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같지 않은 직업병 ‘과로사’를 잡아라
기사입력 2008-06-04 17:00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직장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성공을 위한 치열한 경쟁, 복잡한 인간관계, 그 속에서 발생되는 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과거에는 과로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들이 전적으로 개인의 건강관리 문제로 방치되고 보상의 대상이 되지 못해왔다. 소위 과로사가 우리나라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이후 국민들의 권리의식 신장과 외국의 사례보도 등에 의해 소송이 시작되면서부터였고 그 인정범위는 점차 확대돼 가고 있다.

과로사는 과로,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하거나 악화돼 사망하는 질병을 총칭하는 용어로 1978년 일본에서 처음 사용됐고 過勞死의 일본어 발음인 karoshi가 국제적으로 공인돼 사용되고 있다.

Karoshi는 옥스퍼드 사전 2002년 판에 신조어로 등재되어 과로 또는 업무관련 피로로 인한 사망(death brought on by overwork or job-related exhaustion)이라고 풀이돼 있다. 좀 더 넓은 의미로는 과로나 스트레스로 사망 또는 중증 장애를 발생시키거나 기존 질병을 악화시켜 사망 또는 중증 장애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과중한 노동이 요인이 돼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악화시키고, 뇌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경색 등의 뇌혈관 질환과 심근경색 등의 허혈성 질환, 급성 심장마비 등을 유발해 영구적인 노동불능이나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비생리적인 노동과정이 진행하는 가운데 근로자의 정상적인 노동리듬이나 생활리듬이 붕괴돼 생체 내에서 피로축적이 진행, 과로 상태로 이행해 기존의 고혈압이나 동맥경화가 악화되고 파탄을 겪게 되는 치명적인 상태, 또는 격무, 과로, 스트레스 등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거나 기존 질병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거나 사망 또는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는 등 장애가 발생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과로사는 노동강도의 강화, 장시간 노동, 정신적 긴장, 기존 질환 등이 모두 원인이 된다. 현대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른 업무상 긴장과 스트레스의 증가, 경쟁적인 사회구조, 목표달성을 위한 업무의 과중,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 장시간 근로 등에 의한 피로의 누적 등이 모두 과로사를 촉발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망의 원인은 주로 뇌혈관계 질환, 심장 질환, 간 질환의 악화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과로사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대별할 수 있는데 과로에 의해 직접적으로 병이 발생해 사망하거나 기존 질병이 자연경과를 넘어 급속히 악화돼 사망하는 경우다.

하지만 과로의 정도를 계량화하기가 어렵고 과로에 대한 반응도 개인차가 크므로 과로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7월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39조에 뇌실질내 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경색, 고혈압성 뇌증, 협심증, 심근경색증, 해리성 대동맥류 등 7가지 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마련됐다.

2001년 4월에는 과로,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라도 다른 발병원인을 근로복지공단이 입증하지 못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봐야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바 있어 과로사의 인정범위가 매우 넓어지게 됐다.

이런 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하는 사례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데 2000년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건수는 1277건이었던데 비해 2004년은 3298건으로 무려 2.6배나 증가했다.

또한 과로의 기준은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돼 있어 질병을 가진 근로자의 경우 일반 근로자보다 과로의 기준이 낮게 적용된다.

최근에는 법으로 규정된 7가지 질병 외에도, B형 간염 환자에서 생긴 간암, 만성 폐질환, 경추 협착증, 전신성 홍반성 낭창, 변비에 의한 장폐색 등의 질병 뿐 아니라, 자살까지도 당해 근로자의 과로 및 업무상 스트레스가 인정되면 업무상 질병으로 판결, 보상되고 있다.

하지만 과로로 사망하거나 극심한 후유 장애가 남게 된다면 그 어떤 보상도 의미가 없을 것.

과로사의 주요 원인질환인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 뇌혈관질환 등은 이들 질환의 주요 위험인자로 알려진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 만성 질환의 조기 진단 및 치료와 금연, 금주,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체중조절 등 생활습관의 조절로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그만큼 바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과 정기적인 건강 검진이 필요하다.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생을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요망된다.

이외에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한 고용주 및 선임자, 직장 보건 담당자들의 세심한 배려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의료인들의 연구와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상장사 절반가량이 과도한 업무 등에 시달린 직원이 피로를 호소하면 회사가 곧바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전문 상담가와 연결시켜 상담하도록 하고 상담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치료까지도 회사 측이 지원해 주는 멘탈 피트니스 제도를 실시해 직원들의 과로사나 이직 등을 막고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기업에서 이 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으나 아직 까지 과로나 업무 스트레스 문제에 대한 고용주 측의 인식 부족이 여전하고 직원들도 불이익을 우려해 이용을 피하는 경우가 많아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신종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는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과 기업 모두 스트레스나 피로 자체가 하나의 질병이라는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고, 의료인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능동적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중앙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광제 교수

편집팀 기자 worker@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