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기사, ‘본질’은 간데 없고
[언론테러 보고서9]비정규직 사망산재 급증 원인진단 쏙 빼
노동과세계 제268호 이정호
철도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에 조선일보만이 유일하게 응답했다. 12월2일치 조선일보 사회면에는 선로작업 나가던 아르바이트 대학생 등 2명이 노량진역 인근 철로에서 달려오던 무궁화호 열차에 치여 숨졌다고 큼직한 기사가 실렸다. 다른 신문들은 대부분 침묵했다.
조선일보 화이팅인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조선은 이 가난한 대학생이 일당 6만원을 벌기 위해 자정부터 새벽까지 일하다가 참변을 당한 가슴아픈 사연을 사회면에 주요기사로 보도했지만 이 사고의 본질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철도사고의 본질은 ‘민영화의 신화’에 빠진 정부와 철도청이 인건비를 줄인다는 미명하에 무리한 외주용역을 늘인 데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사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MBC KBS 등 방송사도 이 사고를 보도했지만 사건기사로 처리하고 말았다.
철도노조는 올해 사망한 철도노동자 25명중 외주, 용역, 하청노동자가 11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날 사고도 열차가 다니지 않는 새벽 1시 이후에 작업해야 하지만 작업량을 늘이려 한시간 일찍 선로에 들어서는 바람에 일어났다. 인력 하청회사들이 인건비를 따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 철도청이 인건비를 줄이려 현장 작업조건이나 특성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마구 채용하는 바람에 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외주용역 노동자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신태인역 사고 역시 작업시간이 아닌데도 인건비가 아까워 무리하게 작업시간을 늘이려다 발생했다.
언제까지 생명을 담보로 한 곡예를 계속할 것인가. 경영혁신 대상 2년 연속 수상의 환호 뒤에는 마구잡이식 비정규직 채용과 엄청난 사망사고가 숨어 있다. 지난 여름에는 파업 책임을 물어 기관사를 무더기로 징계한 뒤 명퇴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바람에 입사 나흘된 60대 노동자가 현장상황에 익숙지 않아 선로이탈 사고를 낸 적도 있었다.
철도노동자는 2001년 35명, 지난해 27명, 올해는 지금까지 25명이 철길에 사자밥을 깔아야 했다.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언론은 없다. 어떤 언론도 이 죽음의 행렬에 주목하지 않는다. 다만 강남구 대치동 7억9천만원 짜리 아파트 재산세가 12만원 하다가 92만원으로 올랐다고 거품 무는 언론만 널려있다. 이 아파트를 월세주면 한달에 최소 100만원은 나온다. 한달 월세도 안 되는 돈을 1년에 고작 한번 내게 된 부자들의 ‘가슴아픈’ 사연은 4일치 한겨레신문에도 ‘강남 재산세 최고 7배 인상’이란 제목과 함께 1면 머리를 장식했다.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