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졸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통영 김형준씨 ‘과로사’ 논란… 한진중 건설부문 비정규직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윤성효(cjnews) 기자
▲ 고 김형준씨.
ⓒ2003 오마이뉴스 윤성효
대졸자의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대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던 한 대졸자가 1년 가까이 정해진 시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다 끝내 사망까지 이르러 안타까움을 주고있다.
유가족들은 “낮은 임금을 주면서도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해주겠다는 회사측의 말을 믿고 따랐던 결과”라며 “대기업이 대졸자들의 취업이 어렵다는 사실을 악용했다”고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측은 ‘노동력 착취’나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오전 7시경 한진중 건설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김형준(27)씨가 집에서 사망했다. 이날 새벽 6시30분 경 가족들이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아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김씨는 7시5분경 사망진단이 내려졌다. 김씨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알 수 없으나 사망진단서상의 ‘선행원인’은 ‘청장년 돌연사 증후군’으로 나와있다.
김씨의 시신은 24일 저녁까지 통영적십자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다. 그는 올해 2월 부산 동의대를 졸업했으며, 부모와 함께 2남 중 차남으로 통영 집에서 기거해 왔다.
김씨의 직장은 한진중 건설부문에서 짓고 있는 ‘통영한진 그랑빌아파트’ 공사 현장이었다. 그는 이 곳에서 올해 1월부터 산업안전기사 보조로 일해 왔다. 그는 건축기사와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 현장에서는 건축기사와 관련한 일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김씨가 과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의 근로계약서에 보면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루 12시간 현장에서 일한다는 조건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6시50분까지 현장에 출근했다. 그리고 저녁에도 초창기에는 밤 8~9시에 퇴근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많아졌고 3~4개월 전부터는 밤 10~12시에 퇴근하는 날이 잦았다는 것이 유족측의 주장이다. 김씨는 낮에 정해진 근무가 끝나면 밤에는 일지 정리와 함께 다음날 공사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 날이면 밤 12시까지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틀 동안 밤을 꼬박 세워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유가족들은 설명했다. 여기에다 직원 회식도 1주일에 한 차례 정도 있었다는 것. 그가 죽기 사흘 전부터 밤 12시 경 퇴근을 했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 김형준씨의 빈소에서 유가족들이 흐느끼고 있는 모습.
ⓒ2003 오마이뉴스 윤성효
“정식 사원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
김씨가 사망한 전날 저녁에도 회식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전날 저녁 부친과 전화 통화에서 “회식하고 있으니 곧 들어가겠다”고 했으며, 이날 저녁 여자친구와 두차례 전화통화를 했을 때도 “술 많이 먹지 않고 바로 들어갈께”라고 말했다. 김씨는 밤 12시경 집에 들어와 잤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의 삼촌인 김인철(49)씨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는데, 회사에 들어간 뒤 점점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부모들이 억지로 깨워서 회사에 출근시킬 정도였다”면서 “놀다가 집에 늦게 온 것이 아니라 늦게까지 일을 했던 것”이라 말했다.
김인철씨는 자신의 소개로 조카가 취직을 해서 더 마음이 아프다며 “정식 직원이 아니다 보니 상사들이 열심히 하면 채용을 해주겠다고 했다”며 “지난 9월에 공개채용이 있었는데 탈락됐다”고 말했다. 그는 “조카는 지난 9월, 일도 많고 임금도 낮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직속 상관한테 했다고 한 적이 있었다”면서 “그 때 직속상관이 12월 공채가 다시 있으니 그때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형 남길(33)씨는 “아파트 경비원과 주변 사람들은 동생이 얼마나 착실하게 회사에 다녔는지를 알 것”이라며 “우리는 과로사라 주장해도 회사 사람들은 서로 말을 맞추어 서류를 끼워맞춰 놓으면 반박할 자료도 없고 해서 막막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회사측에서 과로사를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로 신청해 인정받기를 원하고, 노동시간을 어겼기에 회사측의 보상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진중 “과로사 아니다” 입장
한진중 회사측은 김씨의 사망에 대해 ‘노동력 착취’나 ‘과로사’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진중 건설부문 홍보실 관계자는 “법적으로 회사측에서 잘못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사망했기에 유족측에 대한 적절한 보상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영 그랑빌아파트 현장 관계자는 하루 12시간 근로계약에 대해 유족과 다르게 해석했다. 그는 “12시간이라 되어 있지만, 오전과 오후 중식 각각 30분과 점심 1시간을 빼면 10시간이며, 그 중에도 2시간은 잔업근무시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밤 근무에 대해 “야근을 할 때가 있지만 매일 하지는 않았고, 요즘은 오후 5시가 되면 어두워지기에 더 작업을 할 수도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비정규직으로 있다보니 정규직이 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등 회사 일 외에 공부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김씨가 학원에 다닌 적은 없고, 오직 회사 일만 했다”고 반박했다.
회사 관계자는 “유족들이 산재로 처리해 달라고 해서 근로복지공단에 신청을 해놓았다”고 말했다.
2003/11/24 오후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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