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쏘시개 지하철의 안전대책을 강구하라”

1백여 시민단체 ‘전국 지하철안전 시민점검단’ 구성

2003-03-12 오후 6:56:52

시민단체들이 전국의 국철·지하철 안전운행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전국 지하철안전 시민점검단’을 구성해 직접 실태조사에 나서 겠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 전국민중연대, YMCA 등 1백여 시민·종교단체와 지하철노조 관계자들은 12일 낮 안국동 철학카페 느티나무에서 지난 2월에 일어난 대구지하철참사와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발표했다.

‘전국지하철안전 시민점검단’, ‘대구참사 진상조사단’ 구성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대구지하철참사 시민대책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동차 자체의 문제와 무리한 업무인원 감축, 비상시 승객안전 대책 부재 등이 문제로 지적됐지만 전국의 지하철이 별다른 보완 대책도 없이 운행돼 언제 대구참사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날지 우려된다”며 “대구는 물론 서울, 인천, 부산 지하철에 대한 안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 종교 단체 지도자들은 현재의 지하철은 “불쏘시게 지하철”이라고 지적하고 “지하철의 안전운행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박 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일회성 사고나 지역적인 사건으로 한정 지으려는 기도가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이에 맞서서 안전한 지하철운행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하철이 운행 중인 각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근수 향린교회 목사는 “앞으로 전국 지하철(철도)안전 시민점검단’을 구성, 대구를 비롯해 서울, 인천, 부산 등의 지하철과 철도의 안전실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철저한 안전대책을 촉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홍 목사는 또 “진상조사단을 구성, 대구지하철참사 대책위원회와 공동 조사를 통해 대구지하철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고 전국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포스터 등을 제작, 전시해 대국민 선전전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도명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노동건강연대 대표)는 “대구지하철의 경우 앞으로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방염처리를 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방염처리제가 인체에 유해한 유독가스를 대량 배출할 가능성이 있는 성분을 포함한다는 점”이라며 “안전조치들이 대부분 임시방편으로 세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지하철ㆍ철도노조 관계자 현장 문제점 고발

각 지역 지하철 노조와 철도노조 간부들은 현장에서 접한 문제점을 열거했다.

허인 도시철도공사(서울지하철 5~8호선)노조 위원장은 “5~8호선은 현재 148개 역을 운영하고 있는데 모든 역에 직원은 단 세 명뿐이고 그 중 한 명이 휴일을 쓰면 단 두 명이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열차운행도 설립 당시부터 대구처럼 1인승무제를 시행해 오고 있는데 사고에 대비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허 위원장은 또 “새벽에 첫 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들은 단 3시간을 취침하고 몽롱한 상태로 운전을 하고 있다”며 “정부나 건교부, 서울시 등이 얼마 후에 종합적인 안전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할 텐데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천환규 철도노조 위원장은 “요즘 언론에 지하철이나 국철 혹은 철도관련 사고가 집중적으로 보도가 되지만 그런 사고들은 계속 이어져 온 것”이라며 “인원증원등 안전대책이 절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천환규 철도노조 위원장은 “대구에서 큰 사고가 나자 언론이 차량관련 사고를 많이 보도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사고들이 계속 일어나던 것이라는 점”이라며 “특히 지난 2월 중순에 신태인 역에서 철도노동자 7명이 열차에 치어 죽었다”고 전했다.

천 위원장은 “당시 사고는 시설보수 회사가 외주용역으로 전환이 되면서 철도청과 긴밀한 정보를 주고받지 못 한다는 점이 부른 참사였다”고 설명하고 “공사 중이라 레일이 없는 상태로 들어왔다면 열차전복 등 더 끔찍한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라며 “노동자 7명만 죽은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라고 열악한 안전상황을 토로했다.

