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고 사는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가
언론, 노동자 죽음에 인색
임준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사업주 책임 대폭 강화해야…‘기업살인법’ 제정은 필수
‘전쟁 같은 노동’에 몸서리치며 지내온 세월이 있다. 전시동원 체제를 방불케 했던 70, 80년대. 당시 노동자는 고도성장을 위한 기계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다치고 병들어 효용가치가 떨어진 노동자는 기계에 부품을 갈아 끼우듯 새로운 산업예비군으로 교체되었다. 모두들 산업재해라는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 정도로 생각하였다. 어느 누구도 산업재해로 죽어간 노동자를 기억하지 않았다.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지금은 어떠한가? 지난해 10월 여수화학에서 일하던 이광수씨는 사고가 뻔히 예상되는 데도 생산라인 청소작업에 투입되어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안전요원 한 명 없고, 몸 하나 피할 곳 없는 다리 중간에서 철로보수작업을 하던 철도하청노동자들이 열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도 20층 건물에서 떨어져 죽고, 기계에 눌려 죽고, 유해한 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되어 암에 걸려 죽고 있다. ‘전쟁 같은 노동’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노동자의 죽음에 인색하던 보수언론도 산재로 인한 사망이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노동부 발표에 호들갑을 떨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의 기사는 없다. 오히려 노동자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통념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과거 70, 80년대 군사정권의 주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노동자를 전쟁터의 병사로 비유하면서, 전쟁터에서 발생한 부상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을 금기처럼 여기던 정권과 자본의 폭력성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정권과 자본의 야만성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은 줄어들지 않았고, ‘전쟁 같은 노동’은 이어져왔다.
그런데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이러한 논리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노동운동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성장하였고, 사회권이 확대되면서 인권의 중요성이 중요한 가치 척도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제 산재 문제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덮어버리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10조원이 넘는 사회적 비용도 자본에 부담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본은 보수언론을 통해 정부 주도의 규제 방식은 효과가 없기 때문에 미국과 같이 노사간 자율적 해결 원칙에 근거하여 산재 문제를 해결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발맞추어 여전히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부차적이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희생해야 할 부산물이라는 논리를 새로운 언어를 동원해 전파하고 있다.
* 한국의 자본, 제대로 된 규제 못 받아
원래 서구에서 안전보건 분야의 규제 완화가 제기된 것은 과거의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하였던 안전보건 비용이 점차 자본 쪽에 ‘부담’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규제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또는 시스템을 강제하게 된 조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미국에서조차 계급갈등을 증폭시키고, 복지축소, 빈부격차 심화를 가져왔다는 근본적인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의 자본은 제대로 된 규제를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럼에도 안전보건의 규제가 강해서 정상적인 기업경영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경총과 전경련의 주장은 그동안 형식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실질적인 노동자 보호장치로 만들어 나가려는 노동운동과 노동자건강권운동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점차 증가하는 안전보건에 대한 자본 쪽의 부담을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전보건 문제를 주변부 노동자로 전가하거나 회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접근법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전통적인 사회적 통념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특징적이다. 여전히 산업재해는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희생 또는 부산물이라는 논리가 지배적이고 정부, 사업주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십분 활용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인하여 사망한 노동자가 2,500여명인데, 이 중 언론에서 다루어진 경우는 극히 일부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진보성향이라고 꼽히는 한겨레조차 전체 기사 중 국내 산업재해에 관한 기사가 작년 한 해 동안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산재사망을 다루는 기사의 내용도 대부분 단순 보도이거나 더 나아가 노동자 부주의론이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단순 절도에 관한 가십거리 기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 비정규·여성노동자 제도 사각지대 몰려
따라서 현 우리나라 상황에서 규제완화 담론은 매우 부적절하다. 지금은 규제개혁을 할 시기가 아니라, 한번도 제대로 작동되어본 적이 없는 형식적 법,제도적 장치를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제도적 장치로 만드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희생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예방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발생 자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여부로 평가되었다. 자본에 의해 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험을 노동자가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안전보건 문제를 특정화시켜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것은 일면 타당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산재보험과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사업주에게 책임을 면해주는 면피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우 한계적이다. 중요한 것은 안전보건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안전보건의 책임,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건강상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물론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앞세운 규제개혁을 반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을 개혁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 역시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이행 유무에 맞추어질 경우 구조화된 안전보건의 문제를 끌어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여전히 성장의 논리가 정권의 통치이념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미조직, 비정규, 영세, 여성, 이주노동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이 무용지물인 실정이다.
다른 논리를 떠나 현재 상황은 민?형사상 처벌을 포함하여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 하루에 7~8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감당해야 할 사회적 희생물이라는 시각은 철폐되어야 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 상황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무감각해져버린 것이지 대다수 사람들이 이러한 시각을 용인한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사업주의 천박한 의식수준과 이들을 강제할 사회적 기제의 부재에 있다.
* ‘기업살인법’ 제정은 필수다
현재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문제의식은 매우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안전보건은 문제를 적당히 덮고 다른 수단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사업주에게 문제의 심각성 또는 경각심을 일깨울 뿐 아니라 산재문제를 회피하고선 사업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사업주에게 처벌을 강화하고 재정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첫 단추는 ‘기업살인법’의 제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사고가 날 것이 뻔한 작업장에서 일을 시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동일 작업장에서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하여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고의적인 살인행위로 보아야 한다.
이미 영국, 호주 등 서구에서도 ‘기업살인법’을 제정하여 예방의 의무를 철저히 하지 않아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에게 살인죄에 준할 정도의 강한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우리도 중대한 안전보건 문제를 발생시킨 사업주에게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하고 포괄적인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못하게 해야 한다. 끊임없이 중대재해 및 산재사망을 일으키는 사업장의 산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업주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가 필수적이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임준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yim99@gachon.ac.kr
ⓒ매일노동뉴스 2004.02.26 10:2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