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아니어도 산재보험 혜택 부여해야
노동연 윤조덕 박사, “산재보험에 유사근로자 개념 도입 필요”
특수형태종사자 산재보험 적용방안 토론회

ⓒ 워킹보이스 이정희

기업의 고용형태 유연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형태노동자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유사근로자’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조덕 한국노동연구원 산업복지연구센터 소장은 11일 노동연구원 주최로 열린 ‘특수형태종사자, 산재보험 적용방안 토론회’에서 “산재보험을 적용하는데 있어 근로자와 사업주라는 2분법적 구분은 노사정위에서의 그 동안 논의과정과 내용을 볼 때 적합하지 않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윤 소장은 “현재 산재보험법상의 피보험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기 때문에 특수형태직업종사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이 불가능하다”며 “산재보험법을 근로기준법에서 독립된 법으로 재편하고, 적용대상 역시 독자적으로 피보험자 그룹을 법에 새로 정의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예를 들어, 피보험자 그룹을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뿐 아니라 폭 넓은 개념의 ‘취업자(또는 유사근로자, 또는 특수형태직업종사자)’를 추가하자는 것이다.

윤 소장은 이어 근로자가 아니지만 산재보험 혜택을 부여해야 할 대상으로 노사정위 비정규특위 공인위원안에서 제출된 △특정사업주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이로 얻은 수입으로 생활할 것 △타인을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노무를 제공할 것 △노무제공에서 직간접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을 것 이외에 자신의 전체 보수의 상당액(1/2 또는 3/4 등)을 특정 사업주로부터 받고 있는 경우 등을 제시했다. 대상이 확정된다면, 이들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은 ‘강제가입’ 방식이어야 하고, 산재보험료는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소장은 “이 방안은 전체 취업자의 산재보험 적용율을 높여 사회보험으로서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넓히고 노사정위 논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며 당사자들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 2001년 현재 전체 취업자 대비 산재보험 적용율은 49.5%이다.

하지만 윤 소장은 “여전히 특수형태직업종사자 개별 그룹(직종)들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대상 피보험자성 판단을 위한 기준마련에서 논란이 예상된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 밖에도 윤 소장은 매년 산재보험법을 적용할 몇 개의 업종을 선정해서 법에 명시하는 방안과 법에 일정기준을 명시하고 적용대상 업종은 선정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방안 등을 함께 제시했다.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성’ 부정해서는 곤란

윤 소장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노동계 인사들은 이제까지 적용 제외됐던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부여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를 이유로 ‘노동자성’이 부정돼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 피력했다.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긍정적인 면이라면 사회보험 적용에서 제외돼 있던 새로운 고용형태 노동자들에게 보험 혜택을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라면서도 “취업자 또는 유사근로자라는 개념을 도입한다면 사실상 근로자로 봐야 할 사람들을 또 다른 유형의 근로자로 나누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국장은 “산재보험에서 또 다른 형태의 ‘근로자’를 정의한다면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산재보험을 갖고 에둘러 접근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성’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숙 전국여성노조 88CC분회 분회장도 “특수고용직인 경기보조원은 채용에서부터 캐디피 결정까지 다 회사에서 통제를 받는 노동자”라면서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 산재보험에 당연 가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토론회에는 건설운송노조, 보험모집인노조, 유성cc노조, 전국여성노조 소속 특수고용노동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워킹보이스 이정희

“사업주의 보험료는 자신이 직접 내야”

반면 사업주들은 작업수행 과정에서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특수형태종사자들은 근로자가 아닌 사업주이기 때문에 ‘유사근로자’ 개념 도입에서부터 산재보험 강제가입 등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황성순 전국골프장협회 사무차장은 “캐디는 골프규칙에 따라 경기진행 조언자이고, 전문직업인으로서 자기 능력을 용역으로 제공하는 사람이며 사업주가 아닌 플레이어(player)로부터 소득을 취하고 있다”며 “따라서 이들을 유사근로자로 본다는 것이나, 사업주에게 산재보험료를 내라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성일 (주)대교 상무 역시 “학습지 교사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중간적, 절충적으로 제출된 ‘유사근로자’ 개념 도입을 반대한다”며 “또한 지금도 큰 학습지 회사들은 상해보험을 통해 근무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 조치는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김정태 경총 상무는 “재계에서 부담하는 산재보험료가 최근 연간 13조원에 달해 이를 관리해야 하는 근로복지공단이나 비용을 부담하는 기업이나 어렵긴 마찬가지”라며 “적용대상이나 보험료율, 보험료 지급 주체 등에서 혼선이 예상되는 만큼 자기 부담에 의한 임의가입은 허용하되 전면적 확충보다는 내실화를 기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성’ 따지기 전에 ‘보호’ 필요성에서부터

이처럼 노사간 공방이 계속되자 사회를 맡은 임종률 성균관대 교수(법학)는 “오늘 토론은 근로자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산재보험을 적용해서 보호할 것인가이다”라며 ‘보호’에 초점을 맞춘 토론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김영문 전북대 교수(법학)는 “노동계가 너무 근로자성에 집착하니까 산재보험 적용방안 논의에 애로가 많다”며 “차츰차츰 적용을 확대해 나가다보면 근로자성에 접근하지 않겠냐”고 단계론을 제기했다. 이호근 노사정위 전문위원도 “근로자성 개념에 관한 논의는 노사정위에서 더 논의하기로 한 만큼 보호의 대상과 업무상 재해 판단 여부 등 보호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 구체적 방안이 제출돼야 한다”고 선보호론을 주장했다.

노동계 참석자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김태성 한국노총 산재보상국장이 선보호론에 동의했다. 김 국장은 “특수형태근로자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또한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호는 국가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수고용직을) 산재보험 체계 개편을 통한 피보험자 정의에 넣자는 (윤 소장) 안에 동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