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 회비대납-강제해고 등 부당차별대우
노사정위, 특수고용직 논의 답보상태
2004-06-21 오전 11:45:37
미취학 아동뿐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 교육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학습지 교사들이 심각한 차별과 불합리한 관행에 멍들고 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19일에는 학습지 교사 이정연씨(구몬학습 동울산지국. 28세)가 사망하는 데 이어, 학습지 교사들의 부당한 차별에 대한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위원장 이소영)은 이와 관련 2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학습지 교사의 현실을 고발했다.
학습지 교사 이정연씨, 회비대납 스트레스로 사망
지난 4월19일 학습지 교사 이정연씨는 “몸이 아파 지국에 나가지 못하겠다”는 전화통화를 마지막으로 숨을 거뒀다. 이씨의 사인은 울산대학교병원이 발급한 사망진단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부전”이라고 적혀있다.
노조와 사측은 이씨의 죽음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측의 회원늘리기 강요 등에 시달리다가 1천5백만원대의 부채를 남긴 채 사망했다”며 사측의 부당한 압력이 사망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회사측은 “감사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당한 업무를 지시한 관리자가 적발되면 징계 처리한다”며 “(이씨가) 무리한 다이어트와 가장으로서의 과중한 스트레스로 사망했다”면서 이씨 개인의 문제로 사인을 몰아가고 있다.
이씨의 사망 이후 이씨의 관리지역을 인수받은 다른 교사들에 따르면, 이씨는 총 2백4과목 중 1백34과목이 유령회원이었다. 이씨의 급여통장을 확인한 결과 매달 2백여 만원의 월급이 입금되었으나, 관리 회원의 회비를 입금해야 하는 말일이 되면 한 푼의 잔액도 남지 않았다.
유령회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미 포화상태에 빠진 학습지 시장에 살아남기 위해서 회사측이 교사에게 부당한 회원관리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다른 학습지나 여타 학원에 회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상시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매달 영업실적을 맞추지 못하면 지구장이나 지국장으로부터 무능한 교사라는 질책 뿐만 아니라 관리지역 분리, 퇴사 요청이 일상적이다. 따라서 학습지 교사는 관리회원이 이탈하더라도 이를 보고하지 못하고 이탈회원의 회비를 대납할 수밖에 없다.
이씨 역시 1백34여명의 유령회원의 회비를 고스란히 대납했고, 1천5백여만원의 빚도 여기서 발생한 셈이다.
학습지 교사, 회비대납-실적강요 등 부당한 처우 만연
이러한 부당한 영업행위는 이씨의 경우에만 한정되는지 않는다고 학습지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은 상시적으로 ▲강제해고 ▲부당업무 ▲강제 출납 및 회비 대납 등을 사측에게 강요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모씨(대교 용인포곡지점)은 마감일 체납회비에 대해 교사동의 없이 수수료에서 공제한 후 ‘교실 인수인계’ 지시와 함께 계약해지를 당했다. 권모씨(대교 평택서정지점) 역시 강제업무, 실적강요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히자 해지 협박을 당했다. 또 김모씨(대교 안양호계지점)도 마감일 담담파트장 휴회홀딩 지시를 거부하자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고발하고 있다.
송모씨(대교 평택서정지점 퇴사)는 교사시절 부당업무에 따른 빚으로 그만 두고 다른 일을 3개월째 하고 있으나 지금도 빚으로 고통받고 있고, 김모씨(대교 평택서정지점)는 매월 1백50만원을 회비 대납했고, 지금도 카드빚 1천5백만원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신 중 여교사에 대해서도 근무 강요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박모씨(대교 근무)는 지난 1월 임신을 이유로 계약해지 의사를 회사에 알렸으나, 회사에서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7월까지 근무토록 했고, 고모씨(대교 서울지점)는 지난해 8월에 임신사실을 확인하고 9월에 해지하겠다고 했으나 사측은 ‘당장 수업을 나가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교실을 정리하라’고 협박 받았다. 학습지 교사는 회사를 그만 둘 자유도 없는 셈이다.
노사정위, 특수고용직 문제 논의하고 있으나 노사합의는 매우 힘든 상황
하지만 이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회사측은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당영업행위가 지속되는 것은 학습지 교사가 현행 노동법 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미콘기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등과 함께 학습지 교사는 현행법상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노조결성을 비롯 노동자로서 가지는 기본권이 봉쇄돼 있다. 2000년 11얼에 설립된 전국학습지산업노조도 현재 법외노조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특수고용직 문제에 대해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중이지만, 노사 합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노사정위원회(위원장 김금수) 특수고용직 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진원 소장에 따르면, 노사는 노동3권 보장 여부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해, 공익위원들이 조정안을 마련 중에 있다. 공익위원의 조정안은 특수고용직에게 노동3권 혹은 2권을 보장 여부와 근로기준법을 적용 여부가 쟁점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소장은 이와관련 “노사 이견차이가 크기 때문에 공익위원의 조정안이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해 학습지 교사를 비롯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