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치는 ‘근골격계’ 대책
규제개혁위, 재계 요구 대폭 수용한 산재 기준 발표해

박종식 기자

최근 4년새 근골격계 질환이 961%나 늘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규제개혁위원회가 재계의 이른바 ‘산재환자 치료제한 요구’를 대폭 수용한 심의결과를 발표, 거꾸로 가는 산업안전정책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지난 18일 규제개혁위원회(공동위원장 고건 국무총리, 이하 규개위)는 전경련 등 경제 5단체가 요구한 ‘근골격계 질환의 직업병 인정기준 및 치료종결 기간 명시’에 대한 심의결과를 발표했다. 그간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기업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산업안전정책의 개악을 시도해 왔다.

이날 규개위는 경제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신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6개월 이상 종사한 자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포괄적이라고 판단, ‘해당업무에 상당 기간 종사하고 과중한 업무로 인정될 경우 요양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또 근골격계 질환의 치료종결기간도 ‘근로복지공단의 내부 요양기준지침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개위의 심의 결과는 노동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채 사측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산업재해를 오히려 부추기며 산업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동단체들의 의견이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실제로 근골격계 환자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데, 환자 인정기준을 더 까다롭게 하는 것은 치료를 받지 말라는 것과 같다”면서 “규개위의 행태에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근골격계 문제가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는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의 송준섭씨도 “산업안전법을 개악하려는 시도는 정부가 직접 노동자의 건강권을 박탈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며 규개위의 결정을 강력 비판했다.

또 조태상 민주노총 산업안전부장은 “치료종결 시한을 근로복지공단의 내부기준지침으로 마련한다는 것은 실제로 법령으로 치료종결 시한을 명시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노총 역시 19일 성명서를 통해 “근골격계 직업병 인정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게 되면 조기치료가 어려워 근골격계 환자를 심각한 상태가 될 때까지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근골격계 질환에 개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규개위가 치료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하려 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라며 규개위의 해체를 주장했다.

2003년 6월 20일자 (제23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