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사 정신질환에 근본대책 마련 시급
지난해 8월 서울 도시철도공사의 두 기관사가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근무를 마친 저녁 시간에 선로를 걷다가 열차에 치여 숨졌고, 다른 한명은 고향인 여수의 돌산대교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두 기관사의 공통점은 앞길이 창창한 35세의 젊은 나이에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
단순 사고와 자살로 치부될 뻔했던 이들 두 기관사의 죽음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기관사 A씨가 최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승인을 받으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A씨의 산재인정과 두 기관사의 죽음에는 시간적으로 5개월여의 차이가 나지만 정신질환이라는 공통적인 요소가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회사 기관사들은 최근 지하철 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자살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기관사의 정신질환은 단지 `그들만의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입을 모으고 있다.
기관사들은 `언제, 어느때’ 사람이 불쑥 선로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자살 공포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이미 사상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들은 악몽에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것이 지하철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기관사 김모씨는 9일 “끝없는 지하터널을 맴돌거나, 전동차를 몰고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며 “요즘에는 전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지뢰밭에 혼자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불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또 다른 기관사 이모씨도 “가도가도 역이 나오지 않아 어두운 터널만 계속되거나, 갑자기 운전실 앞으로 사람이 달려드는 악몽을 꾸고 있다”며 “기관사가 된 것을 요즘처럼 후회 해본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이 회사 기관사 145명 가운데 19명(16.4%)이 사상사고를 겪었으며, 그중 11명은 2회 이상의 중복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 기관사 중 105명이 불면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9명은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나 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흥준 지하철공사노조 승무본부장은 “기관사들은 새벽 1시까지 막차를 운행한 뒤 역에서 2∼3시간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첫차를 운행한다”며 “몸이 지친 상태에서 사상사고에대한 두려움까지 겹쳐 기관사들의 심신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라고 말했다.
정 승무본부장은 “특히 기관사 1명이 전동차를 운전하는 `1인 승무’ 체제는 대형사고를 유발하거나 사고 대처에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기관사의 정신질환은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