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 운동을 향한 쓴소리
[주장]누구를 위한 ‘아침형 인간’으로의 개조인가?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헌식(codess) 기자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하루를 지배 하고, 하루를 지배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아침에 깨어 있었던 사람들임이 입증되었다.”- 사이쇼 히로시, 가운데
꼭 이런 식이다. 아침을 지배하면 하루를 지배하고 그런 사람이 인생을 지배하는데 이는 곧 성공을 의미한다는 식 말이다. ‘아침형 인간으로의 변화만이 근본적으로 나를 바꾸고 나의 미래와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다’와 같은 말 한마디로 이 책은 많은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는 여유가 있는 셈이니 말이다. 사람의 두뇌가 가장 명석한 시간은 오전 6시부터 8시까지인데 집중력이나 판단력이 낮 시간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니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8시를 두뇌를 쓰는 사람과 오전 8시쯤 일어나는 사람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침형 인간’은 다시금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아침형 인간=성공’이라는 도식은 장밋빛 거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단지 체질적으로 아침이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암묵적인 강요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신체적인 요인에 따른 지적은 아니다.
요즈음 기업체들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아침형 인간을 권장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 이유야 겉으로는 각 사원들의 개인적인 행복을 위한 취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의도가 다분하다. 다음 기사를 한 번 살펴보자.
이처럼 CEO들이 앞다퉈 ‘아침형 인간’을 선물하고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대부분 ‘남보다 일찍 일어나 빨리 출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인 사이쇼 히로시가 쓴 이 책은 출간 석달만에 30만부 이상 팔렸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상무는 “이 책은 경기 침체로 위기의식이 높은 요즘 CEO가 직원에게 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일찍 깨어 세계정보도 빨리 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내놓으라’는 주문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경향신문, 2004년, 1월 6일자 CEO들 “아침형 인간이 돼라”
초기 ‘아침형 인간’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CEO들이다. 이들은 자신과 관련된 기업이나 조직에 자신들이 직접 사서 전 직원에게 선물하는 등의 열성을 보여 왔다. 한번 베스트셀러가 되면 사회적인 트렌드로 굳어지는 한국 현실에서 아침형 인간은 이러한 기업의 경영자들의 열성에 힘입었다.
그러니 사원이나 일반 노동자들은 어떻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지만 일찍 일어날 수 없는 사회적 요인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는 않는가. 우선 ‘아침형 인간’ 붐의 장본인인 히로시는 다음과 같이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해도 지나친 취미 생활은 억제한다. 밤 9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다. 밤 9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말고 가벼운 목욕과 독서를 한다. 저녁 술자리는 피한다. 불가피한 술자리는 1차만 참석한다. 수면 시간은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를 기준으로 삼는다….”
저녁에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노동자나 사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밤 9시 이전에 여유롭게 들어가 쉴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일찍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독서를 즐기는 여유를 가진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발 우리도 그러고 싶다”고. 그러나 업무와 접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아침형 인간’으로 새로 태어나기는 너무나 힘들다. 잔업과 야간 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일찍 자게 할 수 있어야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 아닌가. 다음과 같은 반응은 오히려 약하다.
그러나 직원 입장에서는 이같은 CEO의 생각을 100%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책을 선물 받은 한 회사 직원은 “사장이 아침형 인간을 강조하는 바람에 최근 출근 시간을 앞당겼다”면서 “자극을 받아 좋긴 하지만 은근히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경향신문, 2004년, 1월 6일자 CEO들 “아침형 인간이 돼라”
‘아침형 인간’은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소수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이미 밤 시간을 타의에 빼앗기고 있는 이들에게 ‘아침형’이란 자체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고, 자신을 소외시키는 외부의 잣대일 뿐이다.
이러한 점을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하고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렇게 아침형 인간이 되어서 성공하라고 독려했는데 그것도 못하다니 그러니까 맨날 그 모양인거야’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럼에도 이러한 책들이 잘 팔려나가는 것은 살기가 그만큼 팍팍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대로 인생이 팍팍하게 굴러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이를 간과한 채 기업주와 경영자들, 일부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이들이 주장하고 의도하는 생산성 향상 차원의 장려는 사람들의 생활을 더 팍팍하게 하고 우울하게 할 뿐이다. 생산성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는 사람,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기업 경영자들이 그렇게 성토할 만큼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게으름뱅이들이란 말인가. 얼마를 더 우려먹을 것인가, 환상의 주입을 통해서 말이다. 설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얼마나 아침형 인간과 관련한 덕담 아닌 환상의 덕담, 선물 아닌 환상적인 선물이 있을까 자못 기대된다.
나도 ‘잘’ 나갈 수 있다는 믿음! 어제를 정리 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연말연시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환상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인생을 두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적어도 로또 복권보다는 유용한 팬터지 도서다.
– 정이현, 아침형 인간 붐의 희망찾기, 문화일보, 2004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