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여성 복지 사각지대
“방학땐 빈손 개학하면 짤릴까 착잡”
급식조리원 박아무개(49)씨는 서울 ㅇ초등학교의 ‘일용 잡부’다. 겨울방학과 봄방학을 일없이 지낸 그는, 2일 개학과 함께 다시 학교에 출근했다.
공공기관인 학교에서 일하면서도, 그는 방학이나 공휴일, 명절이 결코 반갑지 않다. 수입이 한푼도 없기 때문이다. 11.5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하고, 정규직처럼 고용보험 등 4대 보험료도 꼬박꼬박 내지만, 방학은 그야말로 ‘공치는 날’일 뿐이다. 퇴직금을 계산할 때도 근무기간에서 아예 빠진다.
급식조리원 일당 3만원 안돼‥사고도 잦아
‘공치는’ 빨간날 많아도 실업급여등 못받아
그는 동료 7명과 함께 학생과 교사 2400여명의 점심식사를 만든다. 혼자 300인분을 책임지는 그의 일당은 2만9960원. 이 일을 처음 시작하던 1997년(2만4160원)보다 5천여원 올랐다. 8년 고참이나 새내기 조리사나 일당은 똑같다. 4년 전 시아버지상을 당해 5일동안 일을 하지 못해 돈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 때도 일당이 없긴 마찬가지다.
여름엔 40도를 웃돌고, 겨울이면 물청소한 바닥이 얼어붙는 조리실에서 하루 평균 7시간30분을 일해도, 손에 쥐는 건 월 57만~58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박씨는 “남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방학이나 빨간 날(공휴일)이 오면 우린 오히려 착잡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박씨 같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식 조리원 말고도 비정규직 영양사, 도서관 사서, 과학실험보조원 등이 있다. 교육부 통계로 전국 6만명, 노동계 추정으론 10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노동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특히 조리노동자는 사고당할 위험이 높다. 지난달 노동건강연대가 급식조리원 407명의 건강실태를 조사해보니, 이들은 금속산업 사내 하청노동자보다 높은 사고발생률(34.2%)을 기록했다. 4대 보험 가입률은 96%나 되지만, 혜택은 거의 없다. 다달이 고용보험료를 내도, 사실상 실업상태인 방학 때 실업급여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산재보험 처리율(9%)도 전체 비정규직(18%)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고용 불안도 심각하다. 9년째 급식조리원을 하는 하아무개(48)씨는 “제비뽑기로 재계약 탈락자를 정하기도 한다”며 “해마다 재계약을 하는 3월 초면 공포감이 밀려 온다”고 말했다.
김지현 전국여성노조 국장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나 채용, 관리기준은 교육청과 학교별로 제각각”이라며 “방학기간 임금지급, 경조사 휴가 등 복리후생제도 실시, 일용직 개념이 아닌 별도의 호봉체계 마련 등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여성노조 학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2000년부터 노조를 결성해 학교와 교육당국을 상대로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을 평가받아 최근 한국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여성권익 디딤돌’로 선정됐다. 이들은 오는 13일에도 정부세종로청사 교육부 앞에서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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