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규제완화 평가 토론회
“규제완화는 위험국가로 진입하는 지름길”
안전보건 전문가도 규제강화 ‘한 목소리’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001년 한해에만 8조2천억원으로 100억짜리 공장 820개를 지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고, 이는 국민총생산액의 약 2%에 달한다. 이러한 경제적 손실액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총 화재사고에 의한 피해액(‘98년 1,597억)의 52배, 교통사고에 의한 피해액(’97년 5,164억)의 약 16배에 달한다.”
“산업재해통계 집계가 시작된 1964년 이후 2001년까지 총 산업재해자수는 332만 명으로 대구광역시 전체인구 약 250만 명보다 많다.”
이는 지난 2월 산업안전보건 정책분야 공청회에서 나온 말로,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정부는 경기침체, 경제적 위기를 내세우며 지난 97년부터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꾸준히 규제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 참여정부 또한 앞으로 더욱 강력한 규제개혁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13일 노무현 대통령인 직접 주재한 ‘규제개혁국정과제회의’에서 규제총량 제한 등 규제완화를 뼈대로 한 규제개혁 추진계획이 발표됐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을 놓고 25일 열린 ‘안전보건규제완화 이후 산재예방활동 평가 및 향후 정책방향’ 토론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안전보건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규제완화가 산업재해를 증가시켰다는 통계자료도 공개됐다. 또한 국내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이 ‘산업안전보건’ 분야는 규제완화보다 규제강화정책에 의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설문조사도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재해증가의 주요 요인 규제완화”
지난 97년 정부는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특조법)’을 통해 △프레스?리프트 정기검사 폐지 △제조업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출의무 폐지 △안전관리자 선임의무 완화 △보건관리자 선임의무 완화 및 산업보건의 선임 폐지 △안전?보건관리자 직무교육 폐지 등 사업주의 5가지 주요 의무사항을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 또는 완화 시켰다. 또 98년 규제개혁위원회가 출범한 뒤 공정안전보고서 5년 주기 재작성 폐지 등 산업안전보건 규제완화(29건 폐지, 49건 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프레스 정기검사 제도 폐지 이후, 프레스에 의한 재해건수가 연간 약 1,900여건으로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 또한 정기검사 대상 6개 기계,기구 중 프레스로 인한 재해의 점유율이 약 85%로 가장 높았으며 재해의 약 22%가 사망 또는 신체장애자가 됐다. 특히 프레스는 대기업의 위험작업 기피로 대부분(전체의 68%)이 자체적인 안전관리 능력이 없는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사용되고 있어 재해발생 위험이 매우 큰 실정이다.
더구나 프레스공은 대표적인 3D직종으로서 98년 이후 대부분 외국인노동자로 대체돼, 불법취업 이주노동자가 산재신고를 기피하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재해자수는 연간 약 4,4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성대 박두용 교수는 “협착 등 재래형 재해가 일어나는 프레스와 60~70%가 사망재해 등 대형사고발생 위험도가 높은 리프트에 대해서는 사용과정에서 지속적인 안전성 확보가 돼야 한다”며 “정기검사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3년, 독일 3개월~1년, 영국은 6개월마다 정기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또 97년 특조법에 의해 건설업만 남기고 제조업(10개)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출의무가 면제된 것과 관련, 계획서 제출사업장과 미제출 사업장의 재해율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미제출 사업장의 재해율이 2배 가량 높았다. 지난 98년, 99년, 2000년 한국산업안전공단 통계에 따르면 계획서 미제출 사업장 재해율이 1.437, 제출 사업장은 0.771로 나타났다.
이 밖에 지난 89년 이후 국내 석유화학공장 등에서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초래하는 대형사고가 빈발해 마련된 공정안전보고서 5년 주기 재작성 제도가 99년부터 폐지되면서 대상 사업장의 재해가 꾸준히 증가했다. 이는 제도완화로 사업주 및 노동자에게 공정안전보고서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인식을 줘 이를 이행해야 하는 분위기가 침체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공정안전보고서 재작성 의무가 없어진 사업장에서 잇따라 대형 폭발사고가 잇따랐다. 호성케맥스(주)는 지난 2000년 반응기가 폭발해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다쳤으며, 한화석유화학(주)에서는 지난 2001년 9월 황산탱크가 폭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두용 교수는 “산재사망률이 높고 사망재해자수가 많은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이를 감소시킬 적절한 사회적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결국 어떤 식으로든 국가 개입, 즉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84.7% 규제강화 필요
이날 토론회에서 가톨릭대 산업보건대학원 정혜선 교수는 산업안전보건 규제완화에 대한 정책분석의 일환으로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 규제 완화에 관한 전문가 의견조사’ 실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산업안전, 산업보건, 산업안전보건행정 분야에 종사하는 산업안전보건 분야 전문가 6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이 분야 근무경력 10년 이상인 경우가 62%였다. 설문조사는 지난해 실시됐으나 이번 토론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향후 산업안전보건규제완화 정책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85.7%인 50명이 ‘안전보건분야는 규제완화보다는 규제강화정책에 의해 추진되어야 한다’고 답했으며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는 대답은 한 명도 없었다.
이 밖에 ‘정부의 규제완화가 산업안전보건사업에 미친 영향’을 묻는 물음에 ‘산재나 직업병자의 발생이 더 많아졌다(매우 그렇다 42.4%, 조금 그렇다 39%)’, ‘사업장의 안전보건조직체계가 불안정해졌다’(매우 그렇다 61%, 조금 그렇다 30.5%), ‘규제완화로 인해 전반적인 산업안전, 보건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졌다’(매우 그렇다 65%, 조금 그렇다 26.7%), ‘규제완화로 회사 수익이 더 증가했다’(전혀 아니다 43.3%, 조금 아니다 15%) 등의 답변이 나왔다. 또 전문가의 55.9%는 ‘안전보건관리에 관한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와 시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대 정혜선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많은 규제완화 정책은 그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정책이 시행됐기 때문에 궁극적인 목적인 비용절감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의 부분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기업들은 교육비와 검사비의 단순절약보다 이로 인해 파생된 부가적 비용이 실질적으로 더 큰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특히 기업에게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에서 진정으로 기업에게 실질적인 재정적 이득을 줄 수 있는 규정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매일노동뉴스 2003.11.26 09:3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