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일자리’ 희망은 있나
“시장에서 창출된 부, 사회적 일자리로 흘러야”

취약계층 취업촉진 및 수익성 낮은 공공사업 동시 추진

지금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말이 아니다. 청년층 실업률은 10월 현재 7.3%(35만6,000명)로 3개월 만에 다시 7%대에 올라섰다. 이는 전체 평균 실업률(3.3%)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30~40만명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기형적 삶을 살고 있다. 비단 청년실업만 문제가 아니다. 경기둔화로 인해 중고령자, 여성, 장애인, 장기실업자 등의 취업취약계층 역시 고용불안과 실업의 고통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일자리의 총량이 주는 것과 더불어 제공되는 일자리의 질 역시 떨어져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사회적 일자리’라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방안이 제시됐다. 정부가 고령자, 여성 등 취업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 그러나 현재 ‘사회적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꽤나 신중하다. 적극적 고용창출정책이란 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단기적 실업대책에 머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회적 일자리, 과연 희망은 있나.

* 사회적 일자리 왜 나왔나
‘사회적 일자리’는 처음 지난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처음 선보였다. 노동부는 이를 통해 ‘삶의 질 향상과 고용증대’ 차원에서 여성, 중고령자의 고용확대를 위해 “복지, 환경, 문화 등의 분야에서 사회적 일자리를 매년 5~10만개 창출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를 위해 우선 간병, 보육지원, 영세민 집수리 등 효과성 높은 공공근로사업을 지속적인 일자리로 전환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여성, 노인 등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국정과제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으며, 청와대 ‘빈부격차 완화와 차별시정 T/F팀’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에 노동부는 지난 6월 추경예산에서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당초 299억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회는 73억원으로 줄이고 ‘시범사업’이란 과도기를 두는 방식으로 신중하게 통과시켰다. 당시 적지 않은 환경노동위 위원들은 사회적 일자리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며, 기존의 공공근로사업이나 자활사업과의 중복 우려, 단기적 실업대책으로 성급한 추진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적 일자리 의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으로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취업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 고용창출 정책이란 측면에서 유의미하다는 점에서 국회도 동의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계,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공공근로사업과는 달리 민간과 공공부문 사이의 제3섹터에서 자활이 가능한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유럽에서는 이미 제3섹터에서의 사회적 일자리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으로, 우리나라에서 지속가능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실험에 머무는 것이 아닌,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과제라고 적극 제기하고 있다.

* 공공근로와 어떻게 다른가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일자리는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특히 IMF 구제금융 이후 공공근로사업, 자활사업과 비교할 때 차이점이 무엇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사회적 일자리, 자활사업, 공공근로는 빈곤계층 및 취업취약계층 등에 대한 지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지원대상, 사업성격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공공근로는 고실업 시기에 추진하던 한시적 실업대책 사업으로, 사실상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단기적 소득보조사업’의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다. 자활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조건부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2001년 민간위탁 사업으로 시행되던 공공근로 사업이 자활근로사업으로 전환되면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일자리는 실업률이 안정화 추세임에도 정규노동시장 취업이 어려운 빈곤, 취업취약계층에서 공공서비스 분야에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이라는 것. 정의를 내리자면,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 때문에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일자리. 더 나아가자면, 수익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제3섹터형 사회적 기업에 의해 창출되는 일자리도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동안 생산적이고 공공성이 높은 공공근로사업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일자리와 유사한 경우가 많았다고 인정한다. 노동부는 “그러나 참여기간이 짧고 지자체의 직접 시행 등의 문제로 사회적 일자리로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사회적 일자리로 볼 수 있는 공공근로를 전환해 민간부문(또는 제3섹터)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 사회적 일자리 추진 현황
일단 하반기 들어 사회적 일자리 사업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27일 노동부에 따르면 사회적 일자리 사업 신청 단체는 542개, 신청인원은 4,480명으로 당초 계획보다 2배 이상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 8개 시도에서, 모두 428곳 2,372명(중도탈락자 예상해서 372명 더 선정)을 우선 선정했으며, 10월말 현재 대상자 1,856명(92.7%)을 선발한 상태다.
이번에 선정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은 △노동 △안전 △사회복지 △복지 △문화, 관광, 교육사업 △환경 △체육 △기타 등 모두 8개 분야에서 외국인노동자상담 및 한글교육, 방과 후 공부방 운영, 학교도서관 지원사업, 지역문화홍보단, 환경모니터링, 산재환자 도우미, 택배(퀵서비스), 독거노인에 가정도우미 파견, 가정폭력피해자 돕기 등을 다양하다. 정부는 이 가운데 무엇보다 IT 기획업무 등이 포함된 지역문화홍보단 등 청년층에 적합한 사업도 포함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범사업은 올해 안에 사업을 개시하면 되는데, 앞으로 6개월간 사회적 일자리 참여 대상자에게 월 60만원씩 지급된다.
이와 함께 국회 환경노동위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사회적 일자리 사업과 관련, 당초 노동부의 3,000명 대상 242억원 책정 요구에 대해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를 해본 후 추후 늘려가는 것이 적당하다’며 55억원 감액한 187억원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이는 예산결산위에서 더 깎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예결위에서는 대상자를 2,000명으로 줄일 것을 뼈대로 한 전문위원 검토의견이 나온 상태다.

