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사회연구소 홈피에서 퍼옴.]

4월은 우리나라 노동계와 사회운동단체가 정한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이다. 그런데 4월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활동이 집중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운동의 세계 최대 국제조직인 국제자유노련(ICFTU)은 4월28일을 ‘국제 산업 재해 사망·부상 노동자 추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날은 세계 모든 사회가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과 부상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은 5월1일 노동절에 노동자의 생명과 꿈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불타 죽은 장난감 공장 노동자를 위한 촛불
4월28일이 ‘국제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처음 지정된 것은 1996년이다. 그 해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Committee on Sustainable Development) 회의에 참석했던 국제자유노련 노동조합 대표들을 중심으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를 위한 ‘촛불 밝히기’ 행사를 가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국제자유노련은 각 회원 조직에게도 이 날 행사를 진행할 것을 요청했고, 약 70개 나라에서 ‘촛불 밝히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1993년 5월 태국 케이더(Kader) 장난감 공장에 불이 나서 174명의 여성 노동자를 비롯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996년 4월28일 처음 진행된 공동 행사의 주제는 이 장난감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추모였다. “선진국 어린이들의 꿈이 담긴 장난감을 만드는 과정에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피와 죽음이 묻어있다”는 각성을 반영한 것이다.
국제자유노련은 1996년의 첫 행사를 계기로 이를 전 조직 차원에서 공식화시켜, 4월28일을 국제적인 실천의 날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펼쳐왔다. 매년 열리는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에서 “노동자를 죽이고 몸을 망가지게 하는 발전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 아니다”라고 상기시키며 미국 뉴욕 유엔본부 건물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 회의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를 위한 묵념을 공식 행사로 만드는 성과를 낳았다. 그리고 2001년 남아공에서 개최된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상회담'(WSSD)에서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이 주요 의제로 확립되기도 했다.
현재 국제자유노련은 4월28일을 유엔이 정하는 ‘국제기념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식품호텔노련(IUF)을 비롯하여 몇몇 국제산별노련들이 2000년부터 국제노동기구(ILO) 건물에서 4월28일 행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01년에 국제노동기구가 국제노동조합운동이 진행하는 4월28일 행사에 공식으로 참여하였고 2002년에는 국제노동기구의 자체적인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국제자유노련은 국제노동기구의 이러한 결의를 발판으로 4월28일을 유엔 차원에서 공식적인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각 회원 조직에게 자기 나라에서 이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도록 노력할 것을 권고해 왔다.

법정기념일로 산재노동자를 추모하는 나라들
현재 4월28일을 산재노동자를 추모하는 날로 법적으로 지정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10개국이다. 태국의 경우는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1993년 5월10일을 법정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4월28일을 최초로 국가 차원의 추모의 날로 정한 나라는 캐나다로, 1991년에 입법되었다. 그리고 국제자유노련 차원에서 4월28일을 기념하기 시작한 후, 이 날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공식 채택한 나라는 스페인으로 1999년 공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타이완에서는 2001년 10월, 10여년에 걸친 산업안전 운동단체들의 노력과 투쟁의 결과로 ‘산업 재해 및 질병 보호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의 한 조항으로 4월28일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하였다. 이를 추진한 단체들은 1994년부터 2∼3년에 걸친 논의를 바탕으로 법안 작성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600여명의 산재 노동자들과 직접 인터뷰, 59회의 세미나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최종 확정 법안은 기업이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더라도 산재노동자가 산재보험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물론 가입하지 않은 사업자에게는 벌금이 부과된다. 또 타이완의 법에 따르면, 원하청 관계에서 원청 사용자에게 산재보험 관련 책임이 있으며, 산재의 책임과 관련하여 사용자가 책임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게다가 산재인정 관련 소송에서도 노동자는 소송 경비를 면제받는다.
브라질에서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은 노동자당의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2003년, 진보적인 노동조합 전국 중앙 조직인 CUT의 노동건강안전 담당자가 노동건강안전 관련 노사정 3자 기구인 Fundacentro의 의장으로 임명된 후, 노사정 차원에서 4월28일을 법정 추모의 날로 정할 것을 건의함으로써 확정되었다. 이는 물론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노동자당이 추진했던 사업의 결과였다.
이외에도 포르투갈, 도미니카공화국, 페루, 아르헨티나, 버뮤다, 파나마가 4월28일을 법으로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있다. 2002년 처음으로 추모행사를 가진 포르투갈에서는 정부가 특별 우표를 발행하고, 모든 공공 건물에서 국기를 조기 계양하도록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법적으로 확립된 10개 나라 외에도, 5개 국가에서 법정 추모의 날 지정이 추진되고 있으며, 9개 나라에서 노동조합 조직들이 입법 요청을 준비하고 있다.

