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내용
김승미(가명, 여 1975년생)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93. 11. 10. 삼성 SDI 주식회사(당시 상호는 삼성전관 주식회사였음) 가천공장(울주군 소재)에 입사하였다. 김씨는 위 회사에서 브라운관 디와이(DY) 보정작업을 수행하였다. 위 작업의 내용은 의자에 앉은 채 한 손은 브라운관 뒤에 두고, 다른 한 손은 화면 아래에 둔 상태에서 화면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위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두 손을 항상 든 채 한 쪽 손을 앞으로 길게 빼야 했기 때문에 어깨와 허리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위와 같은 작업을 함에 있어 약 2시간 가량 일하고 20분 쉬었다. 김씨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300대 정도를 처리하였다. 그리고 3조 3교대로 근무하면서 한 달에 약 80시간의 야간근무 및 50시간의 시간외근무를 하였다. 위 회사는 1998. 9. 공정을 일부 분리하여 정우전자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김씨는 위 회사로 소속이 바뀌었다.
김씨는 1998. 12.무렵부터 목과 양쪽 어깨․팔․허리․엉덩이․무릎 등 온 몸에 통증을 느끼던 중 ‘근막통증후군’의 소견을 받고 1999. 6. 17.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김씨는 그 해 8. 23. 위 회사에서 퇴직하였는데, 퇴직 후에도 통증이 지속되었다. 김씨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으로 인해 적응장애의 정신과적 질환을 앓기도 하였다. 이에 2003. 5. 22. 다시 요양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원고의 질병이 업무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작업을 그만둔 지 4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신청을 다시 기각하였다.
2. 원고의 주장
김승미 씨는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위 상병은 자신이 삼성에스디아이 주식회사와 정우전자 주식회사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브라운관 보정작업을 할 때 일정한 근육만을 과다하게 사용하고 나쁜 자세로 오랫동안 작업을 하면서 생긴 질환이어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씨는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위 각 회사에는 사실조회를, 서울대학교 병원과 녹색병원에는 각 감정을 신청하였다.
이에 대해 김씨는 원고가 행한 근무 자세가 나쁘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김씨가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는 등 행실이 좋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3. 법원의 선택
법원은 위 각 병원의 감정결과를 근거로 근막통증후군이 “골격근이나 골격근막 안이 단단하게 뭉침이 일어나면서 자극에 대한 과민 반응을 보이고, 누르면 매우 아프고 전이통과 자율신경의 자극 증상이 동반되는 국소적 병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질환”인데, 그 원인으로는 “근육의 급성 손상, 만성적인 근육의 스트레스성 손상, 정신적 스트레스, 부적절한 자세, 호르몬의 이상, 정서적 장애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어 법원은 “원고가 위 회사에 약 5년 9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수행한 브라운관 보정작업은 불안정한 자세와 지속적으로 근육에 스트레스로 만성피로를 가져오는 작업으로서 재직 당시 원고가 가지고 있었던 근막통증후군의 발병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현재 원고가 느끼는 통증 역시 원고가 퇴직 후 수 년 동안, 위 회사 재직 중의 근막통 증후군에 대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얻은 내적 혼란감․불만․우울감․무력감․불안감 등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근막통 증후군의 만성적 요인으로 작용하여 지금까지 계속하여 근막통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원고의 이 사건 상병은 원고가 위 회사에서 수행하던 브라운관 보정작업이라는 업무가 원인이 되어 현재까지 가지고 있는 질병으로서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는 상병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단하였다.
4. 법원 판결의 의미
위 판결은 그 결과만 놓고 보면 당연한 것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김씨가 행한 업무가 근육에 무리를 가할 것이라는 것은 작업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근막통증후군이 업무와 관련이 있는 질병이라는 것은 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씨는 지난 4년간 사회적으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그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고 급기야 정신과적 질환을 앓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위 재판에 소요된 시간은 무려 1년이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하면 위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다.
위 판결은 김씨가 삼성계열사에 재직했다는 것으로 인해 ‘매일노동뉴스’에 보도되기도 하였는데, 김씨가 삼성계열사에 재직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재판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위 회사는 김씨의 작업 내역에 대해서는 소상히 밝히지 않으면서도, 사생활에 대해서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법원에 제출하였다. 급기야 여성으로서는 매우 수치스러운 병원 기록까지 제출하며 김씨의 ‘행실’을 문제 삼았다. 김씨는 동료들을 증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선뜻 증인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동료가 김씨를 음해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위와 같은 내용의 판결이 선고되었으니 재판 결과를 알려주면서 울먹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위 판결은 지금의 산재 승인 절차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축적으로 잘 드러내준다. 김씨가 통증으로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그 원인이 업무와 관련된 것인지를 점검하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면, 의사가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한 질병에 대해서는 일단 우선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기준이 세워져 있었다면, 업무와 명백히 무관한 질병이라는 것을 근로복지공단이 입증하지 못하는 한 어떤 질병이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었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관이 심사․재심사 과정에 포진되어 있었다면, 김씨가 지난 세월 그토록 심한 고통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얘기를 듣고 단박에 업무상 재해임을 알아 본 산업의학 전문의가 있었기에 김씨가 뒤늦게나마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는 있었지만 그 고통이 한 순간에 보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부가 산재보험 발전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산재보험 개혁에 나선다고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질지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 그들에게 위 사례를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가 위와 같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제도를 그대로 방치할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