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연맹 산하 건설일용노조에 대한 최근 검찰과 경찰의 공안수사와 관련 사전 각본에 의한 짜맞추기식 기획수사라는 주장이 건설현장 실무책임자로부터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건설현장 실무책임자의 이같은 발언은 검경이 합동으로 전국건설산업연맹 산하 건설일용노조를 압수수색하고 노조 간부를 무더기로 구속한 상태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경찰, 짜맞추기식 수사?
|
|
▲ 진상조사단이 경기서부지역건설노조 오산·화성지부 건설현장의 A사 관리책임자와 면담을 하고 있다 |
|
ⓒ2004 서상일 |
|
5일 오후 건설일용노조 공안수사 진상조사단과의 면담에서 대한주택공사 화성·태안 사업단 건설현장의 A사 관리과장은 “경찰에선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노조의 강압이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며 “강압이 없었다고 대답하자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5시간 동안이나 물고 늘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논란이 되고 있는 노조 전임비 지급과 관련 “단협이 본사의 승인을 받아 서로의 필요에 의해 체결된 것이기 때문에 검찰의 주장처럼 금품갈취로 볼 수 없다”고 밝히고 “노조와 단협을 체결한 이 지역 건설현장 관리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경찰의 표적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노조의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그는 “안전시설물과 관련하여 개선 요구를 한 적은 있지만 고소·고발하겠다고 협박하거나 경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더욱이 산업안전을 무기로 해서 노조활동 보장과 전임비를 요구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검찰의 기소내용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특히 그는 “누가 고소·고발을 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말해 줄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고소·고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B사 관리과장 역시 “안산경찰서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노조가 현장의 산업안전 미비점에 대해 고발하겠다고 협박하여 겁을 먹고 금품을 준 것이 사실인지를 집중적으로 물어봤다”면서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라는 대답이 나오도록 우회적으로 계속해서 몰아붙였다”고 실토했다.
|
|
▲ 진상조사단이 오산·화성지부 건설현장에서 B사의 관리과장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
|
ⓒ2004 서상일 |
|
그는 이어 “경찰은 전임비 지급과 관련하여 노조를 불법으로 몰고가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노조와의 관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노사 합의하에 전임비를 지급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와의 단체협약 체결과 관련 “당연히 하는 걸로 알고 있었으며, 본사에서도 별 문제 삼지 않았다”며 “공사비에 비해 노조 전임비가 다소 많았다고 생각되었지만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 없이 소장이 본사에 강력히 요구하여 처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노조로부터 부당한 압력이나 대우를 받은 적이 없고 아직까지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노조 간부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이 당황스럽다”면서 “오히려 노조가 있음으로써 노동자들의 안전모 착용 등 안전조치가 훨씬 개선되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5일 안산경찰서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은 경기서부지역건설노조 오산·화성지부 정성훈 사무국장은 “경찰은 노조에 대해 금품갈취, 공갈협박 범죄가 있었다고 단정짓고 조사하는 분위기였다”며 “마치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자백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정 국장은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건설일용노조에 대한 공안탄압은 지난 3년간 노조의 현장활동을 이유로 진행되는 것 같다”면서 “이는 현장활동을 강화함으로써 건설현장을 감시·견제하려는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기획수사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오산·화성지부 김재욱 현장사업팀장은 “사측은 안전시설 미비 등으로 고발조치를 당하면 향후 공사수주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기 때문에 노조의 안전시설 개선 요구를 협박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하지만 노조와 단협을 체결하는 것은 협박 때문이 아니라 수주 경쟁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속사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경찰의 짜맞추기 수사와 관련 “안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각 현장의 관리과장들에 따르면 한결같이 ‘죄 없는 사람들의 죄를 밝히라고 하니까 부담이 되었다’고 말했다”면서 이들이 노조에게 진술한 내용을 녹취한 물증을 제시했다.
관리과장들의 한결 같은 진술
|
|
▲ 영하 10도의 칼바람 속에 건설일용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
|
ⓒ2004 서상일 |
|
이처럼 하고 싶지도 않은 얘기를 억지로 이끌어내려는 경찰의 수사태도에 대해 형법상 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진상조사단 박갑주 변호사는 “참고인들로 하여금 억지로 ‘예’라는 대답을 유도한 것은 공정해야 하며 편파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경찰 수사의 일반원칙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명백한 직권남용”이라며 “이는 경찰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만을 취사선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실무자들이 노조를 고소·고발한 사실이 없었으며,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걸로 봐서 실무자 윗선에서 수사를 요청했거나 검경의 기획수사로 볼 수밖에 없다”며 “검경이 사실과 다른 것을 조작하여 무리하게 사실관계를 짜맞추려는 것이라면 수사권 행사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검경의 수사에 대해 “형식은(고소·고발이 없는) 인지수사인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인지수사일 것인가는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의문”이라며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건설자본 전체의 의견이 요구·압력의 형태로 전달되고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산노동인권센터 김병태 간사는 “건설일용노조에 대한 검경의 전방위적인 공안수사는 수주 경쟁에 내몰린 건설자본을 국가가 간접통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노조활동에 대해 노조법이 아닌 형법을 적용하여 무리하게 형사처벌하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병태 간사는 “건설노조가 원청회사를 상대로 단협을 요구하는 것은 기존의 실정법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일반 단위노조에서는 당연한 것인데도 건설일용노조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형법을 끌어들여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검찰의 수사태도를 비판했다.
|
|
▲ 건설연맹 경기서부지역건설노조 간부 10여 명은 공안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10일부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
|
ⓒ2004 석희열 |
|
한편 안산경찰서는 전화 통화를 통해 여러차례 확인요청을 하였지만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
진상조사단은 건설일용노조에 대한 공안수사와 관련 오는 11일까지 경기서부, 대전, 천안지역에서 실태조사를 마친 다음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는 이후 재판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