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은 기업이 고용한 노동자의 안전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돌아보라 !
– 현대중공업 안전 이사의 구속에 대한 경총의 입장을 보고

지난 5일 현대중공업의 안전담당 이사가 연이은 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으로 구속된
바 있다.
이는 1월 한 달에만 4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 해당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취한 최소의 조치였을 뿐이다.

이에 대해 경총은 ‘사법권남용’,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을 거론하며 기업 중역을 구속한
것은 부당 처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경총은 노동자의 과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 상 구속 기준을 대규모 사업장과 중소사업장을
구분하지 않고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법에 정해진 구속기준에 의해 안전책임자를 구속한 것이 왜 ‘사법권남용’ 인가,
경총이야말로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기업 이사 한 명 구속됐다고
경영활동이 위축될 거라면 그 기업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한다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경총은 산재사고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의 과실로 돌리려 한다.
이번 성명서에는 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에 대해 명복을 빈다라는 말과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기본적인 인사조차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경총은 틈만나면 산재보험을 사업주만 일방 납부하는 것에 대한 항의성 발언을
자주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보험료 냈으니 우리에게도 산재승인여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한다.
이는 계속되는 산재사고의 원인을 작업환경이나 노동조건에서 찾지 않고 노동자의 과실로
몰아 자신들의 책임을 줄이고자 하는 것과 같다.

특히, 구명줄 사용의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규정이었다는 언급은, 지키기 어려운
규정이기에 이를 면죄부 삼아 노동자에게 위험작업을 지시하였음을 시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조, 조장했다는 자백인 것만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기업 규모에 따라 구속기준을 달리 하라는 요구 또한 충격적이다.
인간생명의 절대적 존엄성마저도 단순한 비율적 숫자놀음으로 생각하는 경총의 천박한
상업주의적 발상에 경악할 따름이다
경총에게 묻고 싶다. 사망한 노동자의 목숨이 대기업 다르고, 중소기업 다른가. 남겨진
가족의 슬픔과 고통의 정도가 다른가.
혹여 주장하고 싶은 바가 대규모 인원에 대한 안전관리의 어려움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면, 경쟁력에서 최고와 일류를 선전하고, 이를 상품가치로 삼는 대기업일진대
노동자 안전에 있어서만은 중소기업과의 형평성을 논하는 속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총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선진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이윤을 위해서라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적용하는 것인지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기업에게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보건에서만은 예외항목이다. 왜냐면 안전보건의 내용은 어느 나라를 보아도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보건은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타협이나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에 기초해 최근 몇 나라는
불안전한 작업장에서 일어난 산재사고에 대해서 기업살인법을 제정하여 사업주의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2003년 1월에서 9월까지만 2천154명의 노동자들이 죽었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4%가 증가한 수치다. 2000년 노동자 산재사망 만인율을 보면 영국의 20배, 미국, 일본,
독일의 5배에 이른다. 이러한 현실을 숨긴 채 기업활동 위축을 말하는 경총의 논리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노동자 사망률은, 사회적 책임에는 침묵한 채 기업활동의 자유만을
무제한으로 허용해 온 성장이데올로기의 필연적 산물이다.
다시, 2만불시대를 선동하는 재계와 경총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수십년간 개발과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에게 지난 기간의 무례함을 사과할 의향이 없는가.

경총의 주장 어디에도 노동자 사망이 증가하는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은 없다.
이제는 기업의 책임을 물을 때가 됐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경총은 노동진영이 제안하는 ‘노동자 사망의 해결책에 대한 토론회’에 나와
노동자 사망이 줄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안은 없는가, 공개적으로 논하라. 노동자 사망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것은 기업이 직면한 다른 어느 사안보다도 시급한 문제이다.

우리는 이번 현대중공업 안전 담당 이사의 구속에 대해 경총이 다시 한번 겸허히
성찰하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진중히 고민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기업이 고용하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 기업활동의 사회적 책임과 인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길 기대한다.

2004. 2. 9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한노동세상, 경기남부산업안전보건연구회,
광주노동보건연대, 노동건강연대,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대구산업보건연구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 인천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충청지역노동건강협의회,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