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위(준) 긴급 기자회견


▲ 17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진행된 공대위(준)의 기자회견 모습ⓒ 상황실

비정규직 노동자 기본권 유린하는 법원 판결을 규탄한다

1.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고 박일수 열사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이다”며 분신 항거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법원이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외면하는 판결을 내렸다. 2월 16일 대전지방법원(형사5단독, 오민석 판사)은 지역건설노동조합의 노동조합활동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상습공갈)으로 기소한 검찰측 주장 중에서 ‘상습’부분을 제외하고 유죄를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대전충청지역건설산업노동조합 이성휘 위원장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5명의 조직활동가들에게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각각 선고되었다. 이로써 지역건설노조의 조합활동과 단체교섭 요구를 ‘공갈’ 및 ‘협박’으로, 단체협약에 근거한 전임비 지급을 ‘금품갈취’로 단죄한 검찰의 논리가 사법부에 의해 정당화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2. 건설산업연맹을 비롯하여 각계의 노동·사회·인권단체들은 지난 9월부터 벌어진 검찰의 건설노조 탄압의 부당성에 대하여 폭로하고 지역건설노조 활동의 정당성에 대하여 주장해왔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수차례의 불법적 하도급으로 진행되는 건설산업의 특성상 건설원청업체 및 그 현장대리인을 상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건설일용노동자의 권리를 실효성있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이치이다. 이러한 건설업의 특성 때문에 현행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건설근로자의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 등에서 건설원청업체가 건설일용노동자의 근로관계에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부담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대법원도 건설원청업체와 건설일용노동자 사이에 하도급업자가 개재되어 있더라도 건설원청업체와 노동자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1986. 8. 19. 선고 83다카657 판결 등). 이러한 사실은 건설현장에서 건설일용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건설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는 지역건설노조의 주장이 정당함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노사교섭과 조합활동에 따르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 단체교섭 요구, 건설원청업체의 법위반 사실에 대한 고소·고발, 전임자 임금지급 등 몇몇 단편만을 취사선택하여, “고소·고발 등을 하겠다고 위협하여 전임비를 갈취하였다”라고 기소하였다. 이는 건설산업의 현실과 노동조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서 건설노동자의 권익 개선을 위한 활동을 벌이는 것에 대하여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건설자본의 논리에 편향된 시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노동자의 권익과 관련한 법제도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조합활동을 ‘공갈·협박’이라고 단죄한다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4. 이번 대전지법의 판결을 보면서 우리는 검찰의 반헌법적·반인권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외면하는 처사라는 점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파견 노동자에게는 파견법상 보호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SK인사이트코리아노조 사건 행정법원 판결, 건설운송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인한 법원 판결 등 법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짓밟는 판결들을 내려 왔다. 설사 끈질긴 투쟁을 통해 대법원에서 권리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이미 현장에서는 법원판결을 빙자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노동조합이 무력화되는 결과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원을 불신하고 법원의 합리적 판결을 기대하느니 노동법을 제·개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마저 가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사용자편향적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확인하는 계기일 뿐 아니라, 건설일용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원청업체를 상대로 노동조합활동을 벌일 수 밖에 없는 파견·용역·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외면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5. 이에 우리는 이번 판결의 부당성을 규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바이다. 하나, 이번 대전지법 판결은 각종 관계법령에 명시되어 있는 건설원청업체의 사용자 책임을 무시하고 지역건설노조의 정당한 조합활동을 불법시하였다는 점에서 반헌법적·비상식적 판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지역건설노조를 비롯한 제 노동·사회·인권단체는 함께 를 구성하여 이번 판결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강력히 전개할 것이며 상급법원에서 올바른 판결이 나올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하나, 지난 2000년부터 노사간의 단체교섭을 통해 500여 개의 현장단체협약이 체결되는 등 건설현장에서는 노사간 자율적 교섭과 이를 통한 노동조건·산업안전의 개선이 점차 이루어져 왔다. 각종 노동관계법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건설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하여 체결된 단체협약은 존중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자율적 노사관계에 대한 검경의 부당한 개입을 즉각 중단하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구속·수배자에 대한 해제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하나, 법원의 이번 판결을 빌미로 건설원청업체가 단체협약을 파기한다거나 노조의 정당한 조합활동을 탄압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고 보아 해당 건설자본에 대한 규탄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건설자본은 최소한의 노동조건마저도 보장되지 않고 하루에도 2~3명의 산재사망자가 발생하는 죽음의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하여 건설노조와 진지한 논의와 공동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2004년 2월 17일

건설일용노조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