* 인건비 외 사업비, 보험료 등 지원 없어
그러나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하려는 단체들의 고민은 지원금이 지나치게 적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참가 대상자들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 60만원으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특히 정부 지원대상에는 인건비만 포함될 뿐 사업비나 4대 사회보험료가 따로 책정되지 않아 시민단체가 직접 부담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솔직히 60만원으로는 사회적 일자리 참여자들이 생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의 사업비, 4대 사회보험료 지원 등 제도적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국회 환노위는 내년도 예산안에 4대 사회보험료를 반영하기로 하면서, 이번 정기국회 최종 예산안 통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실업극복국민재단(재단?이사장 강원용 목사, 구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활동이 눈에 띈다. 재단은 정부가 사회적 일자리로 선정한 단체에 대해 인건비 외 사업비 일부와 4대 사회보험료 등을 지원하는데, 이미 정부가 선정한 단체 428곳 중 28곳에 대해 1억6,000만원을 지원했다. 이들 단체에서 제시한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단 이은애 사업지원팀장은 “더 많은 단체로 확대하고 싶었지만 재원의 한계 때문에 많이 지원하지 못했다”며 “재단 내 사업심사위를 구성해 주요한 사업에 대해 엄격히 심사한 뒤 지원단체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 ‘사회적 기업’ 정착을 위해
이와 함께 재단은 일상적 사업으로 ‘사회적 기업’ 지원사업을 할 예정이다. 사회적 일자리는 단기적으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기 전 단계의 ‘경과 시장’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용흡수력이 떨어지는 산업구조 하에서 ‘사회적 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고용창출사업으로 정착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인 앙비(Envy, 재활용기업)는 직원 580명 중 430명(74.1%)을 실직빈곤계층으로 채용하고 있다. 즉, 사회적 기업은 실직, 빈곤계층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익적’ 기업으로, 구성원 중심의 공동 소유이자 공적 자금 또는 사회적 소유형태를 갖고, 참여주체의 공동배분, 새로운 고용창출은 물론 사회적 이익을 내는 분야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단은 사회적 기업 설립 제안서를 받아 친환경적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안정적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모두 4곳을 선정했고, 내년에 총 4억6,8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들 사업체는 청소, 폐컴퓨터 재활용, 음식물 재활용, 산림관리(영림) 업종 등으로, 재단은 이들의 사회적 기업으로의 성공을 위해 경영지원, 유사사업 수행 단체들과의 연대구축 등을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전국실업극복연대회의, 지역사회시니어클럽협회, 부스러기사랑나눔회,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한국YMCA전국연맹, 실업극복국민재단함께일하는사회, 사회연대은행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사회적 일자리 네트워크 모임’도 구성해 향후 역할에 대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바람직한 사회적 일자리란
그러나 아직 사회적 일자리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가 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시각차는 아직 큰 편이다. 환노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마땅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너무 성급하게 추진된다는 우려가 있다”며 “특히 시민단체의 국가 의존도를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아닌 기존의 시민단체 사업을 대체하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적극적 고용창출이란 긍정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 시민단체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 한 관계자는 “규모는 작지만 산재노동자들이 다달이 급여를 받고 또 같은 처지의 산재환자를 도울 수 있다는 입장에서 만족도와 성취도가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집행하는데 있어 정부의 준비가 덜 돼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노동부가 실업률을 낮추려는 데 서두른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인건비만 지원하며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 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적 일자리가 되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정부차원의 지원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단 오상석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일자리가 논의된 지는 꽤 되지만 사회에서의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지금 시기는 사회적 일자리의 유효성 논란보다는 정부의 지원확대를 비롯해 이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노동계 역시 단기적 실업대책으로의 접근은 경계하면서도 사회적 일자리의 방향에 대해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 이수봉 소장은 “정부의 실업대책은 경기가 좋아지면 해결된다는 식의 단기적 실업관리 차원에서 나온 듯 하다”며 “그러나 시장에서 창출된 부가 자연스레 공적인 일자리로 흘러올 수 있도록 새로운 영역을 확충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늦어도 내년 1월까지 평가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대한 첫 평가, 뚜껑을 열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당초 목표대로 빈곤과 실업탈출이라는 실효성 있는 전망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연윤정 기자(yon@labornews.co.kr)

ⓒ매일노동뉴스 2003.11.28 10:2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