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건강권 ‘성별로 접근해야’
산재 통계 구분 없어…여성 많은 서비스업 취약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은 데서 보듯 여성들이 열악한 일자리에서 더 많이 일하는 우리나라에선, 산업재해 실태를 성별로 파악해 대책도 그에 바탕해 마련하는 ‘성 인지적 접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신범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실장이 2000년 미용 노동자 89명에게 작업 환경과 건강 상태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천식 등 ‘호흡기 증상’, 피부에 화상을 입거나 알레르기성 피부염 등 ‘피부 증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파마약, 블리치 파우더 등의 약품들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의심됐다.
핀란드의 미용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32시간 일하고 하루 5명의 손님을 대하는데, 10% 가량이 천식을 앓는다는 보고가 있다고 김 실장은 전했다. 반면, 우리나라 미용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72시간을 일하는데도 노동부의 근로감독도 거의 없다시피 한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사회에서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일터에서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에 노출되는 많은 노동자들이 여성”이라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0년 ‘안전보건에서의 젠더’ 보고서에서 성별에 따라 산업 현장의 건강권이 어떻게 다른지 짚었다. 보고서는 “여성과 남성의 일은 문화적 선입견 등에 따라 나눠지며, 이에 따라 여성과 남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만나는 위험도 다르다”라고 전했다. 노동 현장에서의 건강권도 성별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성별 구분이 아예 안 돼 있거나 서비스업을 ‘기타’ 항목에 넣는 등 성별 산업재해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정진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남성 노동자들이 많은 제조업 분야에 견줘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서비스업에서는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며 “취약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도 건강권이 보장되도록 행정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 교수는 “감정 노동을 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에겐 어느 수준의 감정 노동을 요구할지를 두고도 고객과 사업주 등 사회 전반이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그들의 노동 가치를 존중하고 최소한의 인권인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