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노동자의 죽음에 부쳐
-뉴욕타임즈 특집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부검에서 확인되었듯 패트릭 월터스의 사망은 사고 직후 바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2002년 6월 14일, 3m 깊이에서 하수구 배관 공사를 하던 중에 그는 쓰레기 더미와 진흙 속에 파묻혀 버렸다. 배관공의 도제로 일하던 22살의 패트릭은 진흙더미에서 탈출하려고 버둥거렸으나 헛수고였다. 진흙들이 그의 가슴을 채우기 시작하였고, 엄청난 무게가 서서히 가슴을 조이고, 끝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패트릭의 어머니, 미첼 마트는 비통해했다. 그는 단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들을 수도, 숨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패트릭의 부인 크리스탈에게 전화를 했다. 크리스탈은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아이를 끌어안고 ‘어떻게 이 사실을 설명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검시관이 왔을 때 어머니는 패트릭이 산채로 파묻힐까봐 두렵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검시관은 금속상자 같은 안전장비 없이 깊은 갱으로 들어간 상황을 아쉬워했다.
1989년 같은 뫼브스배관 회사에서 또다른 죽음이 일어난 적이 있다. 상황은 거의 같아서, 갱도는 깊었으며, 안전상자는 없었고, 산채로 매몰되었다. 회사는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하였으며, OSHA(Occupational Health and Safety Agency 미국 직업안전보건청(오샤)) 에게는 안전조치를 취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교육 없이,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를, 보호장치도 없는 3m 깊이의 갱으로 내려보낸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안전에 관한 법률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연방범죄이다. 이 사건을 기소하려 했다면, OSHA는 먼저 사법부의 판례들을 참고하여야 했다. 그러나 참혹한 사고였음에도, OSHA는 지극히 의례적인 조치만을 취하였다. “안전장치 없음. 갱도 파손. 매몰사고”라는 기록하는 모습은, 가족들에게 그저 사소한 일을 다루는 관료들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갱도의 형태
모든 갱은 죽음의 늪이 될 수 있다. 갱도의 벽은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토양이 젖어있을 수록 위험은 더욱 커진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매년 갱도에서 사망하거나 다치고 있다. 연방 안전법에서는 1.5m 이상 깊이의 갱 작업에서는 특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벽면은 경사가 안전각도를 유지하거나 버팀목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상자를 사용할 경우에는 상자가 붕괴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해야 한다. 또한 “적임자” – 갱작업의 안전에 대해 훈련을 받은자 – 에 의해 갱도를 사전 검사한 후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기본적인 갱도 안전을 유지하지 않았다. 회사는 안전 위원회를 열지 않았으며, 3개월 이상 안전관리자도 두고 있지 않았다. 이 회사에서 안전관리자로 근무한 적이 있는 로버트는 자신의 실제 임무는 “매우 낮은 안전수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2년간의 근무기간 동안 갱도안전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기억할 수 없다며 씁쓸해하였다.
동일한 회사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사망
신시내티 OSHA 책임자인 머피는 13년전에 발생한 끔찍한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다. 1989년, 패트릭처럼 경험이 많지 않은 노동자 클린트는 하수구 배관을 위해 3.6m 깊이에서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뒤에서는 굴착기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사면의 안전각도도, 버팀목 설치도 지켜지지 않았고, 안전 상자도 없었다. 갱의 벽면이 붕괴될 때 클린트는 갱안에 무방비로 놓여있었다.
머피는 당시에 클린트 사망 사고에 대해 매우 격분하였다. 회사는 1984, 1985, 1986년 세 차례에 걸친 경고를 무시하였다. 회사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구입하지 않았으며,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고, 달랑 700 달러의 벌금을 납부할 뿐이었다. 머피는 클린트가 회사의 고의적인 안전규칙 위반으로 사망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1만4천 달러의 벌금형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후 회사는 안전장비구입과 안전위원회 설치를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흐지부지 되었다.
습한, 깊은, 죽을 듯한
신시내티 북쪽 40 마일 거리에서 하수도와 상수도 배관작업이 실시되고 있었다. 이 공사의 책임자는 케러였다. 케러가 굴착기를 이용하여 땅을 파내면, 패트릭은 여느 때처럼 파이프를 자르고,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서 하였다. 케러는 스며드는 빗물 때문에 걱정이 됐었다고 한다. “갱안에 물이 차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왜죠?” “모든 것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죠.” 케러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오래 전 10시간의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있으나, 최근 6년 동안은 단 한번의 안전교육도 받은 적이 없으며, 안전조치와 관련한 어떠한 사항도 그는 기억하지 못하였다.
