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0 프레시안] 

 

힘겹게 꺼낸 “못하겠어요”에 “천천히 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수경의 MZ 여성 그리고 빈곤] 공공기관 기간제 에이치의 눈물은 정신적 문제일까

 

과거부터 사회학적으로 ‘세대론’은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MZ세대가 대표적이다.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고 ‘워라밸’을 지키는 세대로 규정된다.

그런 의문도 든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더 정확히는 자신의 근무조건에 적극 문제제기를 하고, 보장된 휴식시간을 반드시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같은 세대 내에도 부모의 능력과 교육, 성별, 태어난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불평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어떤 동질성’이 같은 세대라고 치부하며 그들을 MZ로 묶어버린다. 이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자칫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은폐 내지는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만난 10명의 도시 속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세대이나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MZ세대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도시 속 2030 여성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편집자

 

에이치와 만난 2022년 겨울. 월요일이었고 점심시간이었다. 인근 빌딩에서 나온 직장인들로 거리가 활기찼다. 에이치와 만나기로 한 카페도 음료를 주문하는 줄이 길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는데도 에이치는 오지 않는다. 전화를 몇 차례 해서 통화가 되었다. 카페 문을 열고 숨이 차게 들어오는 에이치는 같은 시간에 약속을 두 개 잡았다고 한다. 다른 자리에 있다가 급히 뛰어오는 길이다. 에이치의 휴일은 월요일이다, 일요일 저녁까지 꽉 채워서 일을 한 뒤의 휴무일. 사람 만날 일도 있고 이런 저런 미뤄둔 것들로 분주한데 모르는 이와의 인터뷰까지 잡혀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숨찬 휴일에 일 한 가지를 얹어주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기간제 노동자. 에이치는 신도시 지자체가 운영하는 문화 관련 기관에서 일한다. 일요일 저녁까지 프로그램이 돌아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기관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이렇게 뛰어 다니듯이 일에 쫓기게 될 줄은 몰랐다. 기간제 노동자는 기간을 정해서 계약하니까 정한 기간이 끝나면 다시 본다는 보장이 없다, 에이치가 이 기관에서 필요 이상으로 일해야 할 동기가 없다. 계속 계약이 연장될 일이라면 왜 기간제로 고용하나. 기관도 과한 요구를 할 만큼의 업무가 없어야 한다. 기관이 에이치에게 부과해 온 업무들은 어떤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에이치에게로 다다른 것일까. 에이치에게까지 일의 이동에는 미안함, 저어하는 마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직의 위계에 나이, 성별이 더해지고, 에이치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능력과 경력을 위한 자발적인 노동의 의욕(?)을 이용한다.

 

에이지는 이 기관에서 계약연장이라든지 정규직이라든지 같은, 안정적인 미래를 가능성으로조차 올려두고 있지 않았다. 일자리는 기간제 뿐이다. 정규직의 기회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어려우나, 그 기회를 잡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돈, 시간 따위도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기관에서 기간제로 일을 시작하면서 에이치는 어린이 사업부서로 배치되었다. 어린이들은 이 센터의 가장 큰 고객. 신도시에는 어린이 손님이 많다. 어린이가 올 때는 어린이의 보호자도 함께 온다. 에이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업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었다. 기관에서 유일했다.

 

기관의 어린이 고객과 그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잘 되면 기관 이용률이 높아지고 시설 운영의 효율성에 대한 점수가 올라가면 예산도 원활하게 배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관의 장이 계속 장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 기관의 장에 대한 인사 평가도 연관되어 있다. 좋은 사업 하나가 기관을 살리고 자리를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 자료사진. ⓒ연합뉴스

 

에이치가 오자 기관의 장은 ‘인재가 왔으니 우리 기관을 살려보자’ 하면서 의욕을 불태웠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경력이 될 거야’ 관리자들도 에이치를 보며 흐믓해 했다. ‘좋겠다, 네게 기회를 준 거야’ 신입의 미래를 생각하는 진취적인 직장의 분위기마저 만들어졌다.

 

에이치는 평일에 하나 주말에 하나, 두 개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전에 없던 대형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오는 어린이들은 어려서 손이 많이 가고 수업 준비가 더해졌다. 에이치가 해야 할 원래의 업무량도 그대로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맡아 하는데도 에이치의 통장에는 월급 외에 아무 것도 찍히지 않았다. 기관은 강사료도 연장 수당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간제 노동자의 업무에는 프로그램 기획도 수업진행도 들어있지 않으니, 에이치의 강사료를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은 많아졌는데 지출은 늘지 않으니 기관에게 ‘꿀’이 아닐 수 없다.

 

기관에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위한 재료, 도서가 자주 들어왔다. 프로그램 재료와 도서 목록을 확인하면서 기록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진열한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오래되고 낡은 장비, 도서들은 찾는 이가 적으니 자리를 옮겨준다. 기관의 기본적인 일이라 기간제 뿐만 아니라 정직원들의 일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이 많이 찾는 놀이감과 도서는 낮게 배치해야 한다. 둘러보면 정규직 직원들은 다 회의에 들어가 있고 기간제들만 쪼그려 앉아서 재료를 정리하고 있다. 정규직은 회의를 자주, 오래 한다. ‘효율적이진 않아요.’ 에이치가 웃는다.

