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앞 독서” 발령사원 ‘우울증’ 산재판정
한겨레 2003.11.20
일본 화장품 회사 ‘환켈’의 30대 중반 사원 2명은 얼마전 자신들이 앓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 산재 판정을 받았다. 자회사로 옮겨갈 것을 강요하는 회사의 지시를 거부했다가 엄청난 가슴앓이를 한 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1년 4월 자회사 파견명령을 받고 근무하던 중, 어느샌가 회사의 명령이 전직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됐다. 본사에서 쫓겨나지 않는 대가로 인사부 발령을 받아들인 이들은 다음날 출근해 아연실색했다. 자신들의 책상이 사무실 통로 한가운데, 그것도 화장실 앞에 있었다. 책상 앞쪽으로 칸막이만 하나 달랑 있을 뿐이었다. 업무를 보는데 필요한 컴퓨터나 전화도 없었다. 상사는 “성과를 묻지 않을 것이고 보고서도 원치 않으니 독서만 하라”고 말했다. 동료들이 화장실을 오가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이들은 어떤 수모를 겪더라도 견뎌내겠다고 다짐하며 하루 종일 경영·소비자심리 등 여러 책을 읽기도 했지만 한달이 한계였다. 이후로는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구토증세와 두통, 권태가 끊이지 않았다. 2개월 뒤 회사는 두 사람의 책상마저 떼놓았다. 이런 격리생활은 7개월 동안이나 계속됐다.
결국 이들은 “회사의 괴롭힘으로 무력감과 고독감에 시달리게 됐다”며 지방노동사무소에 산재 신청을 냈다. 은 19일 평생고용이라는 개념이 급격하게 탈색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