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협, 외국인 소개비로 돈버는 브로커?
[심층취재] ‘고용허가제’가 번번이 무산돼온 진짜 이유

박수원기자

▲ 중기협은 고용허가제 시행에 대해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2003 박수원

‘중소기업 외면하는 고용허가제 결사반대’

서울 여의도 소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회장 김영수, 이하 중기협) 건물에 가면 어디서나 이 문구를 마날 수 있다. 심지어 중기협 직원들은 왼쪽 가슴에 검정글씨와 붉은 글씨가 조합된 ‘고용허가제 결사반대’가 적힌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중기협 건물 앞뒤에는 ‘고용허가제 결사반대’라는 큰 현수막이 걸려 있다. 중기협이 필사적으로 고용허가제 시행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풍경들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을 내국인 노동자와 똑같이 대우하고 외국 인력의 도입과 취업 알선의 주체도 현행 민간기구에서 국가기관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을 통해 불법 체류자나 송출비리, 외국인 인권침해 문제, 인력난 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중기협이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기업체의 인건비 상승과 노동3권 부여로 인한 노사관계 불안 등이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좀 다르다.

산업연수생 관리와 ‘남는 장사’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난 1993년부터 시행한 ‘산업연수생 제도’는 중기협이 전적으로 운영권을 행사해 오고 있다. 중기협은 외국인 산업연수생 선발에서부터 연수업체 선정, 배치 등 연수생에 대해 전반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지난 10여 년 동안 시행되면서 논란이 돼 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와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에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연수생’ 신분으로 묶여 있다. 이들은 연수생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직장 이동도 금지돼 있다.

반면 불법체류자가 되면 임금도 연수생보다 높게 받을 수 있고, 마음대로 직장을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산업연수생들은 ‘불법 체류자’를 선택한다. 지난해 산업연수생 정원 7만 9000명 가운데 남아 있는 연수생은 1만 8200명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 산업연수생 제도에서는 국내 입국 외국인 노동자 수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있어 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쉽지 않다. 중기협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산업연수생을 공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연수생 공급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하다.

노동부가 2002년 4월 10일 조사한 제조업 불법체류자 사업체별 신고현황을 살펴보면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비율이 92.5%로 50인 이상 사업장의 7.5%에 비해 무려 12배에 이른다. 정작 외국인 노동자들 인력이 필요한 영세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1년 12월 중소 제조업체 68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불법체류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54.2%가 ‘합법적인 근로자 신분의 외국인력도입 확대’ 즉 고용허가제를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난 때문에 불법적으로 외국인력을 쓸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단속을 걱정하느니보다 차라리 떳떳하게 인력을 고용하겠다는 생각이다.

국회 상대로 총력전 펼치는 중기협

중기협은 고용허가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을 통해 로비를 벌여왔다. 중기협 뒤에는 든든한 빽이 있다. 바로 중기협 회장 출신 국회의원들.

민주당의 박상규 의원과 박상희 의원은 국회에서 중기협 대변인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상규 의원은 중기협 명예회장에 올라있고, 박상희 의원은 고문으로 위촉돼 있다. 고용허가제가 번번이 무산되는 이유를 이들 국회의원들에게 찾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중기협은 고용허가제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원들 설득에 발 벗고 나섰다. 최근 연수협력처 관계자는 한나라당 산자위 소속 안영근 국회의원실을 찾아가 고용허가제 반대 이유를 설명하고 돌아왔다.

안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고용허가제를 주장하는 몇 안 되는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고용허가제 도입을 막기 위해 중기협은 국회를 상대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 박수원 기자

중기협이 고용허가제를 반대하고 지금의 산업연수생 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산업연수생 관리를 통해 ‘남는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협은 연수생을 보내주는 대가로 연수업체로부터 작년 3월까지 1인당 28만 6천원을 받았다. 연수관리비라는 명목이다. 2003년 1월 1일부터 연수관리비는 41만 8천원으로 인상됐다. 중기협은 연수관리비 인상 요인을 관리비용 증가와 문제가 됐던 계약이행보증금제도 폐지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어쨌든 중기협은 연수생 도입 규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챙길 수 있는 연수관리비 액수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중기협이 기회 있을 때마다 연수생 인원 한도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외국인 연수생이 많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중기협의 수입은 그만큼 늘어난다. 중기협은 중소기업이 인력난을 겪고 있다며 산업연수생 한도를 7만 9천명에서 2002년 8월부터 13만 명으로 늘렸다. 수입이 발생할 수 있는 ‘파이’를 그만큼 크게 키워놓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부터 폐지되긴 했지만 중기협은 2002년까지 연수생을 데려올 때 해외 송출기관으로부터 이행보증금이라는 명목으로 1인당 300불(약 36만원)을 받았다. 연수생 사업장 이탈을 막기 위한 일종의 공탁금이라고 중기협은 설명하지만 이 돈은 한 마디로 ‘눈 먼 돈’이다. 왜냐하면 연수생이 사업장을 이탈했을 경우 보증금은 고스란히 중기협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탈하는 연수생들이 많아질수록 중기협의 수입이 늘어나는 셈이 된다. 지난해처럼 산업연수생에서 이탈한 인원을 6만명으로 잡으면 이행보증금 216억원이 중기협 통장에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기협에게 산업연수생 제도는 포기할 수 없는 엄청난 이권이다. 현재 연수협력단에서 근무하는 정식 직원과 계약직 직원 100여 명의 월급도 중기협이 아니라 산업연수생 운영 수입에서 주고 있다.

