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3년 10월15일

일용직 건설노조가 공갈 협박했다?

▲ 대전 유성구 노은동의 아파트 건설현장.

ⓒ 오마이뉴스 정세연

대전 대화동에 사는 박 아무개씨는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하던 남편이 지난해 공사현장에서 추락사 해 남편을 잃었다. 박씨를 더욱 기막히게 한 것은 당시 건설현장에서 남편이 추락한 사실을 한나절이나 지난 뒤에야 알게 돼 응급처치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 박씨는 남편의 동료들로부터 “‘안전모와 안전대만 착용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탄했다.

노동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3년 6월 현재 건설현장의 사망자 수가 370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90명에 비해 사망자 수가 80명이나 늘어난 것. 또 건설현장의 사망자 수가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수의 24.97%를 차지했으며, 이 중 48.65%에 해당하는 180명이 추락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산업노조가 출범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98년 이른바 ‘노가다’로 불리는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각 지역 건설노동조합이 발족한 것. 2만5천여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는 노조의 첫 사업이 현장안전수칙 준수여부 감시활동에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 경찰이 건설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을 ‘건설업체를 공갈협박해 수천만원의 금품을 갈취했다’며 구속했다. 경찰은 대전충청건설노조 간부와 활동가 6명을 구속한데 이어 같은 혐의로 천안, 경기 지역 노조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등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경찰이 문제삼은 것은 업체 측으로부터 받은 노조전임자 인건비. 경찰은 노조가 단체협약 체결 의무가 없는 원청과 협약을 체결한데다 이 과정에서 현장의 안전시설 미비 등을 문제 삼아 협박해 노조전임자 인건비를 부담하도록 강제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노사간의 자율적 교섭으로 강제교섭을 체결한 바가 없고 노조전임자 인건비는 모든 노조가 협약을 통해 받고있는 정당한 활동비라며 반박하고 있다.

노조측은 또 건설현장은 누구나 기피하는 최하위 작업현장임에도 노동부나 행정당국이 방관해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결성한 노조마저 사업주의 이해를 우선시 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

사업장측 “협박한다고 단협 체결하나” “경찰이 자꾸 몰아가”

▲ 지난달 24일 대전 중부경찰서 앞에서 열린 ‘건설노조 표적수사 중단 요구’ 기자회견

ⓒ2003 오마이뉴스 심규상
대전충청지역건설노조가 지난 99년경부터 건설현장의 원청사를 대상으로 체결해온 단체협약 내용은 근로기준법 보장·근로계약서 작성·복지후생·노조활동 보장·산업안전 보장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2001년 9월부터 현재까지 맺은 협약 건수는 대전 노은 및 관저지구 아파트 건설현장 등 모두 27곳. 경찰이 문제삼은 것은 협약내용 중 공사규모가 500억원 이상인 현장에 대해서는 월 50만원 이상, 500억원 이하인 곳에서는 매달 20~50만원의 노조활동비를 내도록 한 대목. 경찰은 27곳의 사업장에서 2001년 9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총 156회에 걸쳐 모두 7천여만원을 갈취했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은 우선 교섭과정에 공갈협박이 있었는지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장 확인에 나섰다. 다음은 현장소장 등 협약 체결자들의 취재가 가능했던 14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요약문이다.

A사: “협박 없었다. 대전지역 다른 현장도 전체적으로 함께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B사: “협박 없었다.”

C사: “단협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거다 정도. 서로 입장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대놓고 얘기하는데 공갈협박이 있었겠나.”

D사: “협박 없었다.”

E사: “협박 없었다. 말이 와전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분위기에서 단협을 체결했다.”

F사: “협박 없었다. 우리 회사도 규모가 있는 회사인데 협박한다고 단협을 체결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G사: “협박 없었다.”

H사: “협박 없었다.”

I사: “안전문제는 노조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J사: “처음부터 단협을 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교섭이 지연되는 바람에 체결 시점이 늦어졌다. 그 사이 노조가 사진을 찍어 경고조치를 한 적이 있다. 이 건이 협약체결에 일정하게 작용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칙은 단협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K사: “답변할 수 없는 내용이다.”

L사: “단협 체결 안 하면 사진 찍어 고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협박이기 보다는 협약체결 과정의 줄다리기로 이해했다.”

M사: “협박 없었다고는 말 못한다. 노조의 의도는 좋은데 노조원이 현장에 없다면 단협이 정당할 수 없지 않나.”

N사: “공갈협박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나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서로 대화하는 중에 공갈협박과 비슷한 것들이 오갔다.”

14개 사업장 중 “협박이 있었다”고 말한 경우는 2개 사업장에 불과했다. 여기에 ‘답변할 수 없다’ 등 불명확한 답변을 한 사업장을 모두 포함하더라도 4개 사업장이다. 이 같은 결과는 경찰이 27곳 사업장 전체가 협박으로 외포심 속에서 강제협약을 체결했다는 수사발표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단 한곳에서라도 공갈협박이 있었다면 문제가 되기 충분하다. 이와 관련 현장 사측 관계자들은 “공갈협박이 있었다기 보다는 단협을 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로 골치가 아플 수 있어 대부분 할 수 없이 단협을 체결한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한 것이지 협박은 없었다”며 “그런데 경찰에서 그 쪽으로 몰아가니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도 중간에서 난처하다”고 말해 경찰의 무리한 수사 의혹까지 일게 했다.

