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산업안전감독관 집무규정’ 등 제도개선 목소리 거세질 듯
두산중공업 산재은폐 진상조사단은 지난 7월26일 발족했다.
이에 앞서 7월5일 부천 두산중공업 위브더스테이트(아파트) 현장(엘리베이터 교체작업, 지하4층)에서 발생한 건설노동자 유용만씨의 사망사건에 대한 산재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산재은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 건설산업연맹, 경기중부건설노조, 유족, 단병호 의원실,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양대노총, 민주노동당,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출발의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과 아빠, 형님,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심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당시 고 유용만씨의 사인은 당초 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으로만 알려졌다가 유족의 제기로 사인불명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진상조사단은 26일 발족 이후 29일 두산중공업 부천현장 1차조사에 이어 산업의학의, 담당형사, 동료, 유가족, 응급구조사, 담당감독관, 하청업체 관리자 등 대부분의 관계자들을 만나서 진상조사를 했으며 지난 9월1일 최종 회의를 거쳐 13일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한 달 반 동안의 조사 결과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제기했다.
◇ 정수리 부위 상처 = 국과수 담당 부검의는 사망 이전 생긴 상처라고 확인했다. 이는 이전 회사측이 현장에서 발생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것이다. 고인의 정수리 상처는 국과수도 원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했으며 진상조사단이 의뢰한 의사들은 넘어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소견을 냈다.
◇ 현장안전장치 미비 = 안전공단 1, 2차 재해조사와 진상조사단의 현장조사 결과 현장의 안전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현장이 지하4층부터 지상까지 유일한 통로였으며 퇴근무렵이어서 작업자들의 왕래가 많았던 것을 감안할 때 발끝막이 판이 설치되지 못한 개구부로 낙하물이 떨어져 고인의 머리에 맞았을 가능성을 진상조사단은 유력하게 제기했다.
◇ 증거물 조작 의혹 = 사건의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증거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두산측은 사고발생 당시 사직을 찍어 보관하고 있었음에도 7월6~7일 경찰이 수차례 현장조사를 했음에도 사진을 제출하지 않았다. 노동부와 안전공단 조사시에도 마찬가지였다. 7월22일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심근경색으로 나와서야 최초사진을 경찰과 노동부에 제출했다. 진상조사단은 “혈흔이 있는 사고당시 사진을 끝까지 제출하지 않은 것은 고의성이 역력한 행태”라고 주장했다.
◇ 현장훼손 의혹 = 사고 이후 두산측은 사고발생부터 6일 작업중지, 7일 현장보존 이후 8일 작업재개를 했다고 7월29일 진상조사단 현장조사에서 밝혔다. 당초 회사측은 현장에 혈흔이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병원에서의 고인의 피가 낭자한 사진을 보여주자 사고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고 병원 이송 후에야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진상조사단이 두산측이 제시한 5일 사고당시 사진과 6일 경찰조사시 사고현장 사진을 대비해보니 물품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자 하청업체 금아무개 이사가 철근을 치웠다고 진술했다. 금씨는 이외에 더 치운 것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병원이송시 응급차에 함께 탔던 하청업체 소장 김아무개씨는 고인의 뒷목에 박스를 받치고 있었고 혈흔을 봤다고 진술해 엇갈린 태도를 보여줬다.
◇사고지연 의혹 = 두산측은 사고발생 당시 119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거래병원과 지구대에 신고했다. 119로 신고하게 되면 사고발생이 투명하게 데이터 되는 점을 우려해 사설응급시설을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중부경찰서가 바로 현장 옆에 있었음에도 굳이 지구대에 신고한 것은, 지구대에서 경찰서로 넘겨지는 시간이 길어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또한 지구대 신고 당시 사망이 확실치 않은 것으로 신고하면서, 지구대가 현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병원으로 가면서 나중에 중부경찰서가 현장에 자정이 넘어서야 도착하게 하면서 사업주 법위반 사실을 조작하기 위한 시간 확보의 지연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목격자 진술 의문점 = 사고발생 당시 최초 목격자는 현아무개 기사이고 사고당일 동료였던 김아무개씨의 경우 사고발생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고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유용만씨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목격자 진술서에는 사망한 상태에서 김씨가 유씨를 알아본 것으로 작성했으며, 회사측이 진술서 작성과정에서 부담작업의 유무, 평소 건강상태 등을 유도해 진술서를 작성, 심근경색으로 몰고 가기 위한 진술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기타 의문점 = 두산측은 유용만씨의 사망사고가 사인미상으로 돼 있었음에도 노동부 제출 재해속보란에는 심근경색 추정으로 보고했다. 이 당시 관련서류를 첨부하지 않았는데 회사측은 유족측의 방해로 못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족은 방해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또 두산측은 7일 오후 재해속보 팩스통보에도 관련서류를 첨부하지 않았다. 담당감독관은 8일 노동부 자체보고에서 의사진단으로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으나 병원에서는 사인미상 외에 어떠한 공식의견도 제출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노동부는 이미 6일 병원에서 사인미상으로 결과가 나오자 경찰이 조사를 진행하고 국과수가 7일 부검까지 한 상황이었으나 4일 동안 현장조사를 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산업감독관 집무규정 28조’에 “교통사고, 고혈압 등 개인지병, 방화 등에 의한 재해로서 재해원인이 사업주의 직접적인 산안법 위반에 기인하지 아니한 것은 명백한 재해”에만 현장조사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이 같은 의문점을 제기하며 크게 세 가지를 주장했다.
