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구경’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이주노동자도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간단한 치료 못 받아 목숨 위협까지

파키스탄에서 온 와심(26)씨는 1개월째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 입원 중이다. 한국에 온지 7개월째인 그는 전라도 광주에 있는 한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 바디(몸체)를 만드는 일을 하다가 공장 바닥에서 미끄러져 허리와 다리를 다쳤다. 작업시간에 부상을 당했지만 작업 공정과 무관하게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로 아직 산재판정을 받지 못했다.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그는 입국과정에서 송출비로 수백만원의 빚과 이자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벌어놓은 돈도 없어 당연히 병원비를 전혀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온지 5년째라는 방글라데시 출신 미라시(40)씨는 과중한 작업 스트레스로 인한 위궤양을 앓고 있는 경우다. 한국인 사장이 쉴 새 없이 외쳐대는 ‘빨리빨리’ 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는 그는 평균 12시간에 이르는 하루 업무를 끝내고, 술을 많이 마셔 위에 ‘구멍’이 났다. 그 역시 치료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처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미등록이주노동자로 남게 됐다는 그는 4달 넘게 월급도 못 받았다며, 그가 다니던 공장의 한국인 사장을 ‘거짓말쟁이’, ‘나쁜 놈’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덕분에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가리봉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대표 김해?목사)에는 지난 6개월간 와심과 미라시씨 같이 돈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외국인노동자들 1천여명이 치료를 받으러 다녀갔다.

ⓒ 매일노동뉴스

병원 문턱 못 밟고 숨지는 이주노동자 많아

“산업재해나 직업병으로 등으로 몸이 아플 때 외국인노동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일반인이 느끼는 고통보다 몇 배는 더 큽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타지에 와서, 누군가에게 마음 놓고 아프다고 호소할 수도 없는 그들의 처지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십수년째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펼쳐온 외국인노동자의집 대표 김해성 목사는 지난 해 7월 여러 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이주노동자들만을 위한 전문의원을 개원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건물 2, 3층을 개조해 만든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내과를 비롯해 안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치과, 한의원, 약국 등이 구비돼 있고, 30여개의 병상을 갖췄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보건복지부로부터 공중보건의 1명이 추가 배치돼 상시적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으며, 통역 봉사자들이 의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을 도와주고 있다.

또 몸이 아파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 치료비를 낼 형편이 되거나, 산재나 교통사고 등을 당해 지원금을 받는 경우는 치료비를 받고 있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 등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자체 심사를 통해 진료비를 면제해 주고 있다.

“프레스기계에 팔뚝이나 손가락이 잘려 실려오는 경우는 예사이고, 입고 있던 옷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갈비뼈가 으스러진 환자 등 주로 3D업종 종사자들이 산재를 입어 병원을 찾습니다. 그나마 치료를 받아 목숨이라도 건지면 다행이지만, 지난 5년간 1천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안타깝게 죽어갔습니다.”

김 목사에 따르면 감기에 걸렸다가 치료를 못 받아 결국 폐렴으로 숨진 환자,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발이 못에 찔려 파상풍으로 숨진 환자, 맹장이 터져 폐혈증으로 숨진 환자 등 간단한 치료로 충분히 살아날 수 있었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병원문턱 한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김 목사는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와 밀입국자의 경우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그간 한국에서 죽어간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불법체류자’였다고 지적했다.

미등록이주노동자 이중삼중 고통 심각

“불법체류자들의 경우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4~5배정도 비싼 ‘일반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 500만원에서 1천만원 정도의 빚을 진 상태이기 때문에 큰 돈을 들여 일반진료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들이 산재사고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 김 목사는 “한국인 고용주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소위 3D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노동자 수가 50만명에 육박합니다. 이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프레스기나 사출기 등을 사용하는 영세사업장이 대부분인데, 이들을 고용한 한국인 고용주들이 생산성을 이유로 안전설비가 돼 있는 기계의 자동안전장치를 떼어내기 일쑤고, 이들에 대한 철저한 안전교육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안전교육이나, 주의사항, 작업지시 등은 없고 모든 것이 대충 눈치로 이뤄지다 보니 산재사고가 빈발할 수밖에요.”

이렇게 해서 재해를 입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등록이주노동자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데다 보상 절차도 까다로워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하면 추방을 당한다”는 고용주들의 협박 때문에 정당한 치료와 보상에서조차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산업안전 불감증, 이주노동자 차별적 태도가 산재사고를 부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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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산재신청을 한 이주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의 불법체류 통보지침에 따라 일정 치료기간이 끝나면 강제추방 되고, 산재 신청을 한 기업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명목으로 과중한 벌금을 부담해야 하는 현재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문제가 있다”며 “‘인권’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이주노동자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산업안전 감독의 강화, 산재환경 개선을 위한 중소기업 지원책 등을 통해 산재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말헥산 사태 갑자기 불거진 것 아니다

한편 이 곳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찾는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은 반복적인 육체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및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기질환, 환경적 특성에 의한 결핵 등 감염성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 대부분이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보니, 근육통 등 물리치료를 요하는 환자가 상당수입니다. 또 열악한 노동환경, 부실한 식사, 불법체류자의 경우 심리적 스트레스 등이 쌓여 간염, 결핵 등 ‘후진국형 질환’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상당수 입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외래환자의 진료 및 상담을 전담하고 있는 이완주 원장의 말이다.

이 원장은 “‘노말헥산’같은 유기용제에 중독 됐을 때 나타나는 하반신 마비 등의 증상은 유해환경에 장기적으로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산재”라며 “유기용제에 장기간 노출되면 의식장애, 소화기 장애, 불면증, 초조감 등에 시달리며, 증세가 악화되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표 참조>

작업장 별 장기근무시 나타나는 질병 (단위: %)

작업장 질병
벤젠, 톨루엔 사용 사업장 의식장애, 보행장애, 빈혈
트라클로로에틸렌 사용 사업장 정신쇠약, 간기능장애
납 사용 사업장 소화기계통 출혈, 관절통, 상습 변비
수은, 아말감 사용 사업장 불면, 두통, 초조감
섬유, 봉제, 석연 취급 사업장 진폐증, 폐결핵
용접 사업장 시력약화, 화상

자료제공=외국인노동자의집

“‘노말헥산 중독’의 경우처럼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증상이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만성질환’을 호소하는 환자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누적돼야만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증상이 심화되면서 통증을 동반하게 되지만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는 작업장 분위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국인노동자들이 병을 키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해성 목사는 특히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일 경우, 병원에서 체포될 것이 두려워 더더욱 병원 가기를 꺼리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각 나라별 언어로 적힌 포스터나 주의사항을 제작해서 붙이면 산재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권과 건강권을 보호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아노와르(방글라데시) 평등노조 이주지부장 역시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노동권리를 인정받으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라며 “특히 불법체류자로 구분돼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 합법화를 통한 건강권 보호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 증세를 보인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건강 실태가 고발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이 ‘건강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그들의 건강권에 대한 철저한 집중점검과 대책마련이 시급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구은회 기자 press79@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