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아닌 죄인으로 삽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36] 대구 지하철 기관사 김용현씨

ⓒ2003 김진석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 기관사 김용현씨(35)는 양치질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두 달에 한 번 꼴로 돌아오는 첫차를 운행하는 날입니다. 그에게 첫차는 매우 중요하고 또 부담스럽습니다.

“첫차가 잘해야 뒤따라오는 차가 잘하지 않겠습니까?”

첫차는 보통 젊은 사람보다 약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비록 두 달에 한 번이지만 첫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을 볼 때면 그도 느끼는 바가 큽니다.

“첫차 이용객이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이 직업적인 이유이든 어떤 것이든 일찍 일어난다는 자체가 그만큼 인생이 길어진다는 게 아닌가요? 남들보다 앞서간다는 거잖아요. 본받을 점도 많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양치질을 끝내고 그가 차량기지로 자리를 옮긴 후 지하철 상태를 점검합니다. 버튼이란 버튼은 모두 눌러 작동상태를 확인하고 문도 열었다 닫았다 합니다.

그러는 사이 한 시간이 훌쩍 흐르고, 드디어 새벽 5시 20분. 대곡역을 출발해 교대역까지 운행하는 대구지하철 첫차가 출발합니다.

김씨가 자꾸만 기침을 합니다. 지하에서 일하다 보니 후두염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한 매년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시력이 자꾸 떨어진다고 합니다. 컴컴한 터널에서 하얀 형광등에 의지해 몇 시간씩 운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 안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다름 아닌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처음엔 무작정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운행 전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일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복통이나 두통이 찾아올 때면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2인 승무를 한다면 교체를 하니 상관이 없지만 혼자 운행을 하니 어쩔 방법이 없지요. 하지만 곧 바뀌지 않겠습니까?”

ⓒ2003 김진석

그에게 혹 속상했던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물으나마나한 질문이었습니다.

“2·28 참사지요. 미연에 방지를 했어야 했는데…. 그때 거기에 제가 없었을 뿐입니다.”

참사의 그날, 그는 아침근무를 했습니다. 운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 큰 사고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사망자 수는 늘어만 갔습니다. 친구와 가족들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출근하고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꼈어요. 정말 고개를 못 들었지요. 승강장을 통해 출근을 하면 시민들을 만나잖아요. 얼굴을 들지 못했어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지요.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죠.”

김씨는 기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그때 처음으로 후회했다고 합니다.

“무전기 개선은 정말 시급합니다. 가장 안 좋은 점이 기관사끼리 서로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앞에 가는 열차가 어떤 상황인지를 알 수가 없어요. 바로 뒤따라가면서도 뒤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그는 또 대구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승객들이 장난을 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문을 열고 닫는데 조금만 장난을 쳐도 열차가 지연이 되거든요.”

어느 날, 올해 다섯 살 된 딸아이가 엄마에게 “우리 아빠는 왜 일요일에 출근해”라고 물었다는 것을 전해 들은 김씨. 그 마음이 좋을리 없습니다.

“그런 말 들었을 때 가슴이 좀 아팠지요. 아직 어려서 정확히 아빠의 직업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기관사라는 것은 대충 알고 있어요. 좀더 크면 알게 되겠죠.”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무겁지만 그래도 김씨는 기관사라는 직업에 대한 보람이 큽니다. 근무한 지 3년이 되던 해 그는 현금 300만원이 든 가방을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줬습니다. 당시 정말 보람을 느꼈다는 그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보람은 퇴근 후 느끼는 아닌가 싶습니다.

“보람이야 퇴근할 때 느끼죠. 아! 오늘도 아무 사고 없이 승객을 안전하게 모셨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요.”

분명 날이 밝았을 텐데 터널 안은 여전히 암흑 속입니다.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법도 한데, 운전석 불도 켜지 않고 깜깜한 터널을 쉴새 없이 달렸습니다.

지난 2월 사고 이후 대구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전에 비해 약 1/3 수준에 그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대구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저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뿐입니다.

매 정거장마다 지하철이 멈추고 승객들은 타고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잠시 주어지는 짧은 휴식시간에도 그의 시선은 승강장 맨 앞의 거울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큰 사고가 발생해요. 아무 생각 없이 운행하면 다칠 위험이 있으니까 승객들의 동태를 확실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바로 사고와 직결되니까요. 모든 것은 승객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항상 긴장 속에 사는 거죠. 승객들이 차를 타는 순간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긴장 속에 삽니다. 지하철이 왜 왔다갔다합니까? 승객들을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