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개혁 빌미 안전장치 해제
[내일신문 2006-03-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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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건설현장 산재사망 한해 700명 ‘산재공화국’ 오명
산재업체 입찰불이익주는 ‘재해율 감점제’ 폐지
시민단체 “재경부 노동부 건설업계 로비에 굴복”
건설현장에서만 한해 600~7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현실을 무시한 채 정부가 개혁을 명분으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폐지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빠르면 다음달 중 산재를 일으킨 업체에 관급 공사 입찰에 불이익을 주는, 이른바 ‘재해율감점제’를 없앨 방침이다. 대신 산재를 은폐했을 경우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방침은 산재예방의 효과는커녕 오히려 기업에게 산재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게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판단이다. 기업들이 산재를 은폐하기는 어렵지만 산재 피해자 또는 피해가족과의 합의사실을 내세워 ‘의무를 다했다’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점제 폐지는 업계측 로비 산물 = ‘재해율 감점제’란 재해가 많은 업체들에게 공공공사 입찰 때 감점(최대 -2점)을 줘 입찰을 제한하는 제도로 재해예방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해율감점제 폐지 주장은 1993년 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래 계속돼 왔다. 처음에는 최대 감점이 -5점이었다가 건설업계의 주장에 의해 지속적으로 완화돼 -2점에 이르렀다. 정부는 2001년 폐지방침을 밝혔다가 노동계의 반대로 철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기획단의 결정으로 폐지에 이르게 됐다.
재경부는 4월중으로 회계예규를 수정해 정부건설공사에서의 입찰과정에 대한 개선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 개선안에 따르면 현재 ‘정부발주공사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제도 신인도 부문의 ‘재해율 감점제’내용 가운데 감점제가 폐지되고 산재은폐에 대한 감점제가 추가된다. 현재 노동부 등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논의중인 수정안은 재경부장관의 위임사항으로 마무리 단계에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재해율 감점제가 건설공사 업체 선정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전심사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나마 공사현장에서 건설회사들의 재해예방활동을 촉진해 왔던 재해율감점제 폐지는 건설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포기한 처사라는 게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의 평가다.
경실련 윤순철 국장은 “산업재해는 예방이 최우선인데 은폐사고 감점제를 통해 보완하겠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재경부와 노동부 등이 건설업체의 로비에 굴복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서울건설산업노조 김창년 실장도 “산재사고 은폐를 줄이는 것과 사고 발생 업체에 대한 제제는 별개”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적전 분열’ 보이는 노동계 = 재해율감점제 축소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던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부가 지난해 6월 재경부에 제출한 의견은 노동계 학계 등의 의견을 조율해 만든 내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논의 과정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감점제 축소에 대해 합의한 바 없다”며 “감점제 폐지로 인해 산재사고가 늘어날 가능성에 대해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노동부가 논의 과정에 끝까지 참여 했다고 밝힌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관계자는 “감점제 폐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산재 은폐가 70~80%에 이르는 현실에 주목해 감점제는 없애고 산재은폐에 대해 감점을 주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며 “건설업체와 재경부의 폐지압력을 방어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해율에 따른 가점제는 남아 있기 때문에 업체들의 재해예방 활동을 유도할 수 있다”며 “노동부에 산재은폐 적발 시스템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탁상공론 앞에 쓰러지는 노동자들 =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 큰 버팀목이 돼왔던 재해율감점제의 폐지가 임박한 가운데 건설현장에서는 추락·붕괴 등 후진국형 산재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2주동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에이스건설이 시공하는 아파트형공장 건설현장에서 산재가 발생, 노동자 4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8일에는 서울 마곡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용직 근로자 이 모(54)씨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H빔에 깔려 숨졌다.
서울건설산업노조는 4일 문래동 안전사고에 대해 해당 노동청과 사고 현장을 수차례 방문, 철저한 관리감독과 안전대책 수립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마저 안전불감증에 걸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의 노동자 사망건수는 99년 583명에서 △2000년 614명 △2001년 659명 △2002년 672명 △2003년 762명 △2004년 779명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고성수 김은광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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