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27] 독자칼럼

노조활동 건강에 도움될날 언제일까

내 전공 분야에서 꽤 알려진 해외 메일링리스트가 있다.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전해지는데, 한달 전쯤 흥미로운 메일을 하나 받았다. 영국에서 시행된 연구결과인데 파업이나 정치집회, 사회운동 등에 참여하는 것이 신체·정신적 건강에 이롭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적인 요인은 동료들과 함께 있다는 집단적 정체성이다. 이것이 일체감과 상호 지지를 이끌어내어 스트레스나 통증, 우울증 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사회문제에 좀더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이나 시위 등에 참여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그것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난 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파업의 책임을 물은 회사 쪽의 노조간부 징계, 손해배상 청구 등 노조무력화 정책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으로 전해진다. 신문기사를 읽고는 문득 이전의 연구결과가 떠올랐다. 어찌된 일인가 연구대로라면 노조활동을 하면서 ‘동지적 연대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통해 더 건강해졌어야 하지 않는가

노동자 배달호씨가 겪은 상황은 정확하게 반대의 지점에 놓여 있었다. 일체감은커녕 감시의 눈길 때문에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성취감은커녕 6개월 동안 월급 한푼 받을 수 없었다.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고, 해고자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며 그들의 가족이 떠오르는’ 심정은 건강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문제는 오늘날 전국에 수많은 배달호씨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작업현장의 유해물질만이 노동자의 건강을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파업 이후 해고자가 되어버린 옛 동료들을 출근길에 만나게 되고, 자신을 불온시하는 눈길 속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하고, 돌아오는 월급날이면 빈봉투를 들고 퇴근하는 노동환경이 과연 그 어떤 유해물질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이 건강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파업에 참가하고 노조활동을 통해 성취감과 일체감을 얻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세상에 더 소중하거나 덜 소중한 건강이란 없다는 사실을 정책결정자들과 경영주들이 깨닫길 바란다.

김명희/대전 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연구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