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일용노동자에겐 높디높은 산재보험 문턱
24일 11시 산재보험개혁공대위(아래 공대위)는 산업재해보상보험(아래 산재보험)으로 인해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공대위는 “산재보험 적용에서 공사금액과 면적, 사업주의 면허소지 등에 따라 건설일용노동자를 제외하는 것은 평등권에 반하는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개정 산재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건설업 면허를 소지한 업자가 행하는 모든 공사에 산재보험이 적용되게 되었지만, 여전히 무면허 업자가 행하는 2천만원 미만의 공사나 연면적 330제곱미터 이하인 공사에는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공대위는 일용직 건설노동자 대부분이 건설업 면허가 없는, 2천만원 미만의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인권위 진정은 지난 5월 29일 건설노동자 이종만(42)씨의 자살이 계기가 됐다. 이씨는 올 1월 작업중 허리를 다쳐 추간판 제거 수술을 받은 후, 다시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이씨가 일한 사업장의 공사 금액이 2천만원 미만이었던 것. 산재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에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고통 받던 이씨는 결국 경위를 알리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씨의 부인 문숙희씨는 “다치고 나서 수술비 외에도 병원비도 많이 들었고, 다시 수술을 해야하는 것 때문에 혼자서 회사와 병원, 그리고 노동부를 찾아다니다 모두 (산재보험) 적용이 안 된다고 하니까 실망했던 것 같다”며 눈물을 지었다. 이씨가 사용하던 방에는 그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파스와 진통제, 찜질기, 전기치료제 등이 쌓여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은 “사회보장이 필요한 영세사업장의 저소득,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재보험에서 제외되고 있는 실태”라며 “이런 허술한 사회보장 제도의 문제를 밝혀, 인권위가 차별적 법률을 개선하도록 권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사무국장도 “건설산업연구원에서도 밝혔듯이, 대부분의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2천만원 미만 공사를 하는 무면허 영세사업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들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이들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정부가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재해 사실을 노동자가 증명해야 하는 ‘사전승인제도’ 역시 산재보험제도의 큰 문제라는 것이 공대위의 설명이다. 업무상 발생한 재해임을 증명하기 위해 재해 당사자가 회사의 날인, 병원 의사의 소견서, 재해경위서, 목격자의 진술서 등 증빙서류를 준비하여 근로복지공단과 병원, 회사에 제출한 후, 근로복지공단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치료·요양 등의 비용을 지급받게 된다.
휴먼 산재연구소 윤성봉 소장은 “특히 질병의 경우 노동자가 업무와의 관계를 밝히기에는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다친 노동자가 자신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서 증인 등 객관적 자료를 충분히 준비한 후에 근로복지공단에 찾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공대위는 이런 사전승인제도가 노동자에게는 적절한 치료와 재활서비스의 권리를 제한하는 장벽인 한편, 사업주의 산업재해 은폐를 부추긴다고 주장하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고근예 기자 (humanrights@sarangban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