 

기간제 노동자도 모두가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옆 부서의 기간제 노동자는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못하겠다고 했다. IT업계에 있다가 전직을 했다는 그는 일을 적게 하고 싶어서 기간제를 택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못하겠다고 한 일은 에이치에게 왔다. 다른 기간제 한 사람은 나이가 많았다. 관리자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에게는 일을 잘 안(못) 시켰다. 정규직들은 기관에서 나이는 가장 적고 성실한 에이치에게로 일을 물어왔다.

 

문화사업을 하는 기관이니 홍보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큰 기관들은 홍보물은 외주를 준다. 에이치가 일하는 곳은 홍보물 외주 예산이 없었다. 에이치에게 한 번 두 번 홍보물 좀 만들어 볼래? 일감이 들어왔다. 못한다고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기관의 사업부서가 세 개 가운데 한 부서의 홍보물을 다 만들었다. 다른 한 부서의 관리자가 자기 부서의 부하 직원에게 시킬 일을 들고 와서는 ‘그 직원이 안 건 안 예쁘다’면서 에이치에게 만들어 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못 합니다’라고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한 부서의 부서장이 ‘많이 바빠? 이거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하면서 에이치를 찾았다. 그가 보내놓은 메일에는 반년치의 행사 목록이 들어있었다. 부서장은 목록대로 홍보물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행사가 수십 개가 되었다. ‘못 하겠다는 말이 너무 어려워’서 에이치는 그 말을 못했다. 하겠다고 했다. 에이치는 혼돈에 빠졌다. 부서장은 평소 착한 사람이었다. 에이치를 보면 힘들지? 물어봐 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중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에이치는 잠을 못 이뤘다. 그 날 에이치의 안에서 무언가 터진 것 같았다. 아파 왔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자신도 몰랐지만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 날 에이치는 부서장을 찾아갔다. ‘못 하겠습니다’ ‘지금 하는 일도 미처 못하고 있어서 어려울 것 같아요’ 부서장은 무어라 답을 했을까. ‘괜찮아 천천히 해’ 상냥한 목소리였다. 에이치의 답은 듣지 않았다.

 

그날 이후 출근하면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이용자들이 공간에 들어오면 나는 바쁜데 막 오는구나, 호흡이 가빠졌다. 자주 울먹거리면서 말하고, 이용자가 무엇을 물어오면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병원에 가야겠구나’ 생각했지만 가지 못했다. 휴무일인 월요일이면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눈을 뜨면 오후 4시, 5시. 중간에 깨지도 않았는데 해가 져 있는 날도 있었다. 에이치는 깨닫는다. 내 잘못도 있다. 하나둘 일이 올 때 이것까지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너무 안이했다. 그러나 왜 에이치가 깨달아야 하는가. 그렇게까지 일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이 기간제의 일이라고 에이치는 말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중요한 일이다. ‘너한테 너무 많이 가긴 했지. 그건 우리가 알고 있어’ 에이치의 건강이 안 좋아지자 기관의 관리자들이 말했다고 한다. 중요한 일을 맡겨 왔다는 것을 기관의 장도 관리자들도 알고 있다.

 

‘퇴사하는 법’을 검색해 봤다.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었다. 일단 무조건 참아야 하며 정말 그만두어야 할 때는 ‘능력을 더 발휘하고 싶어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중간에 그만 두었다는 기록이 이력서 경력 칸에 남게 되면 이유가 무엇이냐 질문이 들어올 것이고, 능력이 없거나 나약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연합뉴스

 

기간제는 어디로 가든 얼마나 오래 일해왔든 기본급이다. 인심이 좀 후한 기관이면 자격증 수당을 주기도 하고, 식대나 복지포인트 같은 것을 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에이치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계약이 길어져서 퇴직금을 받을 조건이 되는 노동자도 예산이 없다고 하고는 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식으로 잘라버렸다. 이런 정보를 들었으니 다음 기간제는 좀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에이치의 임금은 월 200만원이 안 되었다. 실수령액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명목 임금이 200만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이 기관에 합격하였을 때는 적은 돈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에이치는 돈이 너무 없었고, 가족도 돈이 없었다.

 

에이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몇 해 전 큰 빚을 졌다. 고리의 이자도 세트로 따라왔다. 그 액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에이치를 포함한 세 가족은 원금과 이자를 삼등분하여 갚아나가기로 했다. 기간제로 일하며 받는 월급은 이자를 갚는 대로 나갔다. 재력 있는 사람이어야 금리도 저금리가 되는 거죠. 에이치가 말한다.

 

에이치를 만난 12월, 곧 계약이 끝날 것이었다. 에이치의 계약기간은 364일, 1월 2일부터 12월 31일이다. 계약기간 1년에서 하루를 빼는 계산법이다. 1년을 일하면 퇴직금을 정산하거나 적립해야 하는 법을 피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이 얄궂은 계약서는 법이니 원칙이니 하는 것들에 위배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노동하는 이를 우롱한다. 모독한다. 세금을 아끼겠다는 눈물겨운 노력은 왜 약한 이들에게만 발휘되는가.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신청해보라고 누가 말을 해 주었을 때 에이치는 일하다 다친 게 아닌데, 몸 쓰는 일을 한 게 아닌데, 하면서 주저했다. 공고에 ‘정신적인 것도 된다’고 해서 신청을 했다. 그러나 에이치가 아픈 것이 ‘정신적인 것’이기만 한 것일까. 에이치는 일하다 다친 것이 아닌가.

 

* 이 연재는 2022년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한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만난 여성들, 노동건강연대가 활동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