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수고용노동자 보호방안, 어디까지 왔나?
4년째 공방 결론 도출 ‘산 넘어 산’
김경란 기자 쪽지보내기
최근 양대노총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확보를 위해 ‘6월 총력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하는가 하면, 경총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반발해 노사정위원회 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특위(특고특위)에 불참의사를 밝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지난해 7월 비정규직근로자특별위원회의 논의를 끝내고 공익위원안을 정부로 이송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보호방안과 관련해서는 추가적인 연구와 의견조율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 지난 21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헌수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이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 매일노동뉴스 김경란 기자
그 결과 지난해 9월 특고특위를 구성한 지 벌써 9개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한 논의는 어디까지 진전이 돼 있을까?
노사합의 불발…공익위원 조정안 마련 중
특수고용노동자는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운송기사, 보험모집인 등처럼 형식상으로는 독립자영업자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특정 사용자에게 종속돼 상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불받는 대표적인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2001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임금노동자의 약 6%(78만 9천명)를 차지하고 있고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독립자영업자’라는 허울 때문에 4대 보험을 비롯한 노동기본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1년 7월 구성된 노사정위 비정규특위부터 특고특위까지 4년째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정규특위 논의 이후 특고특위에서 노사정 의견이 조율된 것은 전혀 없는 상태다. 위원회는 프랑스, 독일 등 외국의 입법제도를 답사하고 연구하거나 관련 근거들을 수집하고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전체회의는 3차례밖에 진행되지 못했고 지난 4월 시도했던 노사간 합의는 불발에 그쳤다. 남겨진 것은 공익위원 조정안.
특고특위는 공식적으로 6월말 조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그동안 논의돼 왔던
△경제법상 보호방안
△사회보장법상 권리인정 보호방안
△집단적 노동관계법에 의한 보호방안
△개별 근로관계법상 일부규정 적용방안 등을 세부적으로 점검해 각각의 경우에 대해 세부 항목에서 핵심내용을 간추리는 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고특위 이호근 전문위원은 “지금까지 진행한 다양한 연구결과와 노사정 논의를 바탕으로 공익위원 조정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현재 공익위원들과 5차례 정도 논의를 진행했는데 집단적 권리와 개별적 권리, 사회보장 등에 대해 각각 직군별로 상이한 항목들을 비교 분석해 가능성을 점검하고 방안을 추려내고 있다”고 밝혔다.
어차피 단일한 안으로 조정안을 내는 것은 어렵고 노사가 합의할 수 있도록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것.
현재 노동계는 특수고용노동자를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노동자’로 보고 노동3권 보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독립자영업자’로 보고 노동자성 인정 여부는 법원의 개별 판례에 맡기되 보호가 필요하다면 불공정거래 행위 등을 시정하는 경제법적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발표된 비정규특위 공익위원안에서는 이 뿐 아니라 그 중간 단계 보호방안의 하나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법상 권리보장을 중심으로 한 ‘유사근로자의단결활동에관한법률’ 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안은 노사 양측이 모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공익위원 조정안 도출도 ‘난항’
이렇게 노사 양측의 입장이 4년 동안 일관되게 첨예한 가운데 이후 논의과정도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우선 공익위원 조정안이 6월에 나온다는 것도 사실상 불투명하다.
노사간 입장차를 제쳐 두고도 여러 변수를 고려했을 때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 이호근 전문위원은 “논의자체가 매우 신중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며 “공익위원 조정안의 대략적인 틀이 마련되면 노사정 전체회의를 소집해서 의견을 물어야 하는데 경총 핵심 관계자가 13일까지 ILO회의에 참석 중이고 한국노총의 경우 사무총국 모두가 사퇴한 상태이기 때문에 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조정안 마련 시점이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노동계의 6월 임단협 투쟁시기에 조정안을 제출한다는 부담감,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 여부, 비정규 관련 보호입법 논의 시기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은 “서둘러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늦어도 연말까지는 논의를 마치고 최종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금까지 특수고용 관련 논의는 철저하게 내부 논의였기 때문에 사회공론화하고 토론회와 협의를 거쳐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에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4년의 논의, 그 허와 실
노동계에서는 한 마디로 4년 동안 보호입법 방안에 대해 갑론을박 하는 동안 ‘초가삼간 다 태웠다’고 지적한다.
최순임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경기보조원의 경우 법원에서도 부당해고 등을 인정하면서 부분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해 왔고 레미콘 기사들의 경우도 지노위, 중노위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노사정위 논의 결과를 봐야 한다며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00년부터 경기보조원들의 노조가 수없이 생겨났지만 사용자들은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채 임단협 교섭조차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보훈처 산하 88CC에서 만들어진 전국여성노조 88CC분회를 제외하고는 노조가 해산했거나 해산 위기에 있고, 정상적인 노조활동은 어려운 상태다. 박대규 건설운송(레미콘)노조 위원장도 “최근 사용자들이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아 1년 내내 분회들이 파업을 하고 있지만 사용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법파업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노동자성 시비가 이미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받은 노조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4년에 걸친 기나긴 노사정위 논의는 과연 부작용만을 초래한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일까?
최순임 국장은 “노사정위의 논의는 의미가 있다. 어차피 노사 합의란 것은 10년이 걸려도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노사간 의견을 교환하고 절충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크다”고 말한다.
최 국장은 “문제는 노사의 입장은 뚜렷한데 정부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아서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한 관계자도 “특수고용은 그야말로 이중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접근하면 해결이 불가능해서 여러 사안들을 고려하다 보니 당연히 신중하고 길어질 수 밖에 없다”며 “정부가 이 논의에 대한 입장을 조속히 밝히고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가면, 이제 남은 것은 공익위원 조정안이다. 노사정위에서는 이미 2년 전에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해 보호방안을 마련할 것을 합의했다. 이제 ‘초안’ 형식으로라도 그 윤곽이 드러날 때가 왔다. 물론 조정안이 나오더라도 정부 경제부처와의 힘겨루기에서 그마저 후퇴할 수 있다는 염려가 크지만, 노사정위 안에서의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대로 된 보호방안을 만들어 내야 할 때다.
김경란 기자(eggs95@labo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