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지하철 운전의 진실
지난 9월 말 지하철 5~8호선을 담당하는 서울도시철도의 두 기관사가 죽었다. 한명은 지하철 터널을 헤매다 열차에 치어 죽고, 한명은 고향으로 내려가 여수 앞바다로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일보〉 등 언론과 감사원에서는 ‘정신병력자가 열차운전을 한다’며 열차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이 왜 그런 질병에 걸렸는지, 지금은 문제가 없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다.
고인이 된 두 기관사는 1995년 서울도시철도공사 공채 1기로 입사하였다. 당시에는 기관사 적성검사를 무난히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 5~6시간을 컴컴한 지하터널 안에서 혼자 운전해야 하는 ‘1명 승무’의 부담과 불규칙한 새벽출근 등에 시달리다 우울증, 환청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그 증세가 악화돼 선로 위에서,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건강하게 입사한 기관사 중 상당수가 지금도 열차운전으로 인한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사람은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도시철도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서울도시철도 5~8호선은 시민 서비스가 우수하여 98~2002년 전국지하철부문 경영평가에서 3번이나 1위를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도시철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잔인한 노동조건이 도사리고 있다. 도시철도는 세계 어느 지하철보다도 지하심도가 깊어 20~30m 지하에서 전체 직원의 70%가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심지어 기관사들은 새벽 1시까지 막차를 운행한 뒤 역에서 2~3시간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첫차를 운행하기 위해 새벽 4시30분에 일어난다. 특히 총 연장거리가 152㎞로 서울지하철 134㎞보다도 길지만 시설이 자동화됐다는 이유로 현장인력은 서울지하철의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기관사도 마찬가지여서 대형사고에 대책 없는 위험천만한 ‘1명 승무’를 아직까지 시행하고 있다.
올 초 노동조합에서 도시철도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의뢰한 바 있는데, 결과는 충격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했다. 45.2%의 조합원이 정신질환(만성피로, 두통, 불안, 의욕상실) 증상이 있으며 48.2%의 조합원이 수면장애(불면증, 수면박탈) 증상이 있었다. 공사는 해마다 경영평가에서 ‘빛나는’ 1위를 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조금씩 병들어 쓰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비단 도시철도 노동자들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라도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너무나 간절한 인간적 바람을 사용자와 정부는 외면해서는 안된다. 공공사업에 대한 경영효율에 앞서 서비스와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대안은 작업장의 위해요소를 제거하고 충분한 현장인력을 확보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걱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해결,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철폐 등 지극히 상식적인 노동자들의 요구조차 묵살하고 있다. 또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며 구속수사 원칙만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이런 정부가 노동자의 건강문제 따위에 관심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요구와 바람을 실현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처지에 서서 다른 한쪽에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라는 노 대통령의 말이 맞다면,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도시철도공사는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노동자의 마지막 권리에 ‘침묵’말고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흥준/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