공사시작 둘째 날 밤새 내린 비로 갱은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그것을 퍼내고 나서야 작업은 시작되었다. 오후에 3m 갱이 드러났고, 거기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굴착기가 방향을 바꾸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갱도의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굴착기도 미끄러져 내렸다. 케러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 순간 흙 덩어리가 패트릭을 덮쳤다.
기소의 구성요건
패트릭의 시체를 끌어내는데 7시간이 걸렸다. 사장은 몰랐다고 변명하였다. “회사는 매우 훌륭한 안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안전결함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일상적인 갱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회사측은 좀더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머피는 말한다. 머피는 오랫동안 OSHA의 기소권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껴왔다고 한다.
“어떤 기업이 세금을 포탈하면 그 회사는 중죄로 처벌됩니다.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갔을 때 왜 우리는 처벌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오랜 기간 그는 동일한 규정을 어겨서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였는데도, 적은 벌금만을 내는 회사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당신은 그들을 감옥으로 보내야 했다”고 하자, 그는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OSHA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이런 고소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소 복잡하였다. – 역량 부족, 평판이 나빠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법부가 이런 사건을 다루기 꺼려한다는 집단적 믿음, 기소하더라도 서류만 수북히 쌓이고, 수년씩 지체되면서, 계속적인 심리만 이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OSHA는 노동부 법정 변호사의 승인없이는 사건에 대한 기소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부 법정 변호사의 사무실을 사건을 흡입하는 “블랙홀”이라고 야유하고 있다. 그곳에 들어간 사건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데, 특히 회사의 입김이 강력한 사건의 경우에 사건을 무마하는데 더욱 열심히라는 것이다.
“이 사건들을 기소하는데 있어서 OSHA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선 내부의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패트릭 사건의 경우는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시카고와 워싱턴의 실무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고 OSHA의 말을 빌리자면, “상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벌금은 10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머피는 덧붙이기를 “이러한 처벌은 상당히 드문 경우다. 워싱턴의 몇몇은 동의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고 전한다.
한 가정이 행동을 호소함
“커다란 아픔이 하나의 동심원을 만들었습니다” 패트릭 월터스의 이복누이 제니 멘즈는 말하였다. 가족들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밝히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모든 가족이 함께 했다. OSHA의 홈페이지에서 멘즈는 중대재해 조사 과정을 발견하였다. 하나의 문구가 관심을 끌었다. “형사 소추 고려 중”. 그러나 아무도 이것을 어떻게 진행시켜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들은 대중매체 리스트와 법률 전문가 리스트를 만들었다. 증인으로 요청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질문 리스트도 만들었다. 사고 현장으로 가서 패트릭을 구하고자 했던 이들을 포함하여 건설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가족들은 친구와 이웃이 자신들의 혐오와 분노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신의 뜻, 사고, 운명’ 등으로 사고를 묘사함으로써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 “내 아들은 죽임을 당한 겁니다” 아버지 제프 월터스는 말했다. 사장은 아들을 죽게 만들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 무책임한 행동의 결과로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하였다. “누군가 사람을 죽였다면 그는 감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사장에게 책임을 묻겠는가?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들은 찰스 셸턴의 명함을 발견하였다. 그에게 전화하여 메시지를 남겼다. 또한 인터넷에서 론 헤이스에 의해 설립된 ‘슬픔을 함께 하는 가족들’이라는 지지 그룹을 발견하였다. 론 헤이스의 아들은 10년 전에 곡물 저장소에서 일하다 사망하였다. 헤이스씨는 강도 높게 OSHA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OSHA의 책임자인 존 헨쇼를 친구로 여기기도 했다. 헨쇼씨는 그를 국가직업안전보건 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지명하기도 하였다. 헤이스씨는 작업 중 사망한 이의 가족으로부터 일주일에 몇 통씩 전화를 받고 상담을 한다. 2002년 8월 1일에 제프 월터스가 우연하게 신시내티에 갈 일이 있었기에 같이 만나 저녁을 함께 하였다. 제프 월터스와 론 헤이스는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연대감을 느꼈다. 둘 다 배관공이었다. 아이들은 둘 다 팻이라 불렸고 어려서 죽임을 당했다. 헤이스가 말했다. “회사가 고의로 법을 어겼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무부가 이 사건을 조사하도록 만들기 힘들 겁니다”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OSHA는 매우 적은 수의 사건만을 고의적이라 분류하고 그보다 훨씬 적은 사건만 기소하였다. 가족들에게는 사건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셸턴씨를 찾아 갔다. “사장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고의적인 범법 행위에 대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사장은 이미 한 사람을 죽였고 이번에는 패트릭을 죽였습니다.” 셸턴씨도 그의 분노에 일정 공감하였다.