천 위원장은 또 “수도권 전철의 40%가 구동에 결함이 있는 것을 알고도 그냥 두 달이나 대책이 없이 운행한 예도 있다”며 “당시에 사회나 언론에 알리지 못하고 막지 못해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오영환 부산지하철 노조위원장은 “열차를 화재가 나지 않는 기종으로 4단계로 교체를 한다고 하는데 객차 내구연한을 25년으로 볼 때 현재 운행차량이 17년째 쓴 것이라 8~9년 사용기간이 남아있다”며 “이는 결국 안전은 염두에 두지 않고 내구연한까지 다 쓰고서 교체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유사한 참사의 위험이 계속 도사리고 있다”며 “안전진단 결과 87.5%가 양호하지 못하다고 밝혀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의 참석자들은 현재 직원들의 피로도가 높아져 사고 위험이 커진 상태로 운행 중인 대구 지하철의 경우 대책을 세워 시민들의 동의를 거쳐 운행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의 명목을 빕니다.

1. 우리는 지난 시기 대구 참사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사건,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 등 하나같이 역사적 비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고한 수많은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갔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참사의 그 숨 막히는 순간에 고통스러워하며 생을 마감한 고인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로 더 이상 이와 같은 참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단의 대책과 노력이 절실하기 그지없습니다.

2. 그러나 오늘 수백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지 22일, 유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진상규명 그리고 안전대책을 수립하고자 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참사의 원인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전동차는 참사 다음날부터 그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현재 상황은 고인들을 욕되게 하고 있고 유가족 시민들을 더욱 참담한 심정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3. 참사이후 대구시가 보여준 사태수습은 실망과 분노 그 자체입니다. 전동차를 옮겨버리고 사고현장을 훼손하였으며 청소를 한답시고 유해와 유품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고 전동차를 바로 다음날 가동하는 등 사태의 올바른 수습은 외면하고 증거인멸과 진실은폐에 급급함으로써 유가족과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4. 대구 지하철 참사 시민대책위는 1차 시민대회에서 이번 참사의 원인을 1차적으로 밝힌바, 첫째, 전동차 자체가 화약고여서 급속히 타버릴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둘째. 지하철공사의 1인승무제를 비롯한 무리한 인원감축은 화재의 실상이 제대로 보고 되거나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대형 참사를 만든 원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셋째, 비상시 승객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재시설, 승무원들에 대한 교육 훈련 등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5,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동차는 효과가 거의 없는 임시방편적 방염처리, 회차가 완전하지 않은 구간 운행, 1인승무 고수 및 안전요원에 대한 아무런 보완 대책 없이 운행하고 있으며 여기에다 노동자들의 피로도가 더욱 가중되어 안전운행을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6.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구지하철 보다 먼저 운행하고 있는 서울 1,2기 지하철, 인천지하철, 부산지하철, 철도 등 전국주요도시의 지하철 및 철도 역시 대구지하철과 같은 참사 재현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와 관계자, 노조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이 지역들은 대구지하철보다 더 위험하면 위험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하철, 철도와 관련된 안전점검과 대책이 극히 미흡하고 눈가림식에 그치는 상황입니다. 안전에 대한 전면적인 진단과 점검이 없으면 제 2의 대구 참사가 또다시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공유하고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입니다.

첫째,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해서 정부당국과 대구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아울러 현재 사고 원인을 그대로 안고 있고, 직원의 피로도를 증가시켜 사고 위험이 커지는 상태로 운행되고 있는 대구지하철은 대책을 세워 시민들의 동의를 거친 후 운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정부당국과 대구시는 대구지하철 참사로 인해 희생된 실종자, 사망자, 부상자에 대한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셋째,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전국 주요도시의 지하철, 철도를 비롯한 공공시설에 대해, 이윤, 효율 논리가 아닌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중시하는 관점에 확고히 서서 정부와 사회단체가 함께 전면적으로 합동 안전점검을 하고 그에 따른 종합적인 안전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지하철(철도) 안전 시민점검단’을 구성하여 합동 안전점검에 나설 것입니다.

넷째, 합동 안전점검을 진행하면서 종합적인 안전대책에 관한 공개적인 공청회 및 TV토론을 개최해야 합니다.

2003.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