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건강해야 국가 경쟁력이 올라간다
[대안칼럼] 근골격계 질환을 통해 본 한국 노동자 건강권의 현 주소

정진주 기자

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안칼럼]을 신설했습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칼럼진 명단은 아래 덧붙인 글 참고) 이번 글은 최근 노동계 등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근골격계 질환’ 에 대해 한국여성개발연구원의 정진주 박사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건강을 잃고 천하를 얻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라는 옛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건강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는 노동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먹고 살기 위해서 누구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건강은 일하고 있는 곳의 환경이 얼마나 쾌적하고 안전한지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노동자의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은 임금, 고용 등의 문제에 밀려 뒷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최근 정부, 재계, 노동계는 근골격계질환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고 따라서 우리 사회의 노동자 건강권의 한 단면을 이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근골격계질환이란 신체의 활동과 관련된 근육, 건, 신경, 관절 및 그 주변 신체조직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목, 어깨, 팔 등의 상지는 물론 요통과 하지의 유사 질환도 포함한다. 근골격계질환은 이미 사업장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노동계에서 사안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해 왔으며 이로 인해 작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근골격계질환의 예방에 대한 사업주 의무가 신설되었다. 이에 따라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개정과정과 규칙의 세부내용에 관한 것이다.

노동자보다 재계의 입장만을 반영한 정부의 근골격계 법 개정

먼저 법 개정과정을 살펴보자. 근골격계질환이라는 직업병의 법개정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개진될 수 있는 통로와 참여가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노동계는 범 산업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 공식적인 산재보상 통계자료만으로도 지난 4년간 본 질환은 4배가 증가함 – 근골격계질환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해 왔고, 이에대해 정부는 결과적으로 수용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법의 실질적인 사업장 적용에 중요한 규칙에 관한 내용 역시 노동계,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 경제계, 정부의 안이 공개적으로 검토되고, 최종적으로 수용되는 안에 대한 근거와 이의 파급효과에 대한 심도 있는 정책적 분석과 효과가 제고되어야 한다. 노동부 산하단체인 한국산업안전공단은 대한인간공학회에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인정기준에 대해 의뢰를 하였고 그 결과를 지난 6월 초 공청회를 통해 논의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 공청회는 개최 며칠 전에 알려졌고 노동계나 타 전문가의 의견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노동계는 이 공청회를 단순한 통과의례로 밖에 인식할 수 없었고 이는 공청회 자체의 무산과 10일간의 노숙농성으로 이어졌다.

공청회 이전에도 이미 노동계와 타 전문가 집단에서도 상이한 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 안은 공개적인 석상에서 논의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규제개혁위원회는 경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존에 논의된 내용에 대한 충분한 근거도 없이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인정기준과 치료시기 등에 관한 결정을 하게 됐는데 그 결과는 재계의 입장을 십분 반영한 것이었다. 현 정부는 규제에 관해 환경. 안전 등 사회적 규제는 완화보다는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영역임을 천명한 바 있는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관한 합리적인 개선책이라기 보다는 재계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근골격계질환의 인정기준에 관한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신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6개월 이상 종사한 자에게 나타나는 질환’이라는 근골격계직업병 인정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사용자 측의 의견을 받아 들여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하여 일본의 기준인 “해당업무에 상당기간(1년이상) 종사하고 과도한 업무로 인정될 경우 종합 평가한 뒤 요양여부를 결정” 하겠다고 하였다.

근골격계질환을 발생시키는 직업적 요인은 매우 다양하며 대부분의 경우 하나이상의 유해인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불편한 작업자세, 과도한 힘의 사용, 정적상태의 유지, 부적절한 휴식, 과도한 반복성 작업, 단조로운 작업, 제한된 작업, 부적절한 작업환경(온도, 습도, 소음, 조명 등), 부적절한 작업장 및 작업대의 구조와 상태, 정신적 긴장과 부담(노동강도강화, 부족한 인력, 촉박한 납기일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근골격계부위에 피로가 누적되면 신체부위가 손상되어 나타나는 것이 근골격계질환이다.

노동환경 개선이 사업주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따라서 사업장에서 조기에 발견하여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사태를 방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재계가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신청에 따른 생산성 악화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초기의 예방조치가 사업주의 입장에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또 다른 이슈는 근골격계질환자의 치료에 관련된 것으로서 규제개혁위원회는 일반통증장해의 경우 3개월로, 수술을 했을 경우 6개월로 치료종결기간을 제한했다. 근골격계질환자에 대한 치료, 보상, 재활 및 작업복귀는 산재보상보험법 등 관련 법규에 근거하여 시행해야 한다. 근골격계질환의 대상자 수가 많다고 하여 타 질환과 다르게 특정 치료기간을 정해 놓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처사이다.

근골격계질환자의 치료에 관해서 장기요양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일정기간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은 “치료종결자에 대한 복귀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함을 원칙으로 하되 치료전 원직으로 복귀시 해당작업의 유해요인이 제거되거나 그 위험수준이 충분히 경감되었음을 확인한 후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명백히 위해되는 사항이다. 치료종결이란 질환회복에 걸리는 개인별 차이, 의료진의 진단, 작업환경의 개선을 고려하여 시행되어야 하므로 강제적, 시한부적 치료종결은 현재 한국의 산재보상보험의 원칙수준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보다 우리의 관심이 주어져야 할 점은 근골격계질환의 예방이다. 근골격계질환에 관한 규칙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슈는 근골격계질환의 업무관련성 여부, 인정기준, 치료기간 등이다. 하지만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기본적인 목적이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제공하는 사업주의 예방대책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칙의 내용은 직업관련성 질환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예방적 프로그램 또는 지침으로서 그 의미가 주어져야 한다.

근골결계질환 법규의 핵심은 예방 프로그램

근골격계질환의 발생을 억제하고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질환을 발생시키는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밝히고 이러한 위험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여 발생하는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법규는 협소화된 계량적 판정도구로서의 규칙이 아니라 관련법의 제정목적이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규정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골격계질환은 산업, 직종, 사업장의 특성 등에 의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각 부문에 맞는 포괄적인 프로그램에 향후 역점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각 사업장내에서 예방 프로그램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감독, 지원, 감시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긍정적, 제재적) 조치를 취하는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체계적인 예방프로그램에서 제외되기 쉬운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노동자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질환의 협소한 정의와 기준에 집착하는 것은 예방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당장 들어가야 되는 경제적 비용을 감소시켜보려는 의도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예방프로그램을 실시한 사업장은 장기적으로도 생산성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을 한국의 사업주는 제고해야 할 것이다.

결국 근골격계질환을 포함한 노동자 건강권의 확보는 건강한 노동환경 조성을 위해 사업주가 예방조처를 ‘최대한’ 하는 규정, 철저한 감독, 감시가 이루어져야 하며 일단 발생한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먼저 치료를 받게 하는 체계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 사회도 노동자의 건강과 그 가족의 건강향상을 위해 이러한 목표를 향해 장기적인 계획을 구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