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업종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첫 판명
서울지하철 31명…공사, 산재은폐 움직임 논란 가열
지하철 등 궤도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처음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인정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제조업 등에서 발견되던 근골격계 질환이 사무직에 이어 궤도노동자들에게도 나타나 이 질환이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등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근골격계 발생 사업장 경영진이 ‘사업 용역화 검토’, ‘요양 뒤 일자리가 없을 수 있다’ 등의 압력으로 산업재해를 은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지하철노동자 31명 근골격계 질환자 판명
23일 서울지하철노조 차량지부 지축정비지회(지회장 김병현)에 따르면 지하철 차량 정비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 31명이 근골격계 질환자로 판명됐다. 지축정비지회는 지난해 3월부터 근골격계 질환의 심각성을 확인하기 위해 공사 지축차량사무소 정비팀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 및 검진 작업을 벌였다. 조사결과 대상자 293명 중 174명(59.4%)이 근골격계 유소견자(질환자는 아니지만 예방을 위해 주요 관리가 필요한 사람)로 밝혀졌으며 이 가운데 35명은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서 MRI, 초음파, 근전도 검사 등 정밀진단을 실시, 31명이 근골격계 질환자로 판명됐다. 이에 따라 지축정비집회는 지난 16일 근골격계 질환자 31명에 대해 집단 산재요양 신청을 냈으며 근로복지공단은 25일 자문의사협의회를 예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가 서울지하철 역무, 승무, 차량, 기술 등 4개 지부 1만여명 노동자 가운데 300여명만을 대상으로 실시된 만큼, 검진이 확대될 경우 지하철 내 근골격계 질환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한노동세상 조성애 사무국장은 “조사인원에 비해 근골격계 질환자가 많이 나타난 것은 중량물 취급과 부적절한 작업환경과 구조, IMF 이후 1,621명에 달하는 인력감축이 주요한 원인”이라며 “사람이 부족한데 최근 1시간 연장운행 등으로 작업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으로 조속한 시일 안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차량 정비노동자 근골격계 조사에는 노동과학연구소 김철홍 소장, 인천대 인간공학과 백승열 교수, 한림대학교 산업의학과 권영준 교수, 건강한노동세상 조성애 사무국장 등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공사 “객관성 문제 있고, 노사문제 야기” 압력
서울지하철공사는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산재요양 신청과 관련, 지난 19일 노조에 보낸 공문에서 “노조가 일방 조사한 것으로 객관성에 문제가 있고 요양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동 업무의 계속 여부, 부족인력 충당 등 노사 문제가 야기되므로 요양승인 여부에 대한 결정을 보류해 줄 것을 (공단에) 회신했다”고 밝혔다. 공사는 이어 “지축 정비 업무가 근골격계 질환을 집단으로 발생시킨다면 공사는 동 업무를 용역 주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또 31명의 많은 인원이 집단 요양에 들어간다면 빈자리를 부분 용역을 주던지, 비정규직 채용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요양이 끝난 뒤 일자리가 없는 등 노사간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설명 : 서울지하철공사가 노조에 보낸 공문.
이에 대해 해당 노동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축정비지회는 “공공기관인 공사에서 잘못된 작업환경에 대해 문제가 있다면 용역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의가 없는 경우”라며 “힘들고 어려운 일은 비정규직에 떠넘기면 된다는 후안무치한 발상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에서 바라보는 산업안전과 노동자 건강에 대한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지회는 또 “요양 뒤 일자리가 없는 등의 발언은 명백한 공갈협박”이라며 “고용과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면서 아픈 사람을 치료받지 못하게 해 산재를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김소연 기자
ⓒ매일노동뉴스 2004.02.24 10: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