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중캠페인] 산재사망도 ‘살인’이다
죽음을 부르는 일터
“산재사망도 ‘살인’이다” 본격적인 캠페인에 앞서 3주에 걸쳐 지난 10년 동안 3만명이나 노동현장에서 ‘죽임’을 당한 심각한 산재사망사고의 현실을 고발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본다.
10년, 거꾸로 가는 ‘노동재해’
죽음을 부르는 일터
왜 죽고 사는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가
안전표지판이 있는 건설현장
14일 새벽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두 명의 노동자가 거의 같은 시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명은 조선소 안에서 사내하청노동자로 살면서 극심한 차별대우를 겪다가 분신자살한 고 박일수씨이고 다른 한명은 “수술한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메모를 남기고 자살한 산재요양환자 고 유석상씨다.
이들은 하청과 원청,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다른 위치에 있지만 더 이상 참고 살아 일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사실 현대중공업이라는 공장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그동안 한 해에 10여 명이 넘게 죽어나갔다. 작업 중에 폭발로 죽고, 떨어져 죽고, 눌려 죽고, 깔려 죽는 노동자들이 한 공장에서만 10명이 넘는다는 말이다. 비단 조선소뿐이 아니다.
건설현장에서는 2002년 한 해 동안 667명이 죽었으니 매일 2명씩 공사판에서 죽어나간 셈이다. 죽음이 방치되는 일터, 이제는 너무 아파서 다시 일해야 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터, 그 ‘죽음을 부르는 일터’를 둘러봤다.
“안전하게, 그러나 빠르게”
16일은 대구지하철 참사 1주기다. 그런데 하루 앞선 15일 새벽 1시경. 신태인과 김제구간에서 침목 교체 작업을 하던 용역노동자들이 무궁화 열차에 치여 7명이 죽고, 1명이 다치는 철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큰 사고가 났다.
사고원인은 열차가 진입한 것을 모르고 노동자들이 작업을 했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성과급으로 급여를 받는 외주 용역노동자들의 작업환경 때문이었다.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무리한 새벽준비 작업을 관행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고 안전점검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3일에 찾아간 대표적인 도급일용노동자, 그것도 다단계 하도급일용노동자들이 일하는 경기도의 P업체 ㅅ아파트 건설현장. 경기서부지역건설노조와 원청업체인 P산업이 일용건설노동자들에게 공사장 간이식당에서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직전인 오전 11시부터 약 1시간동안 가진 교육에서 회사 안전관리자는 “해빙기에 통로작업이 위험하니 조심하라”, “기름 탱크에 남은 발화물질을 잘 처리하라”는 등의 주의사항을 주시하면서 “몇 달 남지 않는 공기동안 감기에도 걸리지 않도록 안전과 건강에 유의해 무사히 공사를 마치자”고 독려하며 끝났다.
뒤쪽에서 비교적 경청하고 있는 듯이 보였던 한 일용노동자에게 교육이 도움이 되는지를 물었다. “이렇게 어수선한데 들리기나 하나요? 마이크를 설치하든지 휴대용 확성기라도 써야지. 연단이라도 있던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잖아요” 그러고 보니 뒤쪽은 모두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모두 점심시간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인근 다른 현장으로 갔다. 이곳은 점심시간 직후인 오후 1시경부터 200여명의 일용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불과 몇 분 되지 않아 교육을 받고 있던 일용노동자를 오야지 정도로 보이는 한 노동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작업장으로 다시 데리고 간다.
“오야지들은 맡은 공사를 빨리 끝내고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야 돈이 된다. 교육시간도 아까운 거다. 교육시간 도중에 자신이 부리는 일용노동자들을 데려가는 일은 흔한 일이다.” 경기서부지역건설노조 김재욱 현장사업팀장 말이다.
다음날인 14일 고 박일수씨의 분신소식을 듣고 서둘러 내려간 울산현대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현대중 정규직노동자 김영균씨. 그는 해가 바뀐 지 채 2달도 못 되어 현대중에서 6명의 노동자가 죽은 사실에 대해 바로 ‘안전하게, 그러나 빠르게’라는 회사 쪽의 논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93년부터 현대중은 2~3명이 하던 팀 작업을 1명이 감당하도록 하는 ‘다기능화’ 생산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조립공과 용접공이 ‘2인 1조’가 되어 일하던 것을 단 1명이 용접과 조립을 몽땅 담당하는 것이다. 이 작업시스템의 특징은 순전히 개인의 작업 속도에 따라 일이 쌓이기도 하고 여유도 있게 된다는 것. 그런데 시설이 자동화됨에 따라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처럼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조선소는 이렇게 다기능화된 노동자들의 작업속도를 점점 빠르게 했다.