동맹의 위축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중요한 동맹군을 잃었다. 2002년 8월 2일에 빌 머피가 OSHA에서 정년 퇴임하였고 더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머피 의 후임자가 선정될 때까지 그의 업무를 대신 맡게 될 세 명 중 한 명이 사장과 친분 관계가 있었다. 사장과 친분이 있는 그 담당자는 상관에게 모든 조사가 잘 끝났다고 보고하였다. 상관에 따르면 그는 사건을 묘사하고 설명한 뒤, 고의적 범법 행위를 패트릭 월터스의 죽음 건 외에 다른 한 건에만 적용시킬 것을 권유하였다. 또한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그는 사건에서 손을 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상관은 말하였다. 그 상관은 OSHA 신시내티 지부가 다른 비사망 재해는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패트릭 월터스 건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도 발견했다. 그는 그 사건을 공론에 부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는 동안 사장은 변호사를 고용하였다. OSHA가 기소한 피고인들을 곤경에서 구해내는 데 일가견을 가진 변호사였다. 변호사의 임기응변은 머피가 정년퇴임하자마자 곧 발휘되었다. 변호사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머피와 사장의 점심식사를 주선하였다. 머피는 일 년에 5천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사장의 직업안전보건 관련 컨설턴트가 되어 노동자를 교육하고 안전에 대하여 자문해 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머피씨는 월터스 사건에 대해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고용되면 회사가 OSHA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사장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셸턴씨의 태도에서도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점점 방어적이 되어갔고, OSHA가 형사 책임을 묻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감독관에 의하면 사장이 안전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하였다고 하였다.
가족들은 마지막 희망을 론 헤이스에게 걸고 있었다. 헤이스는 8월말에 OSHA 책임자인 존 헨쇼를 만나, 패트릭 월터스 사건에 대한 사진과 설명 자료를 보여주며 이야기하였다. 또한 같은 22살의 노동자로서 사망한 클린트 달리 사건도 설명하였다. “그는 ‘끔찍한 일이군요.’라고 말했다. ‘맞아요, 이들은 기소되어야 해요.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헤이스는 이 사건이 단지 월터스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이러한 비극을 멈추게 하려면, 보다 많은 사건이 기소되어야 하며, 뫼브스 배관회사를 기소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통사정을 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헤이스는 말했다. OSHA 책임자는 확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는 월터스 가족이 좋은 검사를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헤이스는 낙천적으로 생각했다. 가장 큰 장애물은 OSHA의 관료주의였다. 그는 OSHA의 책임자 헨쇼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가족들 역시 2002년 10월 9일, OSHA가 계속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기대를 걸고 있었다. 편지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기 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고 쓰고 있었다.
단 한 마디 단어에 희망을 걸고
2002년 11월 26일, 크리스탈은 남편이 죽은지 6개월이 지나서야 OSHA로부터 조사 결과를 통보 받았다. 그녀는 그것을 천천히, 주의 깊게 단 한 마디 말을 찾으며 읽었다. ‘고의’라는 단 한 마디 말. OSHA는 두 가지 범법 행위를 언급하였다. 하나는 패트릭 월터스를 죽인 참호였고 다른 하나는 OSHA가 2주전에 조사를 시행한 참호였다. 회사는 몇 가지 심각한 안전 조치를 위반하였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적절한 교육을 시행하지 않았고, 적임자에게 정기적인 검사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OSHA는 회사가 각각의 참호에서 고의적 범법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붕괴에 대비한 보호장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클린트 달리를 죽인 고의적 범법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고의적 범법 행위에 대한 증거를 얻었어요! ” 한 바탕 소란 후에 소식이 모든 가족에게 전해졌다. OSHA의 통보는 수개월에 걸친 노력의 산물이고 사고가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가족들은 확신하였다. 이제 OSHA는 사건을 법무부에 송치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고, 법무부는 기소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러나 이는 11월 27일 회사의 변호사와 OSHA의 감독자인 데니스 콜린스가 4페이지짜리 협약에 서명함으로써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회사가 법정 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OSHA 조사 결과에서 “고의적”이란 단어를 삭제하는 데 동의하였다. OSHA는 그 부분을 “분류되지 않은”이란 표현으로 고쳐버렸다. 이는 기업변호사의 말장난이었다. 회사는 연방 안전보건법을 “고의로” 위반하였다는 딱지가 붙는 것에 대하여 불쾌해 했다. 그래서 변호인은 당근을 제시했다.
만일 OSHA가 “고의적”이란 단어를 “분류되지 않은”이란 표현으로 바꾼다면 회사는 보다 많은 벌금을 낼 용의가 있고 안전보건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의지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최근에 OSHA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벌금을 9만 달러에서 5만 4천 달러로 40%나 깎아 주었다. 대신 회사는 참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OSHA의 교육을 30시간씩 이수하고, 2년에 한 번씩 참호를 검사하는 자문관을 채용하는 데 합의하였다.
