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전망 없으면 사회적 타살 계속될 것”
참여연대, ‘벼랑끝 계층’에 대한 긴급토론회
2003-07-23 오후 7:16:12

최근 생활고로 인해 가정주부가 자녀들과 함께 투신하는 등 갑작스런 빈곤으로 인한 자살사건이 빈발하자 이의 원인과 대책을 알아보기 위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김연명 중앙대교수)주최로 23일 낮에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벼랑 끝 사회, 사회안전망을 점검하자’는 토론회에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벼랑 끝 계층’의 고통해소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로빈곤층’(워킹푸어, working poor)이 이런 ‘벼랑 끝 계층’이 될 잠재적 위험이 높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회안전망 없으면 사회적 타살 계속될 것”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등 ‘근로빈곤층’이 ‘벼랑 끝 계층’으로 전환될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프레시안

이태수 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발제에서 “최근 ‘벼랑 끝 계층’ 자살사건의 원인은 사회안전망에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그 원인을 살펴보면 중산층의 실업과 비정규직화로 인해 일하는 빈곤층인 근로빈곤층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죽음은 사회적 지원체계가 무너진 구조적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개인적 차원의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적절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을 경우 ‘사회적 타살’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특히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 각종 수당제도에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어 아무런 사회보장지원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존재하며, 중산층조차도 급격한 위험이 닥칠 경우 ‘벼랑 끝’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사회보장 사각지대의 시급한 해소를 위해 생계와 의료, 주거, 교육과 같은 기본적 요소에 대한 긴급구호의 국가보장, 긴급대부를 통한 자립기반 구축 기회 마련, 사회적으로 공공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안정적 수입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우리사회는 지금 일하면서도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형성 기제가 작동되고 있다”며 “중산층 또는 서민층이 갑자기 ‘벼랑 끝 계층’으로 추락하는데 별다른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않고 있어 이들의 추락에 날개를 달 수 없는 것이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현재 사회보장비지출 수준이 선진국의 1/3 수준이며, 선진국의 1인당 GDP 1만불 시점과 비교해도 1/2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는 결국 사회안전망 체계의 신속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비정규직 문제 두달내 계획 나올 것”

토론자로 참석한 김수현 대통령비서실 빈부격차·차별시정 타스크포스(T/F) 비서관은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부와 자원을 정확한 타깃을 정해서 전달해야 하는데 ‘사각’과 ‘부정수급’이 공존하는 것이 우리 공공부조 시스템의 문제점”이라며 “앞으로 이를 정확히 필요한 사람에게 가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무엇보다 큰 문제는 많은 국민들이 일은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희망이 없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정부가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근로빈곤층 문제에 대해 “피하지 않고 해결에 나설 것”이라며 “그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는 적어도 두 달 이내에 참여정부의 구체적인 계획과 시간표가 나올 것” 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주택문제 등을 통한 다른 형태의 실질소득감소도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큰 요소”라며 “이제는 부동산 투기를 못 잡으면 ‘사회통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20년간 문제가 있다는 지적만 있고 못 고치던 부동산 보유과세에 대한 ‘일정표’ 역시 같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두 가지 다 곧 발표해도 될 정도로 내부적인 점검은 마친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 비서관은 “정부도 물론 역할을 다 하겠지만 정부가 찾아가기 힘든 비어 있는 부분에 대한 접근성과 심리적 안전망의 필요성도 절실하다”며 민간과 시민단체가 이를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줄 것을 당부했다.

“우리는 정글에 사는 게 아니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은 “이전에 우리 사회는 가장이 죽거나 가출해서 ‘한부모가정’이 될 경우에 친정 가족들이 안전망 역할을 대신 해 주었으나 점차 이를 기대하기도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번 사건도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겨 놓고 취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어난 비극인 만큼 아이들의 평등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보육비를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 사무총장은 “여성근로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근로빈곤층 이라는 점도 기억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실장은 “우리사회가 지금도 ‘성장제일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지배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비극이 거듭 발생하고 있다”며 “일하는 빈곤층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직이나 노동력의 상실로 인해 언제 벼랑 끝에 몰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정글에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신자유주의에 대한 규제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재성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절대빈곤층인 ‘한계계층’ 바로 위에 존재하는 ‘차상위계층’에 대한 복지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음을 실감하고 교육과 의료분야 만큼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