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지금, 여기]더 많은 정치방역이 필요하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 예방의학 전문의
세계 7대 불가사의 목록에 오르기에는 좀 모자란 감이 있지만, 어쨌든 현재 대한민국 최고 미스터리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과학방역’이다. 소문은 무성하지만 그 실체를 본 사람도,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주로 ‘정치방역’에 대비되어 쓰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정치란 당파적·음모론적·비과학적인 것이고, 그에 비해 과학은 불편부당·객관적·합리적이며 진리에 더 가까운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다.
과학과 전문가는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는 ‘정답’을 이미 알고 있는데, 정치가 자꾸 끼어들어 ‘오답’을 제출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당혹스러운 대목은 과학방역을 주창하는 이들이 주로 정치인, 즉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토록 겸손한 태도를 가진 이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겸양지덕도 과유불급. 전문가는 세상만사 만물박사라서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분야를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인 것이다. 전문가, 특히 과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데이터가 말하는 것을 넘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훈련받은 이들이다. 근거가 부족하면 후속 연구를 해야 하고, 모든 연구는 크고 작은 제한점을 갖고 있기에 단정적 결론을 내리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감염병 위기 대응이 이렇게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선의 결론을 내리고 빠르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과학적 타당성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정책의 대상이 사람들이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그 정책이 비로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대응에 필요한 지식과 전문성은 단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게 아니고, 또 전문가들이 다 모인다고 해서 최고의 방역대책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여러 명의 연예인 얼굴에서 가장 매력적인 눈, 코, 입 부위를 모아 편집한 사진이 기대만큼 예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최고의 바이러스 전문가라 해도 개인들의 방역 실천을 촉진하는 행동학적 중재에 대해서까지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감염병 명의라는 사실이 지역별 의료 자원 예측의 전문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 타당한 ‘좁은’ 대안들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전문성이다. 이를 종합하여 정답은 아닐지언정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이 해야 할 몫이다.
사실 과학기술과 전문가를 통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술적 패러다임’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과학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과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오늘날의 상식이다. 지난 2년 반을 돌아보자. 진단기술과 치료제, 백신개발 속도는 정말 놀라웠지만, 바이러스는 계속 한 발씩 앞서나갔고 최신 방법을 활용한 전문가들의 유행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전문가나 정부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감소하고 사회적 갈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전문가에게 전권을 부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최대한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신뢰를 구축하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무릇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불가사의한 과학방역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성을 가진 정치방역, 사회정의를 보장하는 정치방역이다. 경제적 곤란에 직면한 영세자영업자들 노동자들, 방역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공공 부문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는 정치방역, 불평등한 부담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그런 정치방역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