산재노동자 추모 날의 유래
4월28일이 ‘산재 사망·부상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해진 것은 캐나다와 미국 노동조합운동의 활동에서 유래한다. 온타리오 주에서 캐나다 최초로 포괄적인 ‘노동자 산재보상법'(Workers Compensation Act)이 의회의 최종심의를 마친 것이 1914년 4월28일이었다. 캐나다노동평의회노총(CLC)은 1984년부터 이날을 추모의 날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1991년 2월1일에는 진보정당인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소속 의원이 캐나다 연방 의회에 제출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법정 추모의 날로 확립되었다.
캐나다 연방 의회 그리고 각 주 의회는 4월28일 회의를 산재 사망 노동자를 위한 묵념으로 시작한다. 주요 정당의 원내 대표가 이날의 의미를 설명하고 최근 산재 또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관한 문제에 대한 의견 발표와 대정부 질문을 하면서 의원들에게 묵념을 공식적으로 제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부장관은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산재현황에 대해 설명한다.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 관련한 의회 차원의 행사는 거의 모든 지자체 의회에서 진행되며 어떤 지역 의회는 자체 조례로 추가적인 의무를 정해 놓고 있기도 하다.
한편, 미국에서는 1970년에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OSHAct)에 의해 1971년 4월28일부터 활동을 시작한 안전보건청(OSHA)과 국립안전보건연구소(NISHA)의 활동개시 날짜에 맞추어 1989년부터 미국노동연맹-산별조직회의(AFL-CIO)가 4월28일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 관련 한국 상황
한국노총은 1998년 4월, ‘순직 산업재해노동자 예우에 관한 법률 건의안’을 준비해 위령탑 건립을 정부에 제안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다시 노사정위원회에서 ‘산재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제안했고, 99년 5월에는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회, 노동부, 서울시, 전경련, 경총 등에 ‘산재 사망자 위령탑’ 건립을 제안했다. 그 결과 ‘노·정·당 산재사망자위령탑 건립 회의’를 개최되어 위령탑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회의 결과에 따라 노동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사업 추진을 보고하여 재가를 받았고, 근로복지공단 산재복지 사업비에서 10억원 가량 예산을 확보하여 2000년 7월 보라매공원에 위령탑을 세웠다(이는 현재 서울시에 기부되어 서울시가 관리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그 이후 2000년 8월 국제자유노련의 권고에 따라 4월28일을 ‘산재 노동자의 날’로 지정했고 2001년 4월28일에 제1차 ‘산재 노동자의 날’ 추모행사를 위령탑에서 진행하였다. 이렇게 진행된 2001년 첫 행사를 계기로 한국노총은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4월28일을 ‘산재 노동자의 날’로 국가 차원에서 법제화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 진영의 노동운동이 산재문제와 노동자의 건강안전에 관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90년부터이다. 1988년 7월2일 당시 15살의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계기였다. 이에 따라 1990년 7월이 ‘산재 추방의 달’로 정해졌다. 정부가 7월1일부터 1주간을 ‘산업안전보건 강조 주간’으로 정해 진행하던 행사에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산재추방 활동을 전문적으로 전개하던 단체들은 새롭게 확산되고 있던 민주노조운동이 산재 관련 활동을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도록 전문성, 실무력, 그리고 재원을 제공했다. 전노협 초기의 산재 담당자의 경우 산업안전 관련 단체들이 인건비를 제공하며 ‘파견’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은 2000년까지는 주로 7월에 산재추방 운동을 진행했다. 그런데 1997년 경제 위기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 공세로 인해 임단투가 3월부터 6월까지 집중적으로 전개되어 마무리되고 7월에 들어서는 산재추방 활동과 투쟁으로 이어지던 노사관계 환경이 변했다. 이에 따라 2001년 ‘산재추방의 달’ 공동추진위원회는 2001년 사업평가에서 “임단투 투쟁 시기를 피하면서 노조의 활동을 강제하고 산재 문제(산재 노동자 명예 회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주요 사업(선전, 토론, 교육, 기타) 시기를 4월로 앞당기고 추모제는 규모를 축소하여 8월에 진행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민주노총은 2002년, 조직적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집중적인 산재추방 운동 시기를 4월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국제자유노련 차원의 4월28일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사와 결합하게 되었다.

