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죽고 또 죽고’…집진기에서 사망
비료생산업체인 남해화학, 사망자와 도급업체에 책임 전가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조호진 기자

▲ 사고 현장을 조사 중인 남해화학 등 관계자들.

ⓒ2003 여수건설노조

여수국가산업단지(이하 여수산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산재사고로 또 숨졌다. 올해 들어 안전불감증에 의한 산재사고로 숨진 여수산단 비정규직 노동자가 벌써 7명째다.

남해화학(주) 청소 협력업체인 백광기업 소속 손대현(20·여수시 서교동)씨가 18일 이 회사 제품포장공장 집진기 청소작업 도중 산재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수경찰서 관계자는 19일 “손씨가 집진기 청소작업 도중 1m 70cm 맨홀 밑으로 추락, 가동 중인 컨베이어(스크류 종류)에 두 다리가 끼이면서 충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관계자들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손씨 구조에 나섰던 동료 윤광수(백광기업 작업반장)씨는 19일 “맨홀에 갇힌 손씨가 처음에는 ‘제발 빼달라’는 등의 말을 할 정도로 의식이 남아 있었다”면서 “손씨를 구조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스크류 볼트 해체작업이 너무 복잡해 살리지 못했다”고 동료를 잃은 슬픔을 호소했다.

숨진 손씨는 실직자인 아버지와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는 어머니를 둔 청년으로 젊음도 꽃피우지 못한 채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스크류 작동 중에 작업자 투입한 것은 고의적인 살인행위”

▲ 사고 현장을 둘러 보는 노동자. 기계를 작동 중에 작업 시킨 것은 고의적인 살인행위라고 여수건설노조 관계자는 분개했다.

ⓒ2003 여수건설노조
현장 사고조사에 나섰던 여수건설노조 김대훈(39)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이번 사고는 간접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격분했다.

김 명예감독관은 “사고 당일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비가 오고 있었음에도 발주처 및 하청업체의 안전 담당자가 현장에 없었다”면서 “발주처인 남해화학에서는 협력업체인 백광기업과 도급계약을 했기 때문에 안전관리의 전반적인 부분마저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라며 발주처의 태도를 비난했다.

김 명예감독관은 또 “집진기 전원을 완전히 차단시킨 후에 작업자를 투입해야 함에도 기계가 작동 중인 상태에서 작업자를 투입한 것은 고의적인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면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였는데 회사측의 안전 불감증에 의해 또 한 명의 귀중한 생명을 사지로 내몰고 말았다”고 격분했다.

김 명예감독관은 노동부에 대해 “여러 산업현장의 부실한 안전문제를 제기하고 사진까지 찍어 여수지방노동사무소에 보냈지만 이들은 점검도 나가지 않고 태연하게 휴가나 간다”면서 “이들 공무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명이 죽든 100명이 죽든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태도”라면서 거칠게 성토했다.

김 명예감독관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처구니없는 산재사고로 죽어가지만 사업자들은 벌금만 내면 끝이다”면서 “노동부와 검찰이 산재사고에 대해 솜방망이로 처벌하는데 누가 안전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겠냐”고 사업주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비판했다.

남해화학, “작업자가 무리하게 작업하다 실족사 했다” 책임 전가

▲ 손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이는 컨베어 스크류.

ⓒ2003 여수건설노조
남해화학은 언론사에 배포한 ‘사고보고서’를 통해 산재사망 사고의 책임을 사망자와 도급업체에 전가하기에 급급해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비료 생산업체인 이 회사는 여수산단 대다수 업체들이 안전작업 허가서 발급 등의 조치를 취한 뒤 작업을 허가하는 것과 달리, 도급업체에 작업을 전적으로 맡겼다가 사망사고를 내고도 모든 책임이 도급업체에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남해화학은 ‘사고보고서’에서 “재해자(사망한 손씨)가 마무리 작업을 조속히 종료하기 위하여 컨베어가 가동 중인 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내부로 들어가다 실족하였다”면서 또 “도급업체에서 (작업자에 대한) 사전 교육, 관리·감독이 미흡한 것으로 사료된다”면서 사고책임을 사망자와 도급업체에 전가했다.

이 회사는 또 “만약에 대비, 남해화학(주)는 내부 시설개조를 하여 동종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협력업체)작업사항이 발생시 사전에 남해화학(주)의 담당팀에 통보 후, 지시에 따라 작업을 안전하게 수행토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내놓았다.

여수지방노동사무소 관계자는 19일 “정비·보수 중에는 운전을 중지하고 작업하는 게 상식인데도 이번 사고는 집진기를 가동한 상태에서 작업자를 투입했다”면서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원청과 하청회사 모두 엄격하게 처벌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여수지방노동사무소 관계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산재사고가 계속 발생해 협력업체 안전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사고가 계속 발생해 난감하다”면서 “관리 현장이 넓고 직원은 부족해 일일이 대처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인원부족에 문제를 돌렸다.

여수지방노동사무소 자료에 따르면, 5월 현재 전남동부권(여수·순천·광양) 산업현장에서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18명으로 지난해 15명보다 2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7월 2일에는 LG칼텍스정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질소가스 질식사고로 숨지는 등 대부분의 산재사망사고가 안전불감증에 의한 후진적인 사고로 밝혀져 안전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전남동부권 산업현장에서 산재를 당한 노동자는 486명으로 지난해 347명보다 무려 40%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사업주 등의 사법처리는 2건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 산재사고 급증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동부가 19일 발표한 ‘상반기 중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올6월까지 산재피해자는 4만 666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0.2%가 늘어났으며, 사망자는 1482명으로 지난해 1242명 보다 240명(19.3%)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1만명당 사망자를 나타내는 만인율은 1.43명으로 전년동기에 비해 0.25%포인트 증가했다.

2003/08/19 오후 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