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은 산재보험, 공사판 일용직 두번 울린다
현행법 2000만원이상 공사만 적용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근근이 살아가는 김모(40)씨는 지난 5월 마산의 한 주택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허리를 크게 다쳤다.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김씨는 산재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사고가 난 주택의 건평(99평)이 산재보상 기준에 1평 모자란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어떻게 1평 때문에 산재처리가 안되냐”며 “다쳐서 일도 못하는 판에 몸으로 때워 끼니를 잇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죽으란 얘기냐”고 하소연했다.
박모씨는 지난해 4월 서울 서초동의 한 상가 건물옥상에서 외벽청소를 하다가 추락해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러나 산재보험운영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주의 산재보험 가입신청서를 받지 않았다. 공사금액에서 부가가치세를 빼면 2000만원이 안된다는 게 신청서 반려사유였다.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산업재해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목숨을 담보로 일하고 있다.
13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전국 건설일용노동자의 상당수가 공사금액 2000만원 미만의 현장을 넘나들며 생계를 잇고 있지만, 산재보상법의 문턱이 높아 죽거나 다칠 경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보상법에 금액 2000만원 이상의 건설공사나 100평 이상의 주택공사에서 재해를 당한 경우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돼있어 김씨나 박씨처럼 상당수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또 이같은 제도를 악용해 사업주가 공사비를 2000만원 미만으로 축소 신고해 산재보상을 막아 입는 피해도 많다. 2000년 6월 서울의 한 가정집 수리를 하다 발목인대가 파열된 최모씨는 건물주와 시공사업주의 결탁으로 총공사비가 2000만원 이하로 축소돼 산재승인을 받지 못했다. 결국 재판까지 가서 승소했지만 사용주가 잠적해 현재까지도 전혀 보상을 못받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건설재해자 1만9925명 가운데 84%(1만6682명)가 50인 미만 건설현장에서 일어났다. 이중 5∼9인 건설현장의 재해자수는 4605명이나 됐다. 이처럼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데, 전문가들은 관리도 안되고 통계도 안잡히는 2000만원 안팎 규모의 건설현장에서도 산업재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정부는 법을 개정, 이달부터 건설업 면허 소지자가 행하는 공사에 대해선 금액 제한없이 산재보험을 적용하도록 했지만 이 역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업면허 소지가가 2000만원 미만의 소규모 건설공사를 맡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박사는 “2000만원 미만의 건설현장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산업안전을 소홀히 해 작업도중 사고가 많지만 산재신청이 차단돼 있어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며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노동건강연대 등 산재보험개혁공대위는 24일 건설 일용노동자의 산재보험적용 차별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이강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