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생긴 스트레스 직장에서 풉시다”
스트레스 관리프로그램
SK 직원 호응 높아
“직장 생활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직장에서 풀어야지요!”
회사 생활 11년차인 이임철(36·㈜에스케이 소매개발팀 과장)씨는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하루는 저녁 7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다. 또 출근 전 아침마다 30분 정도 산책을 한다. 주말에는 좋아하는 책을 보는 시간을 갖고, 가족과의 대화 시간도 늘렸다.
이씨가 이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정신과 전문의한테서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 전 그는 회사가 인제의대 백병원 정신과와 함께 ‘하모니아’라는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정부 쪽과 다른 기업들을 상대하는 업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고, 퇴근 무렵에는 가끔 어깨와 목이 아프고 두통도 있었던 이씨는 스트레스 수치나 한 번 재어 보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평소 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조사했고, 정신과 의사와 전문 심리 상담가에게 몸의 자율신경계 흥분 정도를 측정받았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몸의 자율신경계가 균형을 잃어 불안이나 두통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씨는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다’는 등급 판정을 받았다. 평소 사내 동호회,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 정신과 팀은 “이씨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스트레스 정도가 심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개별적인 상담을 거쳐 그에게 맞는 긴장 해소법을 추천했다. 개인 상담 시간에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아이 교육과 부모님 모시는 문제 등 가족 문제도 상담할 수 있었다.
개개인의 스트레스 검사와 더불어 이씨는 직장 동료들 사이의 갈등 해소를 위한 작은 그룹 상담에도 참여했다. 이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느끼는 크고작은 불만을 서로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로 마음속 응어리가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침 산책 등을 통해 어깨 등의 통증도 많이 줄어든 기분”이라며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되찾았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고 덧붙였다.
회사가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안태진 하모니아 담당자는 “소그룹 상담과 더불어 갈등 관리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람도 벌써 200명에 이르고, 전문의와의 상담도 하루 2~5건 정도 된다”며 “이런 참여는 개별적으로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회사 쪽에서 근무 시간에도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높은 참여율을 보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자문 의사인 우종민 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정신적 질환은 물론, 위장병, 심혈관 질환, 당뇨, 고혈압 등 거의 모든 질병의 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며 “직장인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이 나서서 사원들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또 “개별적인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과 함께 갈등이 쌓이게 하는 회사의 구조적인 모순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께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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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유발 작업환경 놔두고 금연만 하면 튼튼해질까요”
백도명 노동건강연대 상임대표
“운동, 금연에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건강한 직장을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백도명 노동건강연대 상임대표(사진·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비만, 스트레스 관련 질환 등이 빠르게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회사가 운동 프로그램, 스트레스 관리 등 건강증진 사업을 벌이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이보다 더 기초적이며 다급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직장인들을 여러 질병으로 내모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연, 운동 등과 같은 건강증진 활동만 한다면 직장인들의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칫 직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이런 경우를 들었다. 간에 해로운 유기용제를 다루는 회사에서 술을 줄이는 금주 운동을 한다고 치자. 금주 운동 자체는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겠지만, 자칫 유기용제라는 근본 문제의 해결에는 소홀히 하게 된다. 또 유기용제 때문에 간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회사에서는 금주 운동을 했으므로 술을 마신 직장인 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게 된다는 얘기다.
백 교수는 “1990년대 말에 한 제철회사가 회사 차원의 금연 프로그램을 시행했고, 그 성과가 매우 좋았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며 “금연 운동이 분명 긍정적이긴 하지만, 이 운동은 제철소에서 사용하는 코크스 때문에 노동자가 폐암에 걸린 것이 계기가 돼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금연 사업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코크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김양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