노동자 건강에 대한 기업의 책임
국제자유노련은 ‘장난감 공장 노동자’를 주제로 한 1996년 1차 행사에 이어 1997년에는 ‘아시아 노동자’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어린이 노동자’를 주제로 정해 ‘아동노동 근절’ 운동을 전개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1999년 4차 추모의 날은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법정 추모의 날을 정한 스페인에서 공식행사를 가졌다. 그해 국제자유노련은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노동자대회에 맞추어 4월28일 국제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 주제를 ‘여성 노동자’로 정했다. 스페인에서 밝힌 애도의 촛불을 브라질로 옮겨 ‘죽은 자에 대한 추모를 산 자의 실천과 행동으로 전환’하는 결의를 상징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국제행사가 진행된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는 노동자, 시민들이 시내 주요 광장을 작업화로 가득 메워 죽은 노동자들을 기리기도 했다.
2000년의 5차 행사는 ‘새 천년의 청년 노동자’를 공식 주제로 채택하고 “민주주의 건설을 통해 청년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1998년 OECD 평균 청년실업률은 13%였다. 국제자유노련은 청년노동자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사회 전반의 변화 없이는 청년 노동자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산재 사고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의사결정 기구에 노동자의 참여를 인정하지 않는 반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정책과 관행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산재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전반적인 노동조합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6차 행사는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상회담’에 맞추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작업장’을 주제로 삼고 ‘석면이 노동자를 죽인다’와 ‘근골격계 질환 근절’을 부제로 채택하였다. 당시 건설산업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산과 산재사고 증가를 이유로 장기간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스페인에서는 양대노총인 UGT와 CC.OO가 이 행사의 일환으로 4월27일 한시간 동안 추모 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한편, 국제자유노련은 4월28일부터 메이데이를 거쳐 태국에서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해진 5월10일까지를 ‘산재 노동자 추모 행사 기간’으로 정해 각종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2002년 7차 행사의 주제는 ‘공공보건 개선’이었다. 그리고 ‘사업장 차원의 활동을 통한 에이즈 문제 해결’과 ‘사업장환경 감독체제 강화’가 부제로 설정되었다. 이 해 영국에서는 종합제조업서비스전문노조(Amicus) 산하 종교목회노동자분과가 각 종교와 교회들에게 일터에서 산재로 죽거나 부상당한 노동자를 위한 특별 행사와 기도를 진행할 것을 건의했다. 그리고 공동 기도문과 산재 관련 자료를 제작하여 모든 종교 단체에 배포하였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제안은 영국의 감리교회, 개혁연합교회, 영국유대교지도자회의, 천주교, 많은 개별 영국교회(성공회) 교회에서 채택되었고 일요일이었던 2002년 4월28일, 영국 전역의 많은 교회, 성당에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행사가 진행되었다.
2003년 8차 행사에는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한 기업의 책임’이 주제로 채택되었다. 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산재로 노동자가 죽으면 기업 자체(기업의 대표)가 다른 살인의 경우처럼 처벌받아야 한다, 또는 기업과 사용자에 대한 미비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과 요구를 담고 있다. 호주,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이미 ‘기업살인법’이 의회에 소개되어 있거나, 통과과정을 밟고 있다. 영국에서는 4월28일 모든 조합원들이 기업살인법 입법 촉구 엽서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올해 열리는 2004년 9차 행사는 ‘모든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한 노동’을 주요 주제로, ‘사용자 책임’을 부제로 삼고 있다. ‘기업살인법’ 입법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현재 국제자유노련은 모든 회원 조직에 4월28일에 맞추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국제적 교류를 위해 자체 홈페이지(www.icftu.org)를 통해 포스터, 촛불과 향을 함께 담고 있는 공동 상징물, 자료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회원 조직의 활동 계획을 공유하고 있다.

출처: 노동사회 2004년 4월호, 통권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