공갈협박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협약을 체결하지 않을 시에 뒤따를 불이익을 우려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단체협약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건설노조 관계자는 “노조활동 목적이 단체협상을 통해 사측이 그동안 소홀히 해온 근로기준법 보장·복지후생·산업안전 보장 등에 나서도록 하는데 있다”며 “이 같은 활동이 공갈협박이라면 한국사회 모든 노조원들이 공갈협박범인 셈’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대전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서로 간에 충분한 협의와 수긍이 없이 강요에 의해 이뤄진 단협이라면 전임자 인건비 역시 갈취에 해당한다”며 “현장 사업주 측으로부터 노조의 강압으로 단협이 체결됐음을 증명하는 다수의 진술이 확보됐다”고 밝히고 있다.

건설노조-원청 단협체결 정당성 논란

▲ 대전 유성구 노은지구의 아파트 건설현장.

ⓒ2003 오마이뉴스 정세연
또 다른 쟁점은 지역건설노조가 원청과 직접 단협을 체결할 권한이 있는가 여부다. 이와 관련 법률적으로는 원청과는 단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법 적용과 해석은 각 주체와 전문가간 이견을 보일만큼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았다.

건설현장의 사업자 측 관계자들은 대체적으로 “노조의 의도는 좋지만 현장에 조합원이 없다는 점에서 단협의 합법성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노조와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과 단협을 체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등으로 하나같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즉 건설현장의 사업자 측에서는 ‘공갈협박’ 보다는 뒤늦게 단협의 합법성을 문제 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평생직장이 정해진 정규직과 달리 하루살이 인생인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특수한 노조활동형태이며, 기업별 노조활동과 다른 산업별 노조활동의 형태”라며 “따라서 조합원 존재 유무, 단체교섭의 정당성 유무, 전임비 지급 문제 등은 이 점을 감안하지 않고는 판단할 수 없는, 기존의 정규직 기업별 노사관계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노사관계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십장’이나 용역을 통해 하루하루 사업장을 옮겨가며 일하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의 특성상 어제는 A사 현장에서 일하다 오늘은 B사 현장에서 일하는 등으로 노사관계가 불분명하고 때문에 원청과 직접 협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고 조합원 유무의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설령 하청과 단협을 맺는다 하더라도 하청은 노동력을 지원할 뿐 실질적인 현장관리 권한이 없어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것.

한 법률 전문가는 “현장 조합원의 유무를 떠나 원칙적으로 원청과는 단협을 체결할 수 없다”며 “하지만 건설노조의 경우 하청과 단협을 체결하더라도 이행을 보장받을 수 없어 실 권한을 가진 원청과 체결하려 한 경우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전 중부경찰서 수사과 관계자는 “현장 원청측에서는 노조 전임자 인건비가 합법적으로 나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어떤 현장은 잡비로 처리하는 등 이 문제로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체결된 협약이 어떻게 자율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이를 강제협약의 근거로 내세웠다.

경찰은 또 단협 과정에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지난 9월 성명을 통해 “건설업체 사용주들의 근로기준법과 환경관련 법을 위반하거나 저임금으로 혹사시키는 게 어려워지자 공동대응에 나선 것”이라며 “사용주들은 이미 지난해 11월 노조가 전임비 명목으로 금품을 강요한다며 노동부 장관에 진정서를 내는 등 관계당국에 건설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대전충청건설노조 박지현 사무국장도 “모 건설회사의 경우 지난 7일 경기도건설노조의 면담 요구에 ‘단협은 불법이며 전임비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며 “결과적으로 경찰이 사용자들의 말만 듣고 법 적용을 편향적으로 벌여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탄압에 나선 꼴”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라는 이유로 파렴치범으로까지 몰려”

▲ 13일 대전충청건설산업노조는 ‘1급 산재장애인 이성휘 위원장 마저 구속시킨 반인권 공안검사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대전지검 앞에서 벌였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경찰과 검찰의 구속수사에 대해 현장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전 중구 A건설현장에서 만난 김모(여)씨는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가 벌써 21년짼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항상 피해만 당하고 억울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며 “갓 출범해 하루살이 인생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간부들을 구속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일반직장에서는 노조활동도 가능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을 주는 게 아무 문제가 없는데 유독 일용직 노동자들의 전임자 활동비만을 문제 삼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현장의 이모(여)씨도 “아직도 법으로 정한 퇴직금제도가 적용되지 않고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 많다”며 “건설노조마저 없으면 우리 같은 사람을 누가 나서 옹호해 주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이어 “사업주들은 수 십년 법을 위반해도 내버려두다가 이를 문제 삼는 노조에는 트집을 잡아 구속하는 게 경찰이냐”며 “현장에서 안전관리 의무를 지키게 하고 화장실 좀 깨끗이 하라고 한 게 그렇게 잘못된 것이냐”고 항변했다.

실제 현장근로자의 평균연령은 47세로 보통 1일 12시간씩 일하고 있으나 퇴직금, 상여금이 전혀 없는 순수 일당제에 연금과 건강보험 등의 혜택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제 남편은 배전 전기일을 하는 전기노동자로 일을 하다 지난 94년 9월 감전사고를 당해 양발과 오른손을 절단했습니다. 남편은 사고를 당한 후 ‘죽거나 다치는 것을 수없이 보면서도 재수가 없어 사고가 났다고 잘못 생각해 왔다’며 노조활동을 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검찰은 단체협약이 금품갈취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노조가 금품갈취를 목적으로 활동하지도 않았지만 정말 건설회사가 노조의 고소고발 협박 때문에 교섭을 체결했다면 이는 건설회사가 스스로 잘못한 것이 많다는 반증 아닌가요. 우리 아이 아빠를 가둘게 아니라 건설회사를 수사하고 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구속된 대전충청건설노조 이상휘 위원장 부인의 항변이다. 노동계에서도 정규직 노조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 비정규직 노조라는 이유로 파렴치범으로 몰려 구속까지 되는 서글픈 현실이 자행되고 있다며 혀를 차고 있다.

/특별취재팀 기자 (jsy99@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