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부르는 건설현장..사망 800명될듯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친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ㅎ사 아파트 건설 현장. 건
물은 10층까지 올라갔지만 10m 높이마다 설치해야 할 추락방지망은 3층에 겨
우 하나 설치돼 있었다.바로 옆 ㅇ사 빌딩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추락을 막기 위해 층마다 90㎝ 높이로 설치돼 있어야 할 안전난간은 20층 높이
의 건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작업인부들은 공사용 승강기를 타고 난간이 없는 건물을 바쁘게 오갔다.

올들어 건설현장의 안전사고에 의한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다.

최근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9월 현재 건설현장 사망자는 542명으
로, 지난해(445명)와 2001년(419명) 같은 기간보다 각각 22%, 29%나 늘었다.

사망자를 포함한 재해자(1만6461명) 수도 지난해(1만4035명)와 2001년(1만1293
명)보다 17%와 46%씩 늘었다.

전국건설산업노조 등은 이런 추세라면 올해 사망자가 800명에 이를 것으로 내
다보고 있다.

당국의 근로감독 등을 피하기 위해 산업재해로 처리하지 않는 사고도 적지 않
아,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건설현장의 사상자 증가에 대해 건설노조 백석근 부위원장은 “올해는 유
난히 비가 많아 제때 공사를 못한 건설주들이 공사기일을 맞추려고 서두르다
보니 재해율과 사망률이 높아졌다”며 “비가 올 때도 공사를 강행해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5년째 공사장에서 일해온 김아무개(37)씨는 “비가 그친 뒤 가을께부터 현장정
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밀렸던 공사를 재촉하면서 어디서 사고가 날지 아슬
아슬한 순간이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작업인부 정아무개(47)씨는 “공사장 철골 해체작업을 할 때는 안전벨트
를 매고 철골을 옮겨야 하는데, 작업시간이 늦어진다고 현장 감독이 싫어한
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한 비숙련 인부들이 공사현장에 대거 투입되는 것도 사
고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산업안전관리사 이아무개(29)씨는 “전문성과 언어소통 능력이 떨어지지만 인
건비가 싼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쓰면서 사고가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소업체의 경우 안전관리비로 10억원을 책정할 때 실제로 3억~4억
원 정도만 쓸 것”며 “안전망 등을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재촉하다보니 사고
가 늘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석근 건설노조 위원장도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쓰여야 할 산업안전관리
비가 현장에서는 눈먼 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공사비 50억원 미만의 중소 사업장에서 사고가
잦다”며 “기동점검 등 감독과 단속을 강화하고, 입찰 등에 불이익을 줄 계획
이다”고 말했다.

이지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재해많은 현장 안전관리비 유용
37% 인건비 쓰거나 기준 어겨 재해율이 높은 건설현장은 안전관리에 쓰도록
돼 있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지난 10월 한달 동안 사망사고 등 재해율이 높은 안전관리 취약 건설
현장 686곳을 뽑아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사용 위반 여부를 점검해 253곳
(36.9%)을 적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공사종류에 따라 일정금액(재료비와 노무비 합계액의
0.94~3.18%)을 별도로 예산에 편성해 추락방지막 설치 등 건설 노동자의 안전
보건관리에만 사용하도록 한 제도다.

위반사례 가운데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인건비 등 다른 용도로 전용한 경우가
233건(76.4%)으로 가장 많았고 예산편성 기준 위반 42건(14.4%), 공사진척별
사용기준 미준수 14건(4.8%), 기술지도 미실시 2건(0.7%) 등이 뒤를 이었다.

노동부는 위반 사업장에 과태료 부과(최고 1천만원) 101건, 시정지시 191건의
행정조처를 하는 한편,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사용
하지 않은 금액은 해당 발주처에 통보해 환수하도록 할 계획이다.(한겨
레/200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