“그 노동강도는 밖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다.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작업시스템을 따라가려면 안전점검을 하거나 안전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할 수가 없다. 아무리 위험해도 수십 미터 수직 사다리를 한 손에 망치를 들고 올라가야 하고 거추장스런 안전밸트를 안 매야 한다.”
이처럼 건설현장은 무질서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만연해 원청업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하청 단종업체나 오야지들이 일용노동자들을 재촉해 공기를 단축하려고 애가 닳아있다. 조선소는 철저하게 통제된 노동환경에서 자동화와 다기능화라는 명목으로 수주물량을 늘리고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회사가 주지시키는 안전교육은 사실상 눈코 뜰 새 없는 현장에서는 전혀 적용될 수가 없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사업주구속요구집회
기업들, 성장과 안전을 맞바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안전담당자들은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을 해당노동자들의 부주의로 돌린다. 지난달 13일 현대중공업에서 한 직영노동자가 식수탱크를 열다가 내부 압력에 못이긴 맨홀 뚜껑이 가슴을 강타해 즉사한 사건이 있었다.
해가 바뀌고 4명째 발생한 사망사고였다. 현대중 산업안전담당자 조 아무개씨는 “모든 안전점검을 철두철미하게 하고 있다”며 “다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망사고들은 노동자들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며 작업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데 일일이 다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2003년 한 해 동안 하청노동자 8명을 포함, 모두 10여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서는 “외주업체의 안전점검은 자체 업체에서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까지 원청의 책임을 물으면 곤란하다. 민사상의 원청업체 책임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공장안에서 사고가 났어도 사후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지만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외주업체에 있다는 말이다.
경기도 ㅅ건설업체 박 아무개 산업안전담당자도 “사망사고 등 중대 산재사고의 80%는 작업자의 과실이다. 아침마다 작업 공정팀별로 하루 30분씩 안전교육을 통해 주의를 주지만 똑같은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인 보호장비만 착용해도 막을 수 있는 재해인데 말을 해도 듣지 않는데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울산산재추방연합의 현미향 사무국장 말은 다르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실시해도 기업의 성장논리에 의해 살인적인 노동강도가 지속되는데 안전수칙에 따라 일을 해서는 그 강도와 작업속도를 맞출 수가 없다. 원청의 눈치를 보는 외주업체는 노동자들을 쥐어 짤 수밖에 없고, 여기에 하청노동자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양적 악화는 질적 양화를 잠식한다
지난해 경기도 수원의 다세대 주택 신축공사 현장에 쌓여있던 시멘트더미가 무너지는 바람에 산업재해를 당했던 일용건설노동자 김응식씨는 말한다.
“나 같은 경우도 산재처리를 하기위해 직접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병원으로, 근로복지공단으로 다녔다. 그러나 대부분 노동자들은 며칠씩 일당을 포기해 가면서 오야지가 눈치를 주는 산재를 신청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현대중노조에서 산업안전담당을 했다는 김영균씨는 말한다. “산재신청은 노동자들 스스로도 꺼리고 있다. 직영은 직영대로 하청은 하청대로 공상처리를 원한다. 회사에서는 산재 요양을 하고 복귀한 노동자들에게는 일정기간 잔업과 특근을 주지 않는다.
40대가 넘은 가장이 잔업이나 특근을 안 하면 월급에서 30~40만원이 줄어서 직영이라도 가계에 구멍이 나고 만다. 하청은 더욱 심각하다. 한 번 산재처리를 받은 하청노동자는 조선소 안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거다. 울산에 있는 현대미포조선 등에는 가지도 못하고 멀리 목포나 다른 조선소를 알아봐야 한다. 공상처리를 하거나 심지어 자가치료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업들도 할말은 있다. 건설업체 현장관리자 박 아무개씨는 “산재가 발생하면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도)에서 불이익을 당하는데 당장 산재처리를 하면 기업에서는 돈이 덜 들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공사물량을 수주 못해서 손해가 막심하다.
당연히 산재처리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고 양심적으로 산재처리를 해주는 업체는 특별근로감독을 받는 등 감시가 심해진다. 기업에게도 법을 지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데 기업에게만 산재은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지 않나”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건설현장 산업안전담당자 김 아무개씨는 “지금 건설현장의 산업안전관리비는 대부분 허위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기업이 안전관리비를 유용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안전관리담당자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공기단축을 위한 관리자들의 권한만 강화되어 있을 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안전담당자들은 현장 공기 때만 고용된 비정규직이다. 고용이 불안하니 안전시설이나 교육을 집행할 권한은 더욱 없는 상태다”고 털어놓는다.
즉, 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재보험법을 잘 지키면 오히려 당장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고 있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은 노동자들은 회사의 극심한 노동강도 때문에, 당장의 생계유지에 안전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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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04.02.18 11:5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