우선 낙하물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정황상 고인의 정수리 상처와 현상훼손의 가능성을 볼 때 낙하물에 의한 충격으로 심근경색이 발생, 죽음에 이른 산재임을 제기했다. 또한 회사측의 사고현장 미보존, 사고신고 지연 및 사고내용 허위신고, 사고관련 증거 미제출 등 사업주의 안전조치 위반정황을 은폐했고 사인이 분명치 않은 사고임에도 심근경색으로 몰아가기 위해 시도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관련제도가 건설현장의 산재은폐를 구조적으로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단은 고인의 산재승인과 검찰은 현장훼손을 한 관계자와 두산측의 지시여부, 사고신고 내용의 허위시고 여부, 하청업체 현장소장에 대한 조사, 안전모에 대한 재조사, 목격자 진술서 작성에 대한 조사 등의 재조사를 요구했다. 또 사고사를 지병으로 몰고한 관련자 엄정처벌, 현장조사 방기한 부천지방노동사무소 엄정처벌,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감독관 집무규정을 개정하고 산재은폐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회사측의 주장은 다르다.
두산중공업 본사 한 관계자는 “핏자국의 경우는 고인이 누워있을 때는 안 보였고 병원 후송 뒤 보았으며 그 크기도 목장갑 반을 접은 크기로 실제 크지 않다”면서 “또한 국과수의 조사도 있고 경찰조사도 있는 속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심근경색으로 어떻게 몰아갈 수 있겠냐”며 진상조사단의 발표에 반박했다. 또 이 관계자는 “우리는 숨기는 것이 전혀 없으며 이미 산재신청이 돼 있고 경찰 수사도 끝난 상태에서 법대로 그 결과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라면서 “회사는 그럼에도 망인이 현장에서 쓰러진 것이니 망인에 대한 예우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제 공은 경찰수사 종결에 따라 검찰로 넘어가는 한편 진상조사단의 손을 떠나게 됐다. 유족측은 “산재승인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건설산업연맹, 공동대책위 등이 함께 투쟁을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제도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관 집무규정과 재해발생 보고처리지침(사망사고 발생시 24시간, 일반재해시 한달 이내에만 보고를 하면 됨)의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어느 때보다도 제도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남궁현 진상조사단장(건설산업연맹 위원장)
“건설사 산재은폐 실태 드러냈다”
– 당초 진상조사단은 2주간 조사하겠다고 했으나 한 달 반 만에 결과를 내놨다.
“조사는 일찍 끝났지만 낙하물, 안전모 등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시간이 걸렸다. 머리 정수리 상처는 낙하물에 의한 상처가 분명해 보이나, 끝내 안전모를 찾지 못했고 낙하물도 확보하지 못했다.”
– 이번 조사결과의 의미는.
“나도 건설시공사에서 근무한다. 우리 회사도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하지만 종종 안전사고가 분명한데도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하거나 유가족과 적당히 보상합의를 하는 방식으로 산재를 은폐하곤 한다. 건설회사는 PQ제도 감점을 받지 않기 위해 (산재를) 피하려고 한다. 비록 이 하나의 사례가 전체를 대변하긴 어렵겠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70~80%에 이르는 건설현장 산재은폐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의미가 있다.”
– 앞으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계획이 무엇인가.
“산재승인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진상조사단 역할은 여기까지 이지만 건설산업연맹과 공동대책위 등이 산재인정투쟁을 적극 벌여나갈 것이다.”
<인터뷰> 유종만 유가족 대표
“더이상의 희생자가 나와선 안된다”
– 한 달 반 만에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가족의 입장은.
“이번 결과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다. 마음이 착잡하다. 말로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지난 7월5일 형님의 비보를 처음 접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처음엔 건설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엔 회사나 병원에선 유족에게 외상이 없다고 했다. 형님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진실을 얘기해달라는 것이다.”
– 진상조사 결과의 의미를 어떻게 보나.
“형님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 많이 했다. 형님과 같은 똑같은 사고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유족도 같이 해왔다. 더 나은 제도가 만들어져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앞으로 유가족의 계획은.
“지난 70일간 하루도 편안히 잠자지 못했다. 억울하고 분노하고 원망스러웠다. 지금도 형님이 병원의 차가운 냉동고에 계시다. 형님, 조금만 참아주세요, 왜 돌아가셨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라고 다짐한다. 머리에 상처가 나서 죽었는데 산재가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끝까지 싸우겠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