭취하라 주고, 물 많이 마시고 그늘에서 쉬라 하죠.”

2021년 여름 건설노조가 찍은 사진을 보니, 대형 공사장 한가운데 좁은 그늘막 아래 건설노동자가 오밀조밀 모였고, 현장의 얼음보관소 앞에는 플라스틱 보랭통을 든 노동자들이 배급받는 양 줄지어 서 있다. 기온이 30℃ 넘어가는 여름날, 아스팔트나 건설 현장의 온도계는 38℃를 가리킨다. 한여름에 마스크·작업복·안전모·안전화를 온몸에 두른 채 철근을 나르고 망치질할 때의 더위는, 국어사전이 풀이하는 명사 ‘더위’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현장의 온도는 실감이 안 나요. 헉헉 숨이 차요. 숨이 막히죠.”

2022년 5월 말, 고용노동부는 ‘폭염에 의한 열사병 예방 이행가이드’와 ‘사업장 자율점검표’를 발표했다. 건설노조가 2021년 여름 건설노동자 1453명에게 물어본 조사 결과를 보면, 체감온도가 35℃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이어지면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5시에 작업을 중지하라고 정부가 안내했는데도 ‘일을 계속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76.2%였다. 정부는 2022년에도 같은 자료를 배포했다. 2022년 여름의 폭염에도 실내가 아닌 곳에서, 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과 그늘, 휴식을 제공하라는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는 힘이 있을까. “더위 먹고 힘들어하면 안 돼요. 요령껏 해야 해요.” 요령껏. 신씨의 이 말을 폭염 속에서 일할 모든 노동자에게 들려주고 싶다.

“아저씨는 뭐 해요?” 질문, 걱정, 지적, 감탄

날씨 이야기에서 다시 현장 이야기로 돌아왔다. “힘들죠. 버거울 때는 있어요. 그래도 현장 닫는 일요일만 빼고 일주일 만근이에요.” 건설 현장에서 여성 형틀 목수로 일한다는 것은 남성 노동자들이 던지는 많은 말을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저씨는 뭐 해요?” 처음 본 공사장 노동자들은 신씨 ‘아저씨’(남편)를 궁금해한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여러 종류의 걱정, 지적, 감탄이 이어진다.

“내가 모르는 100명이 나를 알아요. 내가 높이 올라가서 폼을 붙이고 있으면 ‘남자들은 뭐 하냐’고 우리 팀을 찾고, 망치를 들고만 있어도 ‘대단하시네’ 소리를 들어야 하죠.” 화낸 적은 없다. 아, 전에 일했던 현장에서 현장 소장이 ‘아줌마’라고 불러서 화낸 적이 있다. 소장은 이후 남성 노동자들처럼 ‘신옥자’ 형틀 목수, 이름을 불렀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건 자부심이 느껴진다. 한장 한장 이어진 폼을 볼 때 뿌듯하다. “일이 좋아요. 보람차요.” 신씨는 건설일 이전에 다른 일을 했다.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했다. 그런데 형틀 목수처럼 재미있는 일은 처음이다. 무언가를 건설하는 일, 없던 것을 솟아나게 하는 일, 이렇게 재미난 일을 그동안 남자만 해왔단 말인가. “살아남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건설 현장에서 여성도 같이 일할 수 있게 노동환경도, 동료들의 시선도 조금씩 바뀌면 좋지 아니한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노회찬 재단 × <한겨레21> 공동기획 ‘내 곁에 산재’: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