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전용병원’ 지원 시급
외국인노동자의 집, 5월 말 전용병원 개원 추진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고기복(princeko) 기자
80년대 중반까지 대표적인 인력수출국이었던 우리나라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86 아시안게임 이후. 하지만 92년 6월 10일부터 7월 31일까지 실시했던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통해 조사하기 전까지 우리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와 취업 현황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외국인력 정책에 대한 아무런 대안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자진 신고한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6만1126명, 사용자 1만796명을 사면하고, 미등록노동자를 합법체류자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세워,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그것이 바로 ‘외국인 산업연수제’였다.
하지만 외국인 산업연수제는 시행 초기부터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고, 실질적인 근로를 제공하면서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외국인노동자협의회(이하 외노협)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외국인 산업연수제는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2003년 7월 31일 고용허가제가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새로운 외국인력 정책이 시행되게 되었지만, 산업연수제와 병행실시 된다는 점에서 시행초기부터 편법적인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의료지원책이 정부에 의해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몇몇 시민단체들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전용병원 설립을 시도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3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김해성 대표 역시, 죽을 정도로 아파도 병원비 때문에 진료 한 번 받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이주노동자 전용병원 설립을 몇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를 거듭해 왔었다.
우선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의료지원 현실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해 부족으로 후원자를 발굴하기가 쉽지 않았고, 필요한 의료 인적 자원 역시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오는 5월 말경이면 29개 병상의 이주노동자 전용병원이 개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주노동자 전용병원 설립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지원사업을 묵묵히 해 오고 있던 한신교회가 병원으로 쓸 건물 전세비와 임대료를 지원키로 했다. 또 설립추진위는 건물 리모델링과 각종 의료 기자재 구입과 의료진 구성, 자원 활동가 모집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많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무료 진료 등을 비롯한 각종 의료 봉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상시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전용병원이나 시설이 한 군데에도 없다는 사실은 40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료 지원 체계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 2003년 미등록자 합법화를 통해 미등록자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 미등록자가 14만명에 이르고, 이들은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또한 작년 7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은 합법화된 노동자를 위해 고용주가 의료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고하고 있을 뿐,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합법화 대상에 든 이주노동자들 중 상당수도 의료지원 혜택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의료보험 카드를 만들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의료 보험 없이 일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의료보험 카드를 가진 한국인보다 높은 진료비를 부담하고 있고,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언어적인 문제로 진료를 받을 때도 상당한 불편을 겪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주노동자 전용병원이 설립되면, 이주노동자들의 적절한 필요를 채워줄 수 있도록 각국별 전문통역이 지원되고, 이주노동자 대상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무료 진료 등 체계적이고 상시적인 의료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주노동자 의료 불편 사례
사례1: 인도네시아 헨니(여)씨는 작년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기간 중에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로 구로의 H병원을 찾았다. 병원측에서는 단순히 빈혈약만 주고 방치했다가, 환자가 혼수상태에 이르러서야 오진임을 확인하고, 응급조치를 취하였다.
헨니씨는 자궁외임신으로 내출혈까지 가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의사소통상의 문제로 인해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한 경우였다. 게다가 병원측에서는 헨니씨가 회복 기간 중에 잦은 오줌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설사약을 처방하여 심한 우울증을 초래하게 하기도 했다. 이 일로 헨니씨는 한 달 가까이 입원해야 했고, 결국 합법화 신청을 못하여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귀국하여야 했다.
사례2: 2003년 3월 베트남인 T씨는 영등포의 H병원에 화상으로 입원했었는데, 수술 후 복통을 호소하며 식사를 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간호사로부터 식사를 안 한다고 구박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사고 후 우울증에 걸린 데다가 간병인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찾아와 도와주자, 병원측에서는 환자의 안정을 위해 면회를 제한한다고 하여 말썽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