사장은 인터뷰에 응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나눈 짧은 대화에서 사장은 가족들에게 회사의 안전 경영에 대해 변호하였다. 사장은 가족들이 회사를 기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을 알고 있지만 OSHA는 형사 소추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 사업주보다 노동자의 안전을 더 고려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결정 구조
이러한 사실은 순식간에 가족들의 마음을 무너뜨렸고 좌절감에 빠뜨렸다. 고의적 범죄 증거도 없고 형사 소추도 없었다. 모두들 공통의 의문사항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정이 내려진 것일까? 왜 우리들의 의견은 듣지 않았는가? OSHA 책임자, 존 헨쇼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사장은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오고 정부는 그것에 공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패트릭을 죽인 범죄 행위에 왜 “고의적”이란 단어를 삭제한 것인가? “OSHA가 사망재해에 대하여 더 무거운 벌칙을 주는 조항이 직업안전보건법에 없다는 사실이 문제다.” 패트릭의 어머니는 말하였다.
그렇다. OSHA는 사망자가 발생해도 그 사건에 벌금을 더 물릴 수 없다. 그러나 회사가 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법무부에 요청할 수는 있지 않은가?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았다. 노동부 대변인인 에드 프랭크는 OSHA가 뫼브스 회사를 형사 소추하지 않기로 한 결정과 관련하여 아무 기록도 없다고 말했다. 그 사건에 관계된 공무원 중 시카고 OSHA의 지역책임자인 코노스 씨만이 인터뷰가 가능했다. 그와 정년퇴임한 머피와의 인터뷰와, 다른 기록들을 참고로, 당시에 어떤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가를 밝히는 작업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OSHA의 마지막 결정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시카고 지부에서는 이 사건이 매우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장은 형사 소추를 피할 수 있었다. OSHA는 회사로부터 추가적인 감시와 훈련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에 “긍정적인 해결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코노스씨에 의하면 신시내티 지부의 공식 권고가 도착하였을 때 그것은 사장의 이웃이며, 머피의 후임자였던 직원이 권고한 내용과 비슷했다. 첫 번째 건에만 고의적 범법 행위를 적용시킬 것을 권고했지만, 그 보고서에서조차도 두 건 모두에 심각한 벌칙(벌금 10만1500 달러)을 줄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이는 헨쇼씨의 감사 결과 밝혀진 것이다. 코노스씨에 의하면 시카고 지부에서는 신시내티 지부의 이러한 권고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패트릭 월터스를 죽인 범죄는 분명히 고의적이라고 확신하였다.
법적으로 고의적 범죄란 사업주가 안전보건법에 대하여 “고의적인 무시”나 “명백한 무관심”을 보인 경우를 의미한다. 코노스씨와 동료들은 회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맹백한 무관심을 입증할 증거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카고 지부는 회사가 고의적으로 직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여 노동자를 죽였다고 결정하지 않았다. 또한 그 사건이 심각한 벌칙을 부과할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결정해 버렸다.
벌금은 10만1500 달러에서 9만 달러로 경감되었다. 법무부에 형사 소추를 하는 것도 기각되었다. 코노스씨와 동료들은 신시내티 지부를 설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협상에 의해 결정되죠.” 그는 말했다. 최근에 노동부의 변호사는 기본 원칙이라고 부르는 권고안을 회람하였다. 사업주가 비슷한 범죄 행위를 한 경력이 있거나 안전 조치를 무시한 경력 있는 경우 등, 사업주에게 문제가 있는 사건을 법원으로 송치하는 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노스씨에 의하면 뫼브스 회사는 이전에도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있다. 그는 사장이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OSHA는 사장이 같은 종류의 위반을 되풀이하는 것은 안전조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기소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비극은 이것이 명백히 예방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코노스 는 말했다. “회사가 법을 잘 지켰다면 그 젊은이는 죽지 않아도 됐습니다. 지금이 제대로 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분노, 불만, 단호함
가족들은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민사 소송을 통하여 회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소송에서 승리하여 얻은 보상금으로 OSHA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나는 꼭 할 것이다. 워싱턴으로 가서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OSHA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하이오의 산재보상법에 의하면 회사의 부주의로 인하여 패트릭 월터스가 사망하였을지라도 광범위한 민사상의 면책 특권을 회사에게 허용하고 있다.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 법원까지 가서 회사가 “고의적인 범법 행위”를 행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OSHA의 결정이 회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사고조사 결과에 “고의”라는 단어가 빠졌기 때문에 회사의 고의성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론 헤이스에 의하면 아무도 제프 월터스의 계획을 막을 수 없다. 헤이스는 “패트릭의 아버지는 여생을 고생하며 보낼 것이다. 첫째로 아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정부가 그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분노가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패트릭의 어머니 역시 복수심에 불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