이권이 많이 걸려있는 만큼 이권과 관련된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지검 외사부는 지난해 3월 18일 브로커들과 결탁해 외국인들을 산업연수생으로 위장 입국시킨 협의로 중기협 상근 부회장 이아무개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중기협 상근부회장 이씨는 1억원에 이르는 뇌물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사건에 대해 중기협이 산업연수생 제도 전반을 운영하고 있는 점을 악용해 비리를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이뿐이 아니다. 2001년 2월 15일 서울지법은 중기협 회장 재직 시절 중국인 산업연수생 송출업체 지정과 관련, 업체로부터 2천만원짜리 호랑이 가죽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민주당 박상희 의원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하기도 했다.

▲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법체류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출입국관리소 앞 항의 집회에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

ⓒ2003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지난 2001년 국정감사에서는 중기협이 전임 회장이 사용할 8천400만원에 이르는 에쿠스VL 450을 외국인 산업연수생 특별회계로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중기협 간부들 배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기협은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추진할 때마다 중기협 출신 국회의원들을 동원해 이를 저지시켜 왔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8월 고용허가제 도입이 연수취업제로 변경된 일이다. 중기협은 연수취업제가 고용허가제를 어느 정도 수용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연수취업제는 이름만 바꿨을 뿐 산업연수생 제도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기협이 여전히 제도 운영관리권을 쥐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수급을 정부가 맡는 고용허가제를 수용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중기협도 할말은 있다. 중기협은 고용허가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불법체류자 양산이나 인권문제, 송출비리 문제가 근절될 수 없다고 말한다( 참고). 연수협력처 유광수 부장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외국인이 자국에서보다 수 십배의 돈을 벌어가는 상황에서 고용허가제를 시행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면서, “불법체류는 국가가 단속을 강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 부장은 또 “중기협이 관리하는 현 제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노동부 권기홍 장관은 9일 예정대로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고용허가제 도입과 관련된 혼선에 대해 권 장관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협의내용이 언론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시범실시를 지시한 것으로 와전됐다”면서 “정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기존 원칙에서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매번 중기협 ‘암초’에 부딪혀 실현이 좌절돼온 고용허가제가 이번에는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중기협이 관리하는 현 제도는 아무 문제없다”
[인터뷰]연수협력처 유광수 연수총괄부 부장

-산업연수생제도가 외국인 인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은 연수생들의 문제지 산업연수생제도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악덕 기업주와 산업연수생 제도와는 관련이 없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된다고 과연 인권 문제가 해결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산업연수생 제도를 시행하면서 송출 비리 등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 역시 해당 국가의 문제다. 외국인들은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 몇 십 배의 돈을 벌기 때문에 너도나도 들어오려고 한다. 그래서 해당국가에서 비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기는 어렵다. 송출 비리 근절책으로 해당 국가에서 3배수 추천을 받아 요즘은 컴퓨터 추첨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어 시험을 통해 선발할 것이다.
고용허가제에서는 국가와 국가간 양해각서(MOU)를 맺겠다고 하는데 이는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다. 현재 운영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불법 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불법 체류자가 산업연수생 제도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강력히 법을 집행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죽어도 다시 나가지 않는다.”

-중기협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결사 반대하는 것 아닌가.
“중기협은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준 공공기관이다. 때문에 감사원 감사와 함께 국정감사를 받는다. 예산 전용이 불가능하다. 마치 일부에서는 우리가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예산을 착복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100명 정도 되는 직원 인건비, 운영비, 산업연수생 3박4일 교육비, 건강검진 비용으로 모두 47억원이 소요되고 있다. 비용이 더 들어가면 오히려 관리비를 올려야 한다.” / 박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