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산재문제 “한글 알아야 위험 피하죠”

경향신문 2003/10/08

국내 외국인 노동자가 36만명을 넘어서는 시대가 됐지만 이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은 낯 부끄러울 정도다. 산업연수생 등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그나마 간단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지만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인사말조차도 모른 채 위험한 작업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실태=인천의 식품공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서용성씨는 지난해 9월 발뼈가 으스러지고 엄지발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새 공장 건물을 짓기 위해 기존 건물을 헐어내는 작업을 하던 중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벽에 발이 찍힌 것이다.
사고 직전 한국인 동료들은 위험하다며 피하라고 여러차례 소리쳤지만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서씨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금형과 사출, 도장, 가구공장 등에서는 말 한마디를 알아듣지 못하면 산업재해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양해우 소장은 “외국인 노동자가 당하는 산재는 미숙련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단체가 지난 2년간 산재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 145명을 상담한 결과 52.3%가 작업장에 간 지 3개월이 안돼 사고를 당했다. 대다수가 한국에 온 지 3년이 안된 사람들로서 한국어에 익숙지 않았다.

◇‘백지상태’ 한글교육=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받는 이틀간의 교육은 한국 체류시 주의할 사항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부 대형 사업장들은 자체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 다국어 안내판을 설치하고 있지만 영세 사업장들은 간단한 인삿말 교육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가 밀집한 지역의 종교단체나 외국인노동자센터 등은 휴일에 한글교실을 열어 한글과 작업장에서 꼭 필요한 말들을 가르치지만 야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전문적인 한글 강습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국국제노동재단은 이같은 점을 감안, 지난 7월 180쪽짜리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재미있는 한국어1’이라는 교재를 만들어 한글교실에 배포하고 있지만 주말과 휴일에도 작업을 하는 공장들이 많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책=외국인 노동자 단체들은 정부차원의 외국인용 한국어 교재 마련과 교육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최의팔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과거 한국 노동자들이 독일 광부로 갈 때 독일에서 업체들과 대사관이 공동으로 두달간 기초적인 독일어와 독일문화에 대한 교육을 시켰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장기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동남아 지역 등에 해외 한국어 교육기관을 설립, 한국어의 국제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