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늙어가는데 노동강도는 왜 강화되나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08-07-02
제18회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의 초점은 단연 ‘작업환경의 새로운 변화가 노동자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전문가들은 일터의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들을 찾아내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된 ‘21세기의 산업안전’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은 이러한 이슈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분석해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는 산업보건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요마 란타넨 국제산업보건학회장이 ‘21세기 세계의 노동력 : 동향 및 도적’이라는 주제로 마이크를 잡았다.
산업안전 취약인구 10억명
란타넨 학회장은 전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은 빈곤과 낮은 사회적 지위ㆍ열악한 작업조건으로 인해 산업안전 취약계층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세계화 추세로 선진국에서도 산업안전 취약계층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란타넨 학회장은 21세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고령화를 꼽았다. 노동자의 고령화 현상은 개도국과 선진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가 점점 늙어가면서 예전과 다른 산업안전 문제가 발생한다. 업무상사고의 위험은 연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젊은 남성과 고령의 여성이 가장 높다. 란타넨 학회장은 “55~64세 노동자의 사망건수가 15~24세 노동자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며 “이는 고령여성노동자의 추락ㆍ낙상 등으로 인한 고령 사망사고가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암보다 뇌심혈관계질환이 더 위험
유럽 10개 국가를 대상으로 노동자에게 주로 발병하는 질병을 조사한 결과 1위은 심장질환을 비롯한 뇌심혈관계질환이 차지했다. 상당수 노동자들이 고지혈증ㆍ고혈압ㆍ당뇨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어 관절염과 근골격계질환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 역시 고령노동자계층에서 두드러졌다. 란타넨 학회장은 “의외로 암은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며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산업보건 프로그램은 보다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란드 노동자를 대상으로 자가진단 증상을 조사한 결과 근골격계질환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우울증과 수면장애가 많았는데 원인은 근무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란타넨 학회장은 “몇가지 측면에서 21세기의 노동자는 예전과 전혀 다른 작업여건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변화는 노동강도의 강화다. 현재 산업구조는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노동을 원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의 노동자 44%는 지난 10년 동안 일의 강도가 더 세졌다고 답했고, 심각한 국가에서는 절반이 넘는 54%의 응답률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근무시간이 증가하거나 비정형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늘어나는 근무시간은 수면장애와 스트레스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뇌심혈관계질환의 증가로 이어진다. 야근으로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서 여성노동자에게 유방암 발병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란타넨 학회장은 “유럽 노동자의 경우 72%가 비정형적인 근무형태”라며 “심지어는 근로계약조차 체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불안과 순환보직의 증가는 충분한 안전보건교육을 받을 기회를 빼앗고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사고와 질병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더 많이 죽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업도 산업보건영역에서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다. 란타넨 학회장은 “전세계적으로 실업과 인력부족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며 “문맹이거나 낮은 숙련도 높은 연령이 실업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핀란드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건강과 실업은 깊은 관련이 있다. 우선 사소한 건강상의 이상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건강한 노동자보다 실직할 확률이 4배나 높다. 또 다른 문제로는 실직상태를 1번이라도 경험했을 경우 만성질환 발병률이 8배 이상 증가한다. 건강상의 문제가 실업을 유발하고 동시에 실업이 건강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증가하고 일하는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란타넨 학회장은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오래 살고 건강해졌지만 보다 고강도의 노동조건에 처해지고 이주 비율도 증가하면서 새로운 위험요인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에 대